한반도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해진 것은 어느 시절에 있었나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파된 시기는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입니다. 소수림왕 2년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어 불상과 불경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2년 이후 374년에 아도가 들어와 성문사 혹은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세운 것이 우리나라 사찰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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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쇼군과 천황은 어떤 관계였나요?
막부시대에 천황과 쇼군이 관계는 이중적인 권력 구조의 형태입니다.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로 조정의 수장으로 여겨씁니다. 천황은 교토에 거주하며 의례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쇼군은 실질적인 권력자이며, 막부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리고 쇼군은 일본의 다양한 지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며, 군사적 힘과 경제적 자원을 관리합니다. 쇼군은 천황의 명을 받아 권력을 행사하지만 독립적 권력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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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명절의 제사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추석, 설날에 차례의 유래는 중국에서 시작했어요. 원래 차(茶)를 올리는 절차가 포함된 제례였는데, 차를 올리는 것은 사라지고 음식과 술을 차려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즉 차례이지만 현재는 제사처럼 제수를 장만하고 술을 올리며 제사를 지내는 관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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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에 발생한 대학 입시 부정사건은 어떤 사건이었나요?
1990년의 대표적 입시 비리 사건으로는 1991년 서울대에서는 목관·첼로전공 심사위원들이 학부모에게 금품을 받고 실기평가에서 해당 학생들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게 적발되었습니다. 해당 학생들은 합격이 취소됐고, 재시험을 통해 다시 학생을 선발했습니다. 이후에는 입시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음대 실기평가 때 심사위원과 학생 간의 칸막이가 설치되었습니다. 1993년에는 국립교육평가원 소속 장학사가 학력고사 문제를 유출하기도 했어요. 장학사는 친구 A사립대 재단 이사장의 딸에게 정답을 사전에 유출했고, 해당 학생은 내신성적이 반에서 꼴등이었지만 당시 전국 수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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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성년의 날은 언제부터 지정되었나요?
우리나라 성년의 날은 만 19세가 되면 성인으로서의 자각과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 주며, 성년이 됨을 축하해 주는 날입니다. 1973년에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었어요. 처음에는 4월 20일었지만 1975년부터 5월 6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1985년부터는 매년 5월 셋째 월요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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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가 갖는 성과와 의미가 궁금합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4일부터 7일까지 만주 봉오동 계곡에서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군 19사단 월강추격대, 남양수비대 예하 1개 중대와 싸워 승리하여씁니다. 당시 일본군 500여명 가운데 157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을 당했으나 우리 독립군은 4명만 전사했습니다.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의 본격적인 무장 투쟁의 서막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의 소규모 부대로 독립군에 맞서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규모 출병을 감행하였으며, 이는 청산리 전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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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 연합군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는 기록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구당서>, <신당서> 등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 멸망과 관련해서는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 5 태종무열왕 7년과 권28, '백제본기' 제6 의자왕 20년에 해당됩니다. 고구려 멸망은 <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 제6 문무왕 8년, 권22권 '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27년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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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고구려비의 건립 시기에 대해 비석의 내용으로 광개토대왕 때라는 가설도 나왔다는데 어떤 부분으로 인해 광개토대왕 때라는 가설이 나온 것인가요?
충주고구려비는 일반적으로 장수왕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판독된 문자에 의해 장수왕이 아니라 광개토대왕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비문에 '영락7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내용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영락은 광개토대왕 재위 시기에 사용되었던 연호입니다. 그 가능성은 400년 신라가 왜구의 침입을 맞아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으며, 광개토대왕은 직접 5만명의 기병을 이끌고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고 가야 지역까지 쳐 내려왔으며 5세기 고구려가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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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랑 후고구려가 부흥운동을 벌였다는 기록
백제, 고구려가 각각 660, 668년 멸망하고 부흥운동에 대해서는 기록이 있으나 후고구려, 후백제가 918년, 936년 멸망하고 부흥운동을 전개했다는 기록은 정확하지 않네요.백제 부흥운동은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부여풍을 중심으로 복신, 도침이 주류성에서,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거점으로 전개했으나 663년백강 전투 패배, 내분으로 자멸합니다. 고구려 부흥운동은 오골성에서 고염무, 한성에서 검모잠과 안승이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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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과 거란은 어느 민족이라고 간주하면 될까요?
여진족은 퉁구스계 종족으로 만주지방에 거주했던 숙신, 말갈계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한반도 북부 지역에도 거주했었으며, 고구려, 발해의 지배를 받기도 했습니다. 1115년 금을 세워 요와 북송을 멸망시키고 화북까지 지배했으며, 1616년 후금은 1636년 청을 세우고 1644년 중국을 지배했던 정복왕조입니다.거란족은 준 몽골족에 해당하며 동호-선비족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10세기 요나라를 세워 동아시아에서 막강한 세력으로 군림했지만 금과 송나라의 연합에 밀려 멸망하고 몽골족과 흡수 동화됩니다.두 민족은 한족과 별개로 오히려 한족을 지배했던 정복 왕조를 세웠으나 현재는 한족에 동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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