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차 석유파동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1차 석유파동은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국간의 제 4차 중동전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유가가 4배나 상승했습니다. 이에 따라 물가가 25%나 폭등하고, 무역수지 적자, 외화 부족, 환율 급등이 나타났습니다. 2차 석유파동은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또다시 유가가 급등했는데, 이로 인해 1980년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며, 심각한 스태그플이션을 겪었습니다. 이 덕분에 한국은 에너지, 산업, 수출 구조를 점점 다변화하고, 고도화하는데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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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로메나란어떤뜻인가요 중동에서확장된건가요
“유로메나(Euro‑MENA)”는 유럽(Europe) + MENA(Middle East & North Africa)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MENA는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뜻하는데 여기에 유럽을 붙여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간 교류를 연구하는 학술 용어입니다. 중동과 북아프라카(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등)를 묶어 아랍, 이슬람 문화권 중심의 지정학적 경제적 불록으로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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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영광 법성포 설의 진위
백제 불교의 최초 도래지로 전해지는 영광 법성포의 마라난타 최초 입국지설입니다. 서기 384년 침류왕 원년 인도 출신 승려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로 넘어와 영광군 법성면 법성포 일대로 상륙했다는 전설에 기반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의 기록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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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면서 시간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하지않더라도 늘 인식한다. 지금의 시간 개념이 정착된 시기는?
우리가 쓰는 시간 개념은 19세말에 정해진 것입니다. 이전에는 각 도시, 마을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자신들만의 지역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세 말 철도 열차 시간을 맞추고, 국제 전신 통신에 일정과 날짜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표준시와 시간대 체계가 필요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1884년 국제 자오선 회의에서 25객 대표들이 모여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자오선을 본초 자오선으로 채택하고, 지국를 경도마다 1시간씩 차이을 내어 24시간대 표준 시간대를 합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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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의 유래가 있나요 궁금합니다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읜 강경여자고등학교의 청소년 적십자(RCY) 단원들이 퇴직, 병중이신 선생님들에 대한 봉사활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5월 16일 '은사의 날'로 확대되다가 1965년 교직원 단체가 계레의 참스승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하면서 일반화되었습니다. 따라서 5월 15일은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 세종대왕 탄인일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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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페스탈로치는 교육계에 어떤 업적을 남겼나요.
페스탈로치는 교육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아동을 인격 있는 사람'으로 보고 지, 덕, 체를 함께 키우는 전인교육의 선구자입니다. 즉, 그는 아이의 나이, 발달 단계, 성향, 감정을 존중하는 아동 중심 교육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페스탈로치는 머리, 손, 심정으로 인간을 구분하고 이 3가지 측면를 조화로운 발달(전인교육)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페스탈로치는 현재의 아동 중심 교육, 인성, 생활 중심 교육, 평등 교육에 깊은 영향을 남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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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를 왜 무덤이라하나요? 덤이없어서 그런가요
무덤은 '묻다'의 '묻'과 엄이 결합된 단어로 묻은 곳, 장사 지내는 곳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무덤은 죽은 사람을 땅에 묻어 두는 곳을 말합니다. 즉, 무덤은 순수 우리말의 묻다에서 유래된 것이며, 한자로는 “묘(墓)"가 사람을 묻은 곳으로 같은 의미입니다. 반면 "분(墳):은 흙을 높게 쌓은 봉분이 있는 무덤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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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은 매일 5끼의 식사를 했다고 하는데, 실제 건강 상태는 어떠했나요?
조선시대 왕들은 하루 5끼를 먹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통 초조반, 아침, 점심, 간식, 저녁, 야식처럼 여러번 나뉘어 먹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번 먹다보니 세종과 같이 건강이 좋지 않은 국왕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국왕은 긴 업무시간과 적은 운동량으로 비만,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 위험이 높았습니다. 반면 영조는 소식, 규칙적인 생활 습관, 비교적 절제된 식사를 유지하여 장수를 한 국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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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을 합병 대신 만주국처럼 만들려고 했다는데
물론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 통치 방식은 을사늑약에서도 반영되었듯이 명목상으로는 강제병합이 아닌 대한제국의 황실을 유지하면서도 외교권, 행정권 등 흡수하는 보호국, 간접 통치 형태였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보호국에서 내부 자치, 그리고 일본화라는 단계별 식민지입니다. 이는 영국, 프랑스 등의 식민지를 확대하는 과정과 동일합니다. 즉 명분상 독립, 자치를 허용하는 것처럼 하여 국제적 반발을 줄이고, 결국에는 일본에 편입하는 것입니다. 만주국도 국제연맹의 반발이 있었기에 겉으로는 독립국으로 포장된 괴뢰국이며, 일본에 의해 관리된 체제였습니다. 즉 결국에는 일본에 편입되는 절차를 밟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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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스승의 날 유래와 역사적 사제 관계에서 배울 현대적 교육의 가치는?
'스승의 날'은 1958년 충청남도 강경여자고등학교 RCY 단원들이 세계 적십자의 날을 맞아 병중에 계시거나 퇴직한 선생님을 위로하는 봉사활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1963년 5월 24일 "은사의 날", 1964년 '스승의 날'로 바뀌었으며, 1965년 교원단체가 주관으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 스승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와 과학, 역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들의 스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하여 세종의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즉 세종처럼 모든 이를 열린 지식과 교육으로 품는 스승을 기리는 날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서원은 16세기 사림들이 선현들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사당이며, 교육 기관입니다. 그리고 성균관은 본래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조선시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유학을 정립한 공자와 성현들을 제사지내고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서원과 성균관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만이 아니라 문답과 토론 속에서 학문을 길렀습니다. 오늘날의 학교 현장에서도 질문, 토론, 피드백을 중시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것도 상통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원과 성균관에서는 제자의 잘못은 스승도 책임을 지는 책임 공유 윤리와 서로 신뢰하는 소통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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