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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칠지도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칠지도는 무기보다는 상징적인 무기입니다. 총 길이 75센티미터로 중심검 이외에도 양쪽에 각가 3개의 날이 Y자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가지날(돌기)의 구조로 인해 일반 검처럼 베거나 찌르는 동작이 어렵고, 오히려 사용자가 상처를 입기 쉬운 구조입니다. 칠지도는 백제가 왜왕에게 하사하여 강력한 국가 간 관계, 백제의 기술력, 위신, 문명적 우월성을 드러내는 외교용 유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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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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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무력이 제일쎗던 무장들은
시대를 달리했지만 척준경, 정기룡, 흑치상지, 이의민, 황진장군, 이성계 모두 강력한 무장이었습니다. 그외에도 을지문덕, 계백, 김유신, 조선중기 이징옥도 무력 강자로 언급됩니다.하지만 대중적으로 최강의 무력은 척준을 1순위로 꼽습니다. 그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정사에 남아 있는 전투 기록만 봐도, 결사대를 이끌거나 단신 돌격으로 성을 구원하고 적장을 단칼에 베어넘기는 ‘무쌍’ 수준의 활약이 수차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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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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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동탁은 실제로도 멍청한 인물이었나요?
동탁은 <삼국지연의>에서 멍청한 폭군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동탁은 군사적 경험과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됩니다. 동탁은 원래 변방의 군인이었으나, 강족 토벌 등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동탁은 권력을 잡은 뒤에는 부패, 살인, 약탈 등의 폭정을 일삼아 많은 원성을 샀고, 결국 왕윤과 여포에 의해 제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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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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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유의 여신상은 왜 미국이 아닌 이집트에 설치 될 예정이었던 건가요?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이집트의 웅장한 유적과 파라오 조각상에 감명을 받아 1869년 이집트에 수에즈 운하 개개통을 기념하여 '동방에 광명을 비추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운하 입구에 세울 등대형 조각상을 구상했습니다.하지만 이집트는 막대한 공사비와 재정난 때문에 제안을 거벌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상을 포기하지 않고 프랑스에서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선물로 디자인을 수정하여 제안한 것입니다. 이집트의 여인의 천이 왕관으로 베일이 법전으로 바뀌는 등 여러 변형을 가해져 오늘날의 자유의 여신상이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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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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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벤트 캘린더는 서양 문화에서 시작된건가요?!
어드밴처 캘린더는 19세기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들이 벽에 분필로 날짜를 적거나 매일 촛불을 켜며 대림절을 기념한 풍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 독일의 인쇄업자인 Gerhard Lang이 판지에 작은 문을 달아 날짜마다 그림이나 성경 구절을 숨겨놓은 오늘날 형태의 캘린더를 처음 제작했습니다. 이후 1950년대 초코릿이나 작은 선물이 들어 있는 창문형 캘린더가 등장하며 유럽 전역과 북미로 퍼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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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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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모으기 운동과 같은 것들은, 그 시절에 왜 성공을 하게 된건가요?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개된 금모으기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당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하는 의지가 공유되면서 가능했습니다. 당시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와 언론이 전국민에게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호소했으며, 국민들이 공감하여 협력하였습니다. 즉, 공동체 정신이 결합해 얻은 대국민 대통합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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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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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 앞에서 공연이나 행사를 하게 될 경우 어떠한 허가가 요구되나요?
문화 유적지 앞에서 공연하는 것은 일반 공공 장소 공연보다 까다롭습니다. 국가 지정 문화재나 국가 지방 문화 보호 구역에서 행사를 개최하려면 문화재청의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아아 한다고 합니다. 현상 변경이란 문화재의 원형이나 환경에 영햐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시도지정 무화재구격은 지자체장의 현상 변경 허가 및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문화 유적지들과 중첩된 구간이나 보호구역 내 일부 경미한 경우는 지자체장으로 허가 범위를 확대된 사례도 있으므로 해당 자리의 관리 기관에 문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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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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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평민들 기준으로 이발을 전혀 하지 않았나요?
조선시대에는 머리카락을 부모에게 받은 소중한 것으로 여겨, 유교적 관념에 따라 함부로 자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남성은 상투를 올리고, 여성은 쪽이나 얹은머리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위생이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백호라 불리는 방식으로 상투 주변, 특히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손바닥, 동전 크기로 다듬는 일이 민간에서는 종종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머리르 단발하게 된 것은 1895년 단발령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발사의 직업도 그 이후에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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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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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날이 10월25일이라고 합니다.
독도의 날은 1900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반포한 칙령 41호에서 독도를 울릉도의 부석섬으로 명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독도의 날은 2000년 민간 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처음 제정하여 2010년부터 국가차원에서 기념식과 교육 홍보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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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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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실제모습과 최후에 대해 궁금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실제 외모는 전해지는 기록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예를 들어 류성룡에 따르면 용모가 단아하고 정갈하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윤휴 등은 남성적인 무인, 장신, 팔이 길고 힘이 세며, 제비턱, 범의 눈썹이라 하여 무장다운 강인한 이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당시 승병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쌍충사본 초상화, 그리고 무인의 기상이 잘 드러난 무표정의 얼굴 이미지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동시대 문헌과 조선왕조실록 등 공식 사료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순신 전투 중에 총탄에 맞아 전산한 것이 확실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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