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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에 기록된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기록은 무엇인가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고려 인종 23년(1145)에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입니다. 비록 삼국시대에 유기, 신집, 국사, 서기 등이 역사서가 존재했으며, 고려 초기에도 7대실록이 편찬되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습니다. 즉 실제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삼국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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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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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조선이 건국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려 말 원나라의 간섭과 몽골의 침입, 그리고 이후 원명 교체 등 국제 정세 속에서 고려는 외교적 주도권이 상실되었습니다. 게다가 권문세족이 농장을 점유하고 농민들의 토지를 수탈하여 경제 구조가 붕괴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고려 말 성리학을 학문적 배경으로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은 정치, 사회, 경제적 모순을 개혁하려 하였습니다. 특히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하고 신진사대부들은 이성계와 결탁하여 고려를 대신하여 조선을 건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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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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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유교에서 성현의 언행을 기록하고 후대에 교훈을 삼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따라서 실록을 편천하여 후손에게 올바른 역사를 전하고 과거의 잘못과 성과를 모두 남겨 반면 교사로 삼도록 한 것입니다. 실록의 편찬하는 사관은 왕의 일거수일두족을 모두 기록하였으며, 왕도 열람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단지 역사 기록과 보존만아니라 정치적 참여와 견제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국왕과 신하 모두 자신의 행동이 기록으로 남는 다는 사실을 의식하여 함부로 권력을 행사하거나 부당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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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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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의 사회상이 어떠했는지 궁금한데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조서은 고려말 사회 모순을 개혁하고자 했던 신진사대부들이 하층민의 지지를 받아 건국하였습니다. 이들은 하층민의 지위를 향상시켜 신분질서를 개편하였습니다. 국가 재정과 민생 안정을 위해 중농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상공업은 상대적으로 천시하였습니다. 고려는 불교를 중시하였던 사회였으나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 중심의 유교를 강조하여 유교적 명분과 인륜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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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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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석가탄신일은 언제부터 유래되어 왔나요?
우리나라 석가탄신일은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 기념해 왔습니다. 신라 시대 부터 사월 초파일에 연등을 밝히고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해 왔다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연등회를 국가 행사로 장려했으며, 민간에서도 이어졌습니다. 1949년 성탄절이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나 석가탄신일 지정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결국 1975년 공식 공휴일로 지정되어 전국적으로 연등행사와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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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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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키즈칸은 무덤의 위치를 어떻게 숨길 수 있었나요?
칭기즈칸의 무덤은 철저한 비밀에 붙여져 현재 그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칭기즈칸은 죽기 전에 자신의 무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 묘비나 표식 없이 비밀리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장례 행렬 과정에서 이를 목격한 이들을 죽였으며, 무덤을 만든 군사와 인부들도 처형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덤위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1000마리의 말로 밟아 흔적을 완전히 지웠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칭기즈칸의 무덤은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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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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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대제국이 왜 근대로오면서 국력이 약해지나요
오스트리아 제국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제국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독일계, 헝가리계, 체코계, 슬로바키아, 폴란드, 이탈리아, 남슬라브계 등 수많은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입니다. 이는 내부분열과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켰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영국, 프로이센과 달리 근대화가 늦으면서 점차 뒤처졌습니다. 게다가 1866년 보오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약화되었습니다. 비록 1867년 헝가리와 타협으로 이중 제국이 되었으나 1차대전 패배로 제국이 붕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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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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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무신정권과 같은 사례는 몇번있었나요?
우리나라에서 무신정권(1170~1270)와 같이 장기간에 걸쳐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한 유사한 시대는 없었습니다. 일시적으로 무신들이 권력을 장악한 경우는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 1009년 강조의 정변, 1014년 김훈과 최질의 반란, 조선의 1624년 이괄의 난 등이 있었지만 일시적이었습니다. 즉 반란이 있었지만 100년동의 장기적인 집권은 불가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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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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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역사에 오면서 병력규모가 몇백만씩 징집이 될수있었나요
근대 이전에는 국가의 행정력, 교통, 통신의 한계 경제력으로 인해 병력 규모가 수천~수만 명정도였으며, 많아야 수십만명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근대 국가는 전국적으로 인구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행정체계를 갖춰 대규모 병력 징집이 가능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징병제가 도입되어 단기간 수십만에서 수백만으로 징집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이후 유럽의 각국은 전시에 수백만명 규모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1,2차 대전에서 극대화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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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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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제국은 언제 강성하고 유럽에서 왜 매우 강했던건가요
오스트리아 제국은 과거 유럽에서 매우 강성했던 제국입니다. 13세기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 황위를 독점하며 오스트리아는 중부 유럽의 정치, 외교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 이탈리아 북부, 발칸 일부 등 다양한 민족과 지역을 포괄하는 거대한 다민족 제국으로 발전했습니다. 빈을 중심으로 경제와 문화가 크게 발전하고 유럽의 예술, 음악의 중심으로 명성이 컸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빈회의(1814~1815) 이후부터 1866년 보오전쟁의 패배때까지 유럽의 강국으로 군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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