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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미케네귀걸이랑 우리신라고분 귀걸이랑 비슷하고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귀걸이는 정교한 세공 기술과 화려한 장식으로 유명합니다. 크레타 섬의 고대 미케네 귀걸이 역시 금속 세공 기술과 복잡한 장식이 특징입니다. 서아시아와 지중해 지역에서 발달한 금속 및 유리 공예 기술이 비단길, 바닷길을 통해 우리나라에 까지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와 같은 교류에 의해 신라의 금속 가공 기술과 금귀걸이 세공 기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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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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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는 동토지대로 시베리아수용소에 정치범
시베리아는 러시아 동부의 광활한 동토지대로 과거 소련 당시 정치법, 전쟁 포로, 죄수들이 추방되어 강제 노역을 한 곳이기도합니다. 예를 들어 스탈린 시기에 쿨라크는 강제 노역 수용소로 수백만명이 혹독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런데 시베리아는 니켈, 금과 은, 구리, 백금과 파라듐, 다이아몬드 등의 광물과 천연가스, 석유, 석탄 등의 자원이 풍부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강제 노역을 강요한 측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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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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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양반은 국에 밥을 말지않았다던데 맞나요?
과거 조선 시대 양반들이 국에 밥을 말아 먹지 않는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이은 당시 품위와 예절과 관련됩니다. 양반 계층은 유교적 예법과 품위를 중시하며 국에 밥을 말아 먹는 행동을 상스럽운 행동으로 간주됩니다. 즉 양반들은 상민이나 천민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예절에서도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6.25 전쟁 중 피난님들이 국밥을 먹을 때도 양반 출신들이 국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꺼려하며 국과 밥을 따로 담아 달라고 요청하면서 "따로국밥"이라는 음식 문화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품위를 유지하고자 국에 밥을 말아 먹지 않았으며, 이는 식사 예절과 계층적 구분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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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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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맥.호족이라는데~
예맥족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등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고대 민족입니다. 예족은 농경과 어업 중심, 맥족은 수렵과 목축을 하던 유목적 성격을 가진 집단입니다. '호족'은 중국에서 북방 유목민을 지칭하는 용업니다. 흉노, 선비, 몽골 등 유목민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인을 호족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이는 한국인을 단순히 유목민이나 농경민으로만 정의될 수 없으며, 복합적인 생활 양식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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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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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세이강.레나강.캄차카반도.블라디보느토크 그아래 일본으로 이어지는길이 순록길인가요 ??
예니세이강, 레나강, 캄차카반도, 블라디보스토그은 순록길로 순록 유목민들이 오랜 세월 동원 살아온 지역입니다. 하지만 순록 유목 문화가 일본과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순록길은 러시아 북극권 툰드라와 타이가 지역에 펼쳐집니다. 네네츠족, 축지족, 코미족 등 러시아 원주민들이 순록을 키우며 이동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축치인은 러시아 극동 지역의 원주민으로 캄차카 반도와 축치반에서 주로 거주하며 순록 유목과 해양 사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합니다. 한국인 축지인과 직접적 관계는 없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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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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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촛불집회라고 해서 평화로운 시위를 세계적으로 알린 나라인데요
한국의 촛불 집회는 세계적으로 평화적 시위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2016~1017년 박근혜 탄핵 찬성 촛불 집회는 수백만명의 참여했으나 폭력 사태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특정 단체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다양한 계층과 연령대가 함께하였습니다. 이 촛불 집회는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참여한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반대 시위에서는 극단적인 표현, 폭력 및 난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이를 이용하거나 활용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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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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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 때 탄핵 때에도 폭행이 있었나요
노무현 대통령은 2204년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를 받았으나 헌법재판소에서 기각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탄핵안 가결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촛불집회가 열렸지만 폭력 사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인해 탄핵 소추를 받아 헌법재판소에서 판면되었습니다. 찬성 측은 평화적인 촛불 집회를 통해 탄핵을 지지했으나 반대 측은 과격한 행동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헌재의 파면 결정 이후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며 격렬한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도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와 극우 세력의 난동으로 과거보다 폭력 양성이 더욱 과격해 지는 듯합니다. 특히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동조가 폭력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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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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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영토 확장에 대한 발언을 스스럼 없이 내뱉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트럼프는 항상 미국 우선주의, 즉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국제 질서나 영토 주권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그린란드를 차지하여 북극 항로와 희토류 확보를 전제한 것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오랜 비지니스 접근법으로 국가간 관계도 사업 거래처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합하면 트럼프는 영토 확장 관련 발언은 미국 우선주의와 러시아, 중국 견제를 바탕으로 미국 패권주의의 한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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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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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침몰 할때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1912년 타이타닉이 침몰한 대서양 심해는 수심 3800미터로 매우 차갑고 산소가 부족한 환경입니다. 따라서 매우 느리제 부패되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생물과 해양 생물에 의해 분해되었습니다. 또한 사고 당시 해류로 인해 멀리 이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구조 작업이 늦어지면서 대부분 저체온증에 의해 사망하고, 해류와 이동하거나 분해되었을 것입니다. 1986년 타이타닉 잔해가 처음 발견된 이후 여러 차례 탐사가 이루어졌지만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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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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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영시의 이름의 변천사는 어떻게 되나요?
통영은 과거 삼한시대에는 소가야에 해당됩니다. 통일신라 당시 757년(경덕왕 16)에는 고자군에서 고성군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1018(현종 9)에는 고성현이 거제현의 속현이되었다가 이후 독립된 현으로 복구되었으며, 고려 말기에는 잠시 남해현에 병합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1604년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어 군사적 중심지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통제영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어 통영이라는 명칭이 생겼습니다. 1900년에는 진남군, 1909년에는 용남군, 1914년에는 용남군과 거제군이 합쳐져 통영군이 되었으며, 이 때 춘원면에 통영면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1931년에 통영면이 통영읍이 되었습니다. 1955년 통영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시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어 다시 통영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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