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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부터 신앙을 가졌고 신을 믿어왔나요?
인류가 신을 믿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의 원시 신앙에서 기원합니다. 원시 신앙의 형태는 조상 숭배와 자연물에 정령이 있다는 애니미즘, 특정 동물을 조상 및 수호신으로 여기는 토테미즘, 그리고 무속과 주술을 믿는 샤머니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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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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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노비에게도 양반처럼 성이 있었나요?
조선시대 노비는 성이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노비를 소유하면서 성씨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서 양반 중심의 신분질서가 붕괴되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성씨를 소유하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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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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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 사용하던 성씨들은 왜 지금까지 내려오지 않았을까요?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등의 일부 성씨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국가의 멸망과 멸문과 관련됩니다. 정치적 변혁 과저엥서 새로운 지배 체제가 들어서면서 기존 성씨가 사라지거나 통합되었습니다. 또한 백제와 고구려의 성씨에 대한 기록이 부족하여 후대에 계승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삼국시대 일부 성씨가 후대에 계승되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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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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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넓은 영토는 어느 시기에 했던 시대인가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나라는 발해입니다. 9세기 발해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선왕 당시 영토는 고구려에 비해 넓었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60만평방키로미터 이상이며(고구려는 46만.57평방키로미터), 이는 한반도 면적의 3배가 조금 못되며, 남한 면적의 6배에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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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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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한 질문입니다 .고려시대 삼별초에 관한 질문 답변 부탁 드립니다 .
삼별초는 본래 최우가 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최씨 정권을 위한 사병 집단으로 확대되어 규모가 커졌습니다. 따라서 야별초를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고, 다시 몽골에서 포로로 갔다가 탈출하거나 돌아온 이들을 '신의군'을 만들어 삼별초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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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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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친일 청산을 못한 이유는 이승만 대통령도 일정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미군정에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국내 민족 지도자들은 국가 건설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냉전의 영향으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둘로 나눠 미소군정을 시행합니다.특히 미군정은 행정의 편의를 위해 일제 강점기 관료 및 경찰을 그대로 유지시켰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친일파들이 친미, 반공으로 변장하여 소생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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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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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왕들은 왜 막부에 정권을 뺏긴후 찾아오지 못했을까요?
헤이안 시대 중엽 지방의 치안이 악화하자 호족이 장원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고 수도에서도 무관이 왕실이나 귀족의 신변 경호나 저택의 경비를 맡으면서 실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들은 서로 연합하여 무사단으로 발전했으며, 헤이안 시대 말기에는 권력의 향방을 결정짓는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12세기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귀족 세력을 제압하고 박부를 세웠으며, 쇼군은 정치적으로 실권을 장악합니다. 반면 천황은 의례를 담당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게 되면서 명복상의 권위로만 남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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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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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출신 후 고구려에 궁예는 정말로 포악했다고 그려지던데요 처음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 혹시 원래 사람이 왕관 쓰고 나서 달라진 건지 아니면
궁예는 신라의 헌안왕 또는 경문왕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왕위 쟁탈전에 밀려 왕실에서 퇴출되어 유모에 의해 키워졌습니니다. 궁예가 얼릴적 말썽을 많이 피워 결국 유모가 출생의 비밀을 알려줬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심리적으로 폭력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궁예가 폭정을 하게 된 배경은 권력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궁예는 왕건을 비롯한 호족 세력과 결탁하였지만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수도를 철원으로 천도하고 국호를 마진, 태봉으로 바꾸기까지 하였습니다. 즉 권력을 강화하려는 의지와 불안감에서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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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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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물장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조선 시대에 물이 귀했나요?
조선시대 도시에서는 대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습니다. 수도 시설이 보급되지 않아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서울 같은 도심의 산동네의 집들은 물 사정이 더욱 좋지 않아 물을 길어 나르는 일이 일상에서 대단히 중요하여 장안에는 물장사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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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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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판테온은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전입니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마르쿠스 아그리파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80년 화재로 붕괴되고 다시 재건하였으나 다시 소실되어 현재의 구조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기원후 118년에서 125년 사이에 재건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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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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