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 1908살에 죽엇다는 게 사실인가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단군이 1908세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사달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는 식으로 전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적 상징입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기원과 위상을 표현한 전승이라 볼 수 있습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옛날에 박가분이라고 해서 화장을 하는 분이 있었다는데 그게 뭔가요??
박가분은 파우더, 분가루와 비슷한 얼굴 화장품입니다. 박씨 집안에서 만든 화장품이라 박가분이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가루가 아니라 얼굴을 희게 보이게 하는 백분 화장품입니다. 당시에는 얼굴을 하얗게 보이는 것이 인기였습니다. 박가분은 우리나라 초기 상업적 화장품이며, 얼굴에 바르는 파우더류 화장품으로 아주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납성분 문제로 납중독 논란이 생기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발해는 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평가받나요?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운동을 계속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발해가 건국된 것입니다. 우선 발해를 건국한 세력은 고구려 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와 이어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 보낸 국서에도 고구려를 '고려'라 부르며, 옛땅을 회복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발해의 무덤 형식, 기와, 불상, 석등 등 문화는 고구려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발해는 고구려의 혈통을 계승한 유민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고, 정치와 문화적 정통성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서양에서 제국과 동양에서 제국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서양에서 제국과 동양에서 제국은 둘다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국가로 동일합니다. 하지만 동양 제국은 보통 황제 1인 아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로 이해는 경우가 많으나 서양의 제국은 로마 제국처럼 여러 민족과 영토를 묶는 지배 체제입니다. 그리고 동양은 황제한 군주가 아니라 천하의 질서를 대표하는 존재이고, 주변 국가들은 조공, 책봉 관계 질서로 여깁니다. 그런데 서양의 제국은 정복지와 속주를 묶는 실용적 통치를 합니다. 황제는 세계 질서의 중심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영토와 군대를 지휘하는 최상위 통치자인 것입니다. 즉, 동양식 제국은 하늘의 명을 받은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 서양의 제국은 정복에 의한 다민족 식민 지배 국가를 말한다고 봅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
1차 세계대전은 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하나로 그렇게 크게 번졌나요?
1차 세계 대전의 직접적 요인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처의 암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 경쟁에 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확대를 위해 군비 경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동맹 체계가 확대되었습니다.특히 독일의 빌헬름 2세는 범게르만주의와 3국 동맹, 3B 정책을 추진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3국 협상을 체결하여 맞섰습니다. 그리고 발칸반도는 두 세력이 충돌하는 화약고였습니다. 결국 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두 동맹이 충돌되면서 세계대전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을지문덕 장군과 살수대첩에 대하여 지금의 어느 위치인가
612년 고구려가 수의 대군을 살수에서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살수의 위치를 놓고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청천강 일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북한에서도 일반적으로 청천강 일대를 살수와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살수의 위치를 중국 요령성 봉성시의 봉황성(봉성일대)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유적과 연결되어 중용한 지역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리적으로 청천강이라보면 수나라 대군의 진격, 회군 경로와 기록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령성, 봉황성 주장은 일부 주장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의 왕들은 어떤 경우 금관을 썼었나요?
조선시대 왕은 일상에서 금관을 쓰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조복, 제복, 익선관을 사용했습니다. 조선시대 금관은 신라의 왕릉에서 발굴된 화례한 왕관과는 다릅니다. 실제로는 금으로 장식한 관모 또는 금관조복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조선 시대 왕은 정월 초하루, 동짓날, 경축일, 가래 같은 의례에 조복을 입는데, 이 때 금관을 착용하는 경우가 언급됩니다. 평소에는 잡무나 일상에 금관보다는 익선관이 편리하기 때문에 금관을 쓰지 않은 것으로 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남북전쟁은 노예제 폐지만이 목적이었나요?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노예제 폐지를 유일한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 남과 북은 정치, 경제적으로 대립하고 있었으며, 이런 배경으로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북부는 상공업, 남부는 농업 경제였습니다. 무역에서도 북부는 보호무역, 남부는 자유무역주의를 지지했습니다. 또한 북부는 연방주의, 남부는 지방 분권주의를 내세웠습니다. 특히 남부의 목화 재배 대농장 경영에서 노예 노동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노예제 페지를 주장해온 링컨이 당선되면서 이를 위협으로 여겨 연방에서 탈퇴하여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쟁 자체의 직접 원인과 별개로 결과적으로 노예제가 페지되었기 때문에 남북 전쟁이 노예 해방의 이미지가 강하게 연결된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삼국시대에는 삼국간에 서로 상거래를 했나요?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군사적 충돌과 경쟁을 하였으나 물품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국의 교역은 철, 곡물, 비단, 공예품, 약재 같은 물품이 주되었습니다. 특히 신라는 초기 고구려, 백제를 거쳐 선진 문물을 수용했습니다. 다만 각국의 상인들이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게 상해위는 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허가 및 통제하에서 거래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국경, 전쟁, 외교 상황에 따라 교류 범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채택 받은 답변
평가
응원하기
도대체 러,우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요?
러우전쟁은 휴전은 가능해도 곧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목표를 낮추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점령지 요구와 우크라이나 정치, 안보 질서 변화까지 요구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는 영토 회복과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두 나라 사이의 큰 간극이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이 우크라이나의 군사, 재정 지원을 유지하고 있어 전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완전한 평화조약보다 사실상 휴전이 먼저 올 가능성이 큽니다.
채택 받은 답변
5.0 (1)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