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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려 무인정권 최충헌이나 최우는 자기가 왕이 되지 않았을까요?
최충헌은 1196년 이의민을 제거하고 1219년까지 23년간 정권을 장악하고 그 가문이 4대에 걸쳐 60여년간 권력 장악의 기반을 조성했습니다. 최충헌은 왕족과 신분적 차이가 크며, 이러한 신분적 제약이 반발의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똫나 왕을 교체하여 상징적 존재로 약화시키고 실권은 자신이 잡아 권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즉 왕이 되면 정치적 분열되고, 적대적인 세력의 출현으로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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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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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에 있었다고 하는 ‘당취’라는 단체는 어떤 단체였나요
"당취(黨聚)"는 조선시대 승려들의 비밀 결사를 말합니다. 당취는 서민들을 착취하는 양반이나 부자, 벼슬아치들을 응징하는 조직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역할을 가짜 승려를 색출하여 징벌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역을 회피하기 위해 승려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진짜 승려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취→당추→땡추로 음운변화가 되었음. 못된 중을 가리키는 ‘땡추’ 또는 ‘땡초’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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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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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영종은 왜 정식 국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건가요?
영종의 본명은 왕창으로 고종의 아들이자 원종의 동생으로 작위는 안경공입니다. 그는 김준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임연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원종이 양위하면서 잠시 보위에 올랐습니다. 몽골에는 원종이 위중하고 양위했다고 알렸지만 당시 몽골에 갔다가 귀국하던 세자 충렬왕이 이 사실을 알고 급히 몽골로 돌아가 알렸기 때문에 다시 원종을 복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충렬왕이 몽골군과 함께 귀국하게 되자 겁을 먹은 임연은 근심하다 등창으로 죽게됩니다. 아들 임유무가 출륙을 거부하다 원종의 밀명으로 죽임을 당하고 결국 개경으로 환도하게 됩니다. 영종 왕창의 재위 기간은 1369년 6월부터 11월까지 입니다. <고려사절요>에는 "묘호 영종과 시호를 올렸지만 신하들이 아닌 것 같다"고 무산되었는데, <고려사> 열전 안경공 왕창 조에는 사후에 '영종'으로 추봉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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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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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에 대해서 궁금한점이 있습니다.
삼국 시대 이전에 한반도 남부 지역에는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마한 지역은 충청, 전라 지역에는 54개국의 소국이 존재했습니다. 마한은 목지국을 중심으로 하여 연맹 왕국으로 발전하였으나 4세기 백제에 의해 통합되었습니다.이 지역 사회에서 마한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은 그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것입니다. 백제도 마한 소국 가운데 하나였으며 목지국을 대신하여 이 지역을 통합였습니다. 또한 마한 소국은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세력이었으며, 지역 사회만의 주체적 역사를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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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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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와중에 선조는 왜 자꾸 선위를 한다고 하건가요?
임진왜란 중 선조의 대응은 무능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가 책임론이 제기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선위 소동을 펼쳤습니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분조를 운영하던 광해군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선위 소동을 피게 되었습니다. 즉 광해군을 질투하여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다가 다시 거두기를 반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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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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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다니다보면 삭개오라는것이 나오는데요.
'삭개오(삭개)'는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인물로 세리장이며 부자였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9:1-4에 "예수가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는데 삭개오라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는 예수가 어떠한 사람인지 궁금하여 보고자 하였으나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라 되어 있습니다. 이후 삭개오는 예수를 집에 초대하여 그에 집에 머물며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이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밸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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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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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별무반은 어떤 목적으로 설립이 되었나요?
별무반은 고려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조직한 특수부대입니다. 윤관은 1104년 여진 정벌에 나갔다가 패하고 돌아와 건의한 것입니다.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조직하였으며, 1107년 에종 2년 벌어진 여진 정벌에서 큰 성과를 내 동북 9성을 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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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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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법 만나이 계산법을 만들었는데 궅금한게있습니다
행정기본법, 민법 개정(2022.12.27 공포, 2023. 2.28 시행)에 따라 만나이 계산 및 표시 원칙이 확립되었습니다. 행정기본법 7조 2 "행정에 관한 나이은 다른 법령 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출생일을 삽입하여 만나리로 계산하고 연수로 표시한다. 다만 1세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는 월수로 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민법제 158조는 "나이는 출생일을 산입하여 만나이로 계산하고 연수로 표시한다. 다만 1세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월수로 표시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만 나이는 출생을 기준으로 0살로 시작하여 생일이 지날 때마다 1살씩 더하는 것입니다. 즉 2024-1991=33살입니다. (생일이 지나지 않으면 "-1"살하여 32살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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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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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분전은 어떤 시기에 도입이 되었나요?
고려시대 전시과 체제 아래에서 양반 및 군인의 유가족에게 지급하여 생활을 돕도록 한 토지입니다. 지급 대상은 자식이 없이 사망한 군인의 처, 대를 이을 자손이 없는 자의 처 등을 규정되는 바 그 목적은 유가족의 생계를 돕는데 있습니다. 고려시대 구분전이 처음 시행된 것은 1024년(현종 15)의 일로 자식이 없이 사망한 군인에 처에게 지급하였습니다. 이후 1047년(문종1) 규정에 따르면 구분전은 5품 이상의 호에 남편과 아내가 모두 사망하고 남자가 없는 미혼의 여자에게 8결, 6품 이하는 대를 이을 자손이 없는 자의 처에게 5결 아울러 전사한 군인의 처에게도 5결을 지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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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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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외교사절단인 통신사와 연행사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것인가요?
통신사는 조선이 일본에 파견된 외교 사절단을 말합니다. 외교적인 목적과 함께 문화 교류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조선 전기에 8회 파견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재개되어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 파견되었습니다.반면에 연행사는 청나라로 보낸 사신행차를 말합ㄴ니다. 청나라의 수도가 심양에서 연경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인조 15년(1637)부터 고종 30년까지 257년간 지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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