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묘사한 '인간의 심연'을 21세기 AI 시대의 실존주의로 치환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어렵고 복잡한 문제인 듯 합니다. 부족한 생각이지만 저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 속 라스콜리니코프는 효율성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행위를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기존의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 스스로 가치와 진리를 만들어내는 니체의 초인 사상과도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이야기 속에서 말한 '나는 할멈을 죽인 것이 아니라 원칙을 죽인 것이다' 라는 말처럼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던 도덕적 원칙을 버리고, 인간의 존엄을 잃은 대신 새로운 정의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절대적 고독이라는 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의 AI 시대가 더욱 더 발전하여 그 효율이 정의로 인정되게 되면, 그 알고리즘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관점으로 누군가의 희생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것이죠. 사회의 존재를 위해 시스템의 효율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정당화하겠지만 이야기 속 라스콜리니코프가 받았던 벌은 전혀 받지 않는 냉정한 존재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스토엡스키는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당신은 무엇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나?'라고 물어보겠지만, 인간이 아닌 AI는 무엇을 죽인다는 것에 대한 인지가 아닌 사회와 시스템의 존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AI에 의지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고, 최대한 우리 마음 속에 만연한 라스콜리니코프를 잠재우고 '인간다움'이라는 것을 회복시켜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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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 현대 문학 감상에서 가지는 실질적 한계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바르트는 서구 문학 비평의 방향이 저자의 의도와 생애를 해석의 중심에 두고 있었던 것을 거부하고 문학을 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문학 비평에 있어서 저자가 가졌던 중심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텍스트는 저자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독자가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오토픽션은 자전적 형식으로 풀어가지만 내용이 진실과 허구 사이에 있는 모호한 것으로 현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허구적 서사로 풀어낸 것입니다. 따라서 오토픽션의 경우도 작품의 구성 형태는 그렇지만 바르트의 이론에 따르면 그러한 방식으로 창작되었다 할 지라도 대중에게 오픈되고 나면 그것은 저자의 손을 떠난 것이고 독자가 텍스트와 상호작용하여 풀어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니 비평에 있어서도 작가의 경험을 소재로 하였다고 해서 그 저자를 중심에 두고 해석하기 보다는 탄생한 작품과 독자의 상호작용으로 비평해야 한다는 것이니 크게 충돌하는 것이 있을까 생각됩니다. 다만 말씀하신 작가의 윤리적 태도가 작품 평가의 핵심이 되는 경향은 사실상 문학 비평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구체화되는 작품에 대한 거부, 불매 등의 현상에 대해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문학 작품만을 바라본다면 바르트가 이해하고 주장하는 '저자의 죽음' 관점에서의 문학 비평에 있어서는 어차피 저자와는 별개의 존재로서의 창작물을 평가해야 하는 것이고 그 주체가 독자의 탄생으로 인해 이전된 것이니 그러한 행위들은 문학작품의 비평과는 별개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따라서 작가의 도덕성 등에 의한 불매, 문학작품의 혹평 등은 문학 비평에 대한 이론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트가 주장했던 '저자의 죽음'에 대한 문학 비평의 관점과 인간의 도덕성의 비판에 따른 문학 작품과의 공동화로 인한 부작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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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영화에서 서사 구조가 다른 이유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일반적인 문학을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각색을 과정을 거칩니다. 문학의 서사는 풀어낸 그대로이지만 각색된 극본은 영화의 시간, 그리고 그 제한된 시간 내에 원작의 메세지를 충분히 내세우기 위해 사용된 내용과 생략된 내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모 문학을 영상에서 구현하기 위해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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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vs 전자책, 여러분의 취향은 어디에 더 가깝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종이책을 선호합니다. 이유는 전자책이 사용하면 열이 올라 따뜻해지지만 실질적인 온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종이책의 경우 종이만의 향기가 있고 질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자책을 사용해본 결과 장시간 책 읽기가 눈이 피로해서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는 종이책을 선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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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이 문학을 안 읽는 이유, 결국 ○○ 때문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요즘 사람들이 문학을 잘 읽지 않는 이유에 가장 많은 통계로는 바쁜 생활 속에 책 읽을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경우 학습 등의 이유로 강제로라도 책을 읽고 있지만 성인의 독서량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사회생활, 경제활동 등으로 여유가 없고, 여유가 있을 경우 그것을 독서가 아닌 다른 선택지를 고른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영상 콘텐츠와 같은 것들로 대체되는 것입니다. 그에 전자책과 같은 것도 출판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전반적인 독서량이 늘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면, 기존에 책을 읽던 사람들이 전달 매체를 달리하여 이어갈 뿐 새롭게 독서로 유입되는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학 자체의 접근성은 말씀드린 전달 매체의 발달로 다양해졌으나 단순히 시간 부족의 문제라기 보다는 독서라는 것 자체에 대한 가치를 자신의 시간에서 낮게 책정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합니다. 독서 감상에만 그치고 연결, 행동 등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고 서점에 파다하게 널려있는 같은 주제의 복붙한 컨텐츠 같은 책들에도 공감이 떨어지는 이유도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가 한번 흥행하니 서점에 <단종애사>와 그 아류작들이 깔려있다던지 AI가 유행하니 대부분 SF의 주제가 다 AI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라던지 하는 서사의 피로감 등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전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독서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니 현재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독서클럽 등의 다양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그것이 개인의 독서와 감상에서만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산시키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왜?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양질의 작품에 대한 독서의 양을 늘려 마음의 양식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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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는 왜 이렇게 답답한 세계를 그렸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프란츠 카프카의 이야기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느닷없이 불행이 닥치고 억압적이며 악몽같은 분위기의 서사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프란츠 카프카의 서사 방식으로 삶의 가능성과 희망이 소명하는 분위기를 그리지만 독자들은 그 속에서 묘한 위안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얻게 됩니다. 그는 평생을 가부장적인 억압과 두려움에 떨었으며, 아버지와의 갈등, 직업에 대한 혐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혼란 등을 겪고 있었기에 그것이 작품으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그의 역작인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자신이 투영된 것이며 가족 관계,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 자신의 존재론적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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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에 생기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제일 좋은 방법은 요즘 글들이 아닌 고전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소설 같은 글 외에 인문학 서적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글을 두서 없이 쓰게 되는 것은 생각이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아 의식의 흐름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럴 때 고전이나 인문학 서적과 같은 글들은 정제된 것들이 대부분이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의 신문 사설을 그다지 논리적이 못하다는 생각을 저 개인적으로는 하고 있어서 신문 사설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부가적으로 위의 방법들로 좋은 문장들을 많이 경험하시고, 단단히 하신 다음에 만약 소설을 쓰시고자 한다면 요즘 표현들도 가미하는 것은 시대에 맞는 표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잘 섞어서 쓰시면 좋은 글을 쓰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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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 글귀를 보았는데요 사진첨부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어떠한 사실이나 새로운 것이 창조되거나 문화가 융합되거나 하면서 신조어가 생기기도 하고 있던 말이 더이상 사용되지 않아 사라지기도 합니다. 위에 말씀하신 세 문장뜻만 통하면 된다 / 언어는 변한다 / 맞춤법도 국가가 정한거다 라고 하는 것은 현행의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 등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유를 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세 문장이지만 아마도 누군가가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비판 받았을 때 그 이유를 댄 것이라고 보입니다. 세 문장은 하나의 이유를 설명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세 문장 별개이지만 사실상 하나의 표현으로 "맞춤법이란 국가 정한 것이고 언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므로 고정된 표기법이 있지만 그 뜻만 통한다면 다른 표현도 인정되어야 한다" 라는 의견을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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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은 왜 모두에게 동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공정성은 개인의 상황이나 경험, 가치관에 상관없이 규칙, 절차, 결과의 객관적 적용을 받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동일한 혜택을 적용받아도 시작점이 다르면 개인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공정성은 모든 것이 동일하기 때문에 자신이 혜택을 받은 후 전체적인 volume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받은 양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공평성, 즉 형평성의 문제는 개인의 차이를 고려한 조정과 균형이므로 높이를 맞춰주는 사회복지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혜택의 양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 일정 기준을 두고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니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적게 받는 사람도 있고 많이 받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역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적게 받은 사람은 그것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도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공정성이 절대적인 기준을 설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공정성은 법과 규칙과 절차 등을 차별없이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므로 명확합니다. 반면에 공평성, 형평성의 경우 개인의 차이를 반영하므로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조금밖에 혜택을 받지 못하고, 타인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등 기준이 달라진다고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규칙이나 법이 아닌 조정과 균형의 개념으로 목적을 맞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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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 사회 확대는 안전을 위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안녕하세요. 이기준 전문가입니다.개인 프라이버시의 침해 가능성은 농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범죄 예방 및 발생한 법죄를 해결할 때의 도구로서의 역할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감시한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두렵고 위험한 발상이 되겠지만, 현재 범죄를 당한 후 그 증거를 찾지 못해 피해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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