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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단수와 복수 동사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어가 유럽의 숱한 언어들을 모두 수용하며 발전했기때문에,여전히 지금도 고대 유럽 언어들의 습관이 변경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기때문입니다.가장 재미있는 고대식 영어는 바로 주어가 3인칭 단수일 때, 동사에 's' 또는 'es' 등의 구분을 하는 것입니다.동사의 어미는 지금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원형부정사(infinitive)라고 지금은 부르지만, 과거에는 원형부정사 형식에 -n이 어미로 쓰였지만, 지금은 소실되었죠.-ing형이 현재분사어미로 통일된 것도 변화를 겪은 것입니다. 2인칭 단수 주어의 대명사 thou와 어미인 -(e)st도 없어졌죠.독일어를 공부한 사람은 2인칭 대명사와 어미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3인칭 단수 어미로서 -s와 -th가 같이 사용되었는데, -th형 어미가 문어체에서 18세기 말 까지 쓰였습니다.그러나 구어체에서는 17세기에 이미 -s형 어미로 통일되어 있었죠.2인칭 단수 어미인 -(e)st가 16세기 초 사라지게 되어, be 동사를 제외한 나머지 동사는 과거시제 어미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물론 옛 영어로 쓰여진 글들에서는 이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죠.그런데 말입니다.일반적인 동사들이 쉽게 변화를 겪는데, 몇 고대 영어의 흔적이 아직도 변형되지 않는 이유도 재미있습니다.바로 영어사용권역에서 종교적 이유인데요.아직도 성경을 고대어를 선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그래서 신에 대한 경외심때문에, 쉽게 영어가 단순화되지 않는 것들이 아직도 변형되지 않고 남아있습니다.그러니까, 3인칭 단수인 God이나 신에 해당하는 명사가 주어이거나, 또는 대명사로 전환되었을 때,여전히 그 첫 알파벳을 대문자로 쓰고, 그에 상응하는 동사가 고대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특별한 규칙이 아니라, 그냥 영어사용자들의 문화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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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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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잠수함에서 순항 미사일을 발사 하였는데 순항 미사일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주세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북한은 한미연합훈련과 일본 자위대까지 참여시키는 ‘자유의 방패'(프리덤 실드·FS)에 반발하여,전략순항미사일(북한 발표) 2발을 발사했다고 했네요.조선중앙통신이 “전략순항미싸(사)일 수중발사훈련이 12일 새벽에 진행되였다”며 “발사훈련에 동원된 잠수함 ‘8·24영웅함'이 조선 동해 경포만 수역에서 2기의 전략순항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보도했다고 전하네요.아직 미국과 우리나라가 분석 중이지만, 만약 전략순항미사일이 맞다면, 잠수함에서 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이 방식은 미국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이유는 태평양 바다를 건너 미국 대륙 근처에서 잠수함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전략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큰 위협이기때문이죠.잠수함에서 발사하는 순항미사일은 바닷속에서 발사하므로 드넓은 태평양을 모두 모니터링해야만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데,이건 쉽지 않은 일이죠.북한 국경 내의 육지만 모니터링하면 충분히 탐지할 수 있겠지만, 미국은 이제 북한 잠수함의 이동경로는 물론이고, 미국 본토 근처 태평양 바다를 모두 탐지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순항미사일은 발사 뒤 낮은 고도로 비행할 수 있어서 레이더로 탐지하기 어려운데요.잠수함이 미국 본토에 가까이 접근해 발사한다면, 목표에 대한 정밀 타격이 훨씬 효율적으로 가능하겠죠.비행기와 흡사한 모양으로 제작해 비행하기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는 방식으로 비행이 가능하죠.우리나라 순항미사일의 경우, 1-2미터의 오차로 정밀타격할 수 있는데,북한의 순항미사일이 어느 정도의 정밀타격 능력을 갖추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핵탄두를 탑재했다면, 정밀타격이 아니라도 파괴력과 살상능력, 그리고 그 폭발 이후의 심각한 오염까지 끔찍한 무기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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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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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에 집에 태극기를 다는 이유가 뭘까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법 중에는 대한민국 국기법도 있습니다.이 법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의 제작, 게양 및 관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국기법 제정 목적에 밝히고 있네요.이 법 제8조는제8조(국기의 게양일 등) ①국기를 게양하여야 하는 날은 다음 각호와 같다. <개정 2011. 5. 30.>1. 「국경일에 관한 법률」제2조의 규정에 따른 국경일2.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제2조의 규정에 따른 기념일 중 현충일 및 국군의 날3. 「국가장법」 제6조에 따른 국가장기간4. 정부가 따로 지정한 날5. 지방자치단체가 조례 또는 지방의회의 의결로 정하는 날②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국기는 매일ㆍ24시간 게양할 수 있다.③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청사 등에는 국기를 연중 게양하여야 하며, 다음 각 호의 장소에는 가능한 한 연중 국기를 게양하여야 한다. 이 경우 야간에는 적절한 조명을 하여야 한다.1. 공항ㆍ호텔 등 국제적인 교류장소2. 대형건물ㆍ공원ㆍ경기장 등 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장소3. 주요 정부청사의 울타리4. 많은 깃대가 함께 설치된 장소5.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소④각급 학교 및 군부대의 주된 게양대에는 국기를 매일 낮에만 게양한다.⑤국기가 심한 눈ㆍ비와 바람 등으로 그 훼손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이를 게양하지 아니한다.⑥국기의 게양 및 강하 시각, 시각의 변경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이 법에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2조는,제2조(국경일의 종류) 국경일은 다음 각 호와 같다.1. 3·1절: 3월 1일2. 제헌절: 7월 17일3. 광복절: 8월 15일4. 개천절: 10월 3일5. 한글날: 10월 9일[전문개정 2014. 12. 30.]이렇게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요.이 법에 따르면 삼일절이 국경일이고, 법률에 정한 장소는 게양하는데요.각 가정에서 국기를 게양하는 것은 법에 의한 것은 아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국가의 경사스러운 기념을 함께 한다는 의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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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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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왜 28일까지이며 왜 4년에한번은 29일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라네요.평균적으로 365.2422일인데, 4년에 한 번 2월에 29일을 삽입, 366일로 맞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필 2월이?여기에는 로마 황제의 이름에서 따온 월명에 힌트가 있는데요.8월은 이상하게도 31일이잖아요?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8월을 30일이 아닌, 31일로 바꾸었다네요^^악티움해전의 승리를 기념해 8월의 자신의 이름을 딴, August를 31일로 만들기 위해 2월의 하루를 빼앗아 왔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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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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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말하는 정통과 이단은 어떻게 구분하면 되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독교의 정통이라는 것은 종교적 합의를 통해 결정한 내용에 따르는 것이고,이단이라는 것은 합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길을 걷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독단적인 길이 모두 이단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정통이라는 합의를 따르지 않고 독단적인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비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다시 말하면, 이단이라고 정통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결정하는 이유는, 맞대응해서 정통을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대응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 아닐까요?독단적인 길을 걷는다고 해도,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면, 이단으로 결정이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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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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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독교와 불교는 모두 종교인데요.불교가 철학적인 반면, 기독교는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불교의 창시자는 왕자로 태어나 일상에서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을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서 깊이 사색했고,그 결과 모든 생각을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으셨고, 그것을 알려주었습니다.반면 기독교의 창시자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로마제국과 종교지도자들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서 자유를 선포했고,그 결과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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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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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왜 한글을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종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인데요.태종은 이제를 세자에서 폐하고, 충녕대군이었던 이도를 왕세자로 임명합니다.이유는 충녕대군이 총명하고, 학문을 즐겨하고, 정치를 알고, 의견을 잘 제안했다고 하네요.태종은 이도에게 임금 자리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세종대왕을 도왔다고 합니다.태종은 개국공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해 두었고, 세종대왕은 상왕 아래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스트레스도 엄청 났을 텐데, 그래서인지 음악에 아주 능했다고 하는군요.세종대왕은 한글창제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악의 기틀을 마련하셨는데요.박연을 기용해 아악을 정리하셨고, 정간보(음의 시가 표기법) 편찬, 중국산 편경의 국산화, 악서 찬정, 여민락, 보태평, 정대업 같은 음악 제정이 제위기간에 완성되었습니다.세종대왕은 절대음감을 가지고 계셔서 궁중 악사의 연주의 틀린 부분을 지적하실 정도였다고 하네요.장영실을 기용해 천체를 살피는 기구와 농사기술도 개발하셨죠.도량형을 통일하여 널리 동일하게 사용하게 했고,농사직설, 대마도정벌, 4군6진, 집현전, 고려사 편찬, 법전 편찬, 해시계 양부일구 제작, 물시계, 자격루 발명, 총통, 신기전, 자격루 개발, 칠정산 편찬까지 뭐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네요.훈민정음의 필요성은 집현전의 학문적 분위기에 더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데요.훈민정음 해례본은 이를 잘 드러내 주는데요.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고, 모음은 천지인을 본떠 만들었다고 밝혀놓았는데요.자음이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으니, 과학적이고,모음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천, 지, 인을 본떠서 기본자 '∙', 'ㅡ', 'ㅣ'를 만들었다고 하니 철학적입니다.기본자를 한 번 합성하여 초출자를, 두 번 합성하여 재출자를 만들었다네요.하늘과 사람,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의미하는 조합들이랍니다. 'ㅏ'는 사람과 하늘의 조화, 'ㅗ'는 하늘과 땅의 조화 뭐 그런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지요.이런 음가와 구강의 모양을 과학적으로 본떠는 것은 세종대왕의 절대음감도 한글 창제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어쨌든 세종대왕의 이러한 노력들은 결국 애민사상이었을 것이고,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효과적으로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언어 문제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효행록, 삼강행실도(그림으로 교육적 자료를 배포) 등의 노력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언문의 필요를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한자와 그림으로 그려서라도 백성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셨고,집현전이 확대되면서, 지혜가 있고 총명한 이들을 발탁하셨는데,이들의 학문적 노력에서도 소리 글자인 언문이 필요하다는 것이 느껴진 것 같습니다.결국 훈민정음, 한글창제는 한자로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다 담아내지 못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닌가?또,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창제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과연 신하들이 모두 반대했을까?제 생각에는 최만리와 정창손의 반대 상소 역시 충심이었다고 생각됩니다.그리고 반대하는 신하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도 생각합니다.이미 태종께서 개국공신들을 제거하시고, 새시대를 열 수 있는 신하들을 조정에 발탁하셨기때문에, 세종의 업적을 도운 신하들이 훨씬 많았지 않았을까요?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32년 재위기간에 저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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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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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는지금의 전등사, 처음 지을 때 이름은 진종사삼국시대인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지금의 자리에 진종사眞宗寺를 창건했고, 고려 충렬왕 때 송나라에서 가져온 대장경을 보관하게 하고,옥등(玉燈)을 시주해, 전등사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정족산에 위치해 숱한 전란에도 건재할 수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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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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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청각장애인 맞은가요? 노래를 어떻게 들을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베토벤이 청각장애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청력을 상실했는 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존재하네요.미국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 음악학 교수인 시어도어 알브레히트는 베토벤이 왼쪽 귀는 들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군요.베토벤은 1827년 세상을 떠났고,1824년에 교향곡 제9번의 초연 때 뿐만 아니라, 1826년 3월 현악4중주 제13번 내림나장조(작품 130)를 마지막으로 지휘했을 때까지 완전히 귀가 안 들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네요.대부분 그의 말년에는 청각이 전혀 기능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기때문에,그런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베토벤이 청각을 잃기 전에 이미 많은 작품을 작곡했기때문에,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던 동기라고 주장하죠.1798년쯤 귀에 이상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고,1801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3년 전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어'라고 처음으로 고백했고,이듬해에는 '세련된 대화도 불가능하다. 마치 사라진 사람처럼 따로 살아야 해. 다른 사람보다 더 정확해야 하는 이 감각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어.'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에 청각이 그의 대화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게 합니다.그리고 '대화책'이란 것을 들고 다니면서 글로 써서 대화를 했는데, 이런 그의 행동도 청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죠.그러나 알브레히트는 1798년 청력을 잃기 시작한 베토벤은 1818년부터 이 '대화 책'을 들고 다녔고,베토벤의 대화 책 중 1823년 작성된 한 장에는 베토벤이 자신의 청력 감퇴에 대한 한 낯선 사람의 충고를, '목욕과 시골 공기는 많은 것을 향상시킬 수 있다. 너무 일찍 기계 장치(나팔형 보청기)를 사용하지 마라. 그것들의 사용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나는 상당히 내 왼쪽 귀를 보존해왔다'고 적었는데, 베토벤이 '가능하면, 글을 통한 대화가 더 낫고 청각은 예비가 될 것'이라고도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아, 베토벤이 여전히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고 주장하네요.청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베토벤이 느낀 충격과 이로 인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더욱 작곡에 몰입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청각장애가 베토벤이 죽기 전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의 장애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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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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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비제도는언제없어졌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후기, 1886년 2월 6일, 고종황제는 노비세습제 폐지를 공포했답니다.동학농민혁명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항거하기 위해 시작된 농민들의 봉기였으나,양반, 양인, 천민으로 나눠진 신분제도 1984년 갑오개혁(고종 31년)에서 신분제도가 폐지되었고,2년 후 고종황제는 노비세습제도 폐지하면서, 노비제가 완전히 폐지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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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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