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의 마니교는 어떤 종교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독교나 조로 아스터교의 이단으로 여겨지는 마니교는 3세기에 '빛의 사도' 또는 최고의 '빛을 비추는 자'로 알려진 예언자 마니(Mani : 210? ~ 276)가 페르시아에서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운동에서 시작했다고 전해 집니다. 마니의 활동 초기에는 기독교, 조로 아스터교 등의 여러 요소를 가미한 이단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拜火敎]에서 파생되고, 그 교리가 일관되고, 체계가 확실히 잡혀가며 고유한 종교로 자리잡았습니다. 마니는 오늘날의 이라크 남부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24세가 되던 해에 계시를 받아 대중들에게 설교를 시작했다. 마니는 자신이 아담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 붓다, 예수로 이어져 내려온 예언자들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종교적 진리는 한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 여겨 선교 초기부터 전세계를 개종시키고자 활발한 선교활동을 했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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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면도를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백성들은 면도를 거의 하지 않았고 수염을 길었습니다. 하지만 스님들의 경우 삭도(削刀)'라고 하는 예리한 칼이 있어 그 칼로 머리와 수염을 잘랐다고 합니다. 요즘도 오래된 이발소에 가면 면도칼이 있는데, `삭도'가 바로 그 면도칼과 같은 역할을 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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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왜 자기가 황제가 되지 않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기가 직접 황제가 되면 정적들이 많이 생겨 날 것이고 자신은 반역자가 되면서 많은 중국의 영웅 호걸들에게 자신을 칠 명분을 쥐어 주게 되는 것임을 알기에 직접 황제가 되지 않고 실제로는 왕위의 왕으로 군림 하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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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고문에 한글이 쓰이기도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라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한글로 된 방을 붙이기도 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당시 불안한 민심을 달래고 또 한편으로는 백성들을 전쟁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교서를 한글로 번역하게 하고, 한글로 방문을 만들어 반포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1593년 9월에는 왜적에게 투항한 백성들에게 돌아올 것을 종용하는 내용을 담은 한글 교서를 내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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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내시처럼 다른나라에서도 과거에 신하가 거세를 한 경우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에서도 조선의 내시와 같은 환관이 있었고 서양에서도 거세를 한 내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나 환관 혹은 내시는 존재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성 호르몬이 넘쳐 나는 사람들을 궁궐에 두면 많은 성적인 문란한 사건이 일어 날것이기 떄문 입니다. 내시들은 물론 아기를 낳을 수 없기에 양자를 많이 들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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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는다 하잖아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분은 속 안의 마음 즉, 감정 일것 입니다. 나의 속 안의 이야기를 모두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속 안의 마음을 쉽게 밖으로 꺼내지 않고, 다스릴 줄 아는 태도를 가지는 것 그게 진정한 어른이라는 말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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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차사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실제 사건 입니다. 조선 태종 이방원이 태조의 환궁을 권유하려고 함흥으로 보낸 차사를 일컫는 말인데 그러나 차사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세간에 퍼지면서, 한 번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거나 소식이 없다는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태종 이방원이 저지른 일(왕자의 난)과 그것을 오랫동안 용서하지 않았던 태조 이성계를 비유해서 나온 말 입니다. 함흥 차사로는 이성계와 평소에 친분이 있던 성석린과 같은 사람들을 선별 해서 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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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흑인 노예가 아닌 백인 노예도 존재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슬람 제국의 백인노예를 일컫는 '화이트 골드'가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숱하게 존재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기록에 따르면 메크네스에만 프랑스, 에스파냐, 영국, 이탈리아 등에 끌려온 백인 남녀 노예가 어느 때든 최소 2만5천 명이 존재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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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중전이 될 사람을 뽑는 기준이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전을 간택 할 떄 기준은 조선 왕조가 이씨기에 우선 이씨가 아닌 사람이 최우선 이고 부모가 있는 사람이며 세자 (또는 왕자녀)보다 2, 3세 연상까지의 여성 및 이성친 (異性親)의 촌수 제한이 있었다고 합니다. 간택은 초간택·재간택·삼간택 등 3차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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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집마다 목욕시설이 있지는 않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세유럽에는 현대적인 수도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목욕을 한 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한 번 나무로 만든 목욕통에 물을 붇고, 불로 데우면, 가족 전체가 차례로 한 목욕통에서 목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에서 악취나 많이 낫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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