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비오는 날씨에 강우량은 어떻게 측정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시대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는 길이 1척 5촌(약 32cm), 지름 7촌(약 15cm)이며, 비가 그친 후 주척(周尺)을 써서 푼(分) 단위까지 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간과 그친 시간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전국적으로 강우량을 측정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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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어떤 내용의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경은 구약 36권 신약27권 총 66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약은 메시아를 예언하고 (이사야 53 장), 신약은 메시아가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요한복음 4:25-26). 구약은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신약은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어떻게 그 율법을 성취하셨는지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5:17; 히브리서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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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는 어디에서 유래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필리버스터라는 용어의 유래는 스페인어인 "filibustero"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용어는 원래 16세기에 서인도의 스페인 식민지와 함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의미 했으며 약탈자 라는 의미로 사용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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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때 쓰는 표현 알려주세요! 서로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인데 알고보니 원인이 같았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두개의 사건이 겉으로 보기에는 다르지만 두 사건이 관련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은 두 사건다 연관성이 있다고 보통 하지요. 혹은 두 사건에는 공통 분모가 있다 라고도 예기 하구요. 만일 사건 사건 라고 한다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라고도 표현 할수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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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람들은 왜 결혼(혼인)을 일찍 했던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전에는 농경 사회 였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수자 아무래도 많은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루 라도 더 빨리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서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아버지, 나, 그리고 내아들 까지 아렇게 4대가 한집에 사는 경우도 비교적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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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가 없던 과거에는 어떻게 뒤처리를 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장지가 없던 조선 시대 같은 경우에는 화장실에 휴지 대신 새끼 줄을 묶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변을 보고는 그 줄을 비벼서 휴지 대신 사용하고는 했습니다. 1950-70년대만 해도 신문지를 부비어서 화장지 대신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생활에 두루마리 휴지가 사용되기 시작 한것은 1980년초 부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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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이라는게 진짜로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지몽은 실제로 존재 하는 것 같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기에 어떠한 이유에서 그러한 예지몸을 꾸는지 정확하게 밝혀 진 바는 없지만 길흉 화복을 꿈에서 보여 줌 으로서 어떠한 사건등의 발생을 미리 대비 하거나 조심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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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헌부는 오늘날 어떤 기관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헌부(司憲府)는 고려와 조선시대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으로, 지금의 감사원,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헌부(憲府)·백부(栢府)·상대(相臺)·오대(烏臺)·어사대(御史臺)·감찰사 등의 별칭을 가졌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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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안 지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는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고 볼수 있는데 또 주변 상황이나 환경이 변하는 것을 꺼려하며 스스로에게 푹 빠져 지극히 자기 중심적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항상 약속시간에 늦는것 입니다. 즉, 본인은 인정 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시간이 더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나만큼 중요 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생각이 몸에 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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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당시 조선이라는 이름을 국호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이라는 이름을 명이 조선에게 줄 때 명나라는 『한서지리서』에 등장하는 은나라 때 현인인 기자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하여 백성을 교화시키자 주나라 무왕이 그를 조선의 제후로 봉하였지요. 그래서 주원장은 조선을 중국의 제후국이라 폄하하여 '조선'을 국호로 선택한 것입니다. 조선이 마음대로 정한 것이 아니라 명이 정해 준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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