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보통 나라의 중심지가 수도가 되지 않나요? 서울이 수도가 된 역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울은 백제의 수도 였고 조선의 수도였고 현재 대만 민국의 수도 입니다. 백제는 한강 유역이 군사적 지리적 중요성을 가지기에 한성을 서울로 삼았고 조선 또한 조선 8도의 중심 이자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을 수도로 삼게 된것 입니다. 대만 민국도 북한과는 가깝지만 그래도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을 굳이 옮기지 않고 계속해서 수도로 사용하게 된 것 입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1796년 진산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약용은 결국 배교를 한뒤 다시 번복을 해 순교 당합니다. 지산 사건이란 윤지충(尹持忠)은 1759년 부유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로, 정약용과는 내종사촌 관계입니다. 24세의 나이로 진시에 합격한 윤지충은 이후 정약용의 권유로 중국에 갔다오게 되고 거기서 견진성사까지 받고 온다고 합니다.고향인 진산(珍山)으로 내려온 윤지충은 2년 뒤 1791년에 모친상을 맞게 된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였지만 유교적 관습을 하루아침에 버리기는 뭐했던 것인지, 처음에는 유교적으로 상을 치르고 조문을 받고 혼백도 모셨다고 합니다. 외종사촌이자 마찬가지로 천주교 신자인 권상연(權尙然)이 이를 보고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투의 말을 하자윤지충은 생각을 바꿔 모친의 궤연을 뜯고 상복을 불태우고, 조상의 위패까지 전부 없애버린다고 합니다. 얼마 뒤 권상연도 모친상을 맞고 그는 처음부터 조문객도 받지 않고 천주교의 방식대로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은 유교적 질서가 다스리던 나라였고, 따라서 둘의 행동은 조선의 이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기에 구체적으로, 조선시대때 신주나 시신을 고의적으로 훼손시킬 경우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이를 고발당한 윤지충은 도망쳤으나 자수했고 진산 군수 신사원(申史源)은 윤지충과 권상연에게 다시 상복을 입고 유교적 예를 갖출 것을 권했으나 그들은 뜻을 꺾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윤지충과 권상연은 정조의 명에 따라 사형을 선고 받고 전주의 풍남문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이들이 처형 당한 터에지금은 천주교 전주교군 전동성당세워졌다.) 또한 진산 군수 신사원은 이 일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땅에 유배당했다고 합니다. 한편 같이 체포된 이승훈은 관직을 삭탈당하고,주교 역할을 했던 권일신은 배교하는 것으로 목숨은 부지했지만 유배지 이동 중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홍낙민, 최필공,세례자 요한, 정역용, 정약종아우구스티노는 신앙을 버리겠다는 상소를 올려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약종은 배교를 번복한 뒤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래 해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고구려에 처음 불교를 전한 것은 전진(前秦: 315~394)의 왕 부견(符堅: 재위 357~385)이 사신과 승려순도(順道)를 보내어 불상과 불경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적인 공식 기록일 뿐,불교가 이 보다 먼저 전해졌으리라는 것을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 (梁: 502~557) 때 승려 혜교(慧皎: 497~554)가 저술한 《양고승전(梁高僧傳)》(519년)등의 문헌에 나타난 내용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가톨릭 역사에서 교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요 최초의 교황은 누구였습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로마 교회는 예수남의 열두 제자 중의 한명인 성 베드로(ST. Peter)가 A. D. 42-43년경 가톨릭교회를 창시했다고 하고 제1대 교황이라 주장합니다. 가톨릭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첫 번째 교황으로 임명하셨으며, 가톨릭교회에서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교황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1대 교황은 베드로 입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영화 밀정과 같은 밀정이 실제로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화 밀정은 이때의 실제 사건의 실존인물을 다루며 황옥이라는 인물의 극중 설정인 조선경찰 이정출의 내면을 통해 따라가면서 스토리를 전개시켰다고 평가 받습니다.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경부 폭탄사건의 '황옥'을 모델로 한 인물인데 황옥은 1920년 3월 경기도경찰부 직속 도경부에 특채, 고등과에 근무하며 높은 성과를 올리던 유능한 조선인 고등경찰이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명품시계의 대명사 롤렉스가 명품의 반열에 오른 계기는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한정된 제품 만들 수공예로 만들기 때문 입니다. 모든 보석이 귀한 이유는 그 만큼 희소성이 있기 때문 입니다. 로렉스도 대량 생산을 하지 않고 소량 생산을 하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희소성에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아주 클래식한 디자인 입니다. 로렉스는 싶플하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명품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 합니다. 띄어난 성능과 고품질은 기본적으로 갖춘 기능 중 하나 입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과거 우리나라가 독재정권 때 왜 두발과 스커트 길이를 검사했던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의 문화를 많이 경험한 사람 이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던 것 입니다.남학생들은 머리가 짧아야 하고 여학생들은 단말 머리를 하고 다녀야 학생의 본분이라고 생각 했던 것 입니다.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도 마찬가지로 여겨졌습니다. 지금이야 여성들의 인권을 탄압 하는 행위로 여겨 지지만 당시에는 덩연한 것으로 생각 되었습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함무라비 법전이 세계 최초의 성문헌법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함부라비 법전이 가장 오래된 성문법전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미 함무라비 법전 보다 2세기 전 그러니까 기원전 21세기에 수메르 우르라는 중동 지역에 우르 남무 법전이라고 하는 법전이 존재 했으며 함무라비 법전과 유사한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함무라비 법전이 이를 많이 인ㅇㅇ 햤을 것이라고 추정 됩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큰 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엿'을 주는 풍습은 어디서 유래 되었나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통 수능 시험 같이 중요한 시험 날 엿을 주는 행위는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행위로 여겨지지만 시험 날 엿을 먹으면 합격한다는 이야기는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여 엿의 비밀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것인데 식품학에서 엿은 2당류에 속합니다. 당이 둘이란 뜻인데요 밥을 먹어 우리 몸에서 에너지로 흡수되려면 다당류인 탄수화물을 먹어 당을 분해하여 1당이 되어야 흡수할 수 있고 에너지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두뇌 활동 에너지는 다당류인 탄수화물이 1당인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흡수돼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아침밥을 먹어야 두뇌활동이 좋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한다고 하는데 근거가 있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밥을 먹어 탄수화물이 1당으로 바뀌어 흡수되는 데는 3~4시간이 걸립니다. 아침에 등교하여 오전 10~11시까지는 어제 먹은 탄수화물이 당으로 바뀐 것을 영양으로 쓴다고 볼 수 있고 그 다음은 아침밥이 분해되어 영양을 공급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이와 같이 엿을 주는 행위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백제 패망후 의자왕은 중국에서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의자왕은 중국에서 죽었습니다. 중국의 낙양과 가장 인연이 깊은 한국인은 의자왕(義慈王)인데 한때 '해동증자'로 칭송받던 의자왕은 재위 16년째부터 사치와 방종으로 국정을 게을리하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패해 당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그는 태자 효, 왕자 융, 그리고 백성 1만2000여명과 함께 당으로 압송된 뒤 곧 병사했다고 합니다. 그가 묻힌 곳은 낙양 북쪽 망산(邙山)에 있다는 손호(孫皓)와 진숙보(陳叔寶) 무덤 옆으로 알려져왔습니다. 손호는 손권(孫權)의 손자로서 오(吳)의 마지막 왕이고, 진숙보는 남조 진(陳)의 마지막 왕으로, 둘 다 주색과 폭정으로 나라를 잃었다고 합니다. 당(唐)이 의자왕을 이들 옆에 묻은 것은 백제왕을 격하하면서 동시에 후세에 경계를 삼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망산, 즉 북망산은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으로 시작하는 '성주풀이'의 노랫가사가 가리키는 곳이기도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18
0
0
1342
1343
1344
1345
1346
1347
1348
1349
1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