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신사임당의 초서병풍이 오늘날까지 보관되어진 이유가 특이하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건이 있었나요?
신사임당의 여섯 폭짜리 '초서병풍'이 오늘날까지 보관되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특이하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연이나 사건이 있었나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릉부사 이형규의 발문에 따르면 사임당의 넷째 여동생의 아들인 권처균이 초서 6폭을 얻었는데 그의 딸이 최대해에게 시집갈때 가지고 갔고, 영조 때 이웃 고을 사람에게 넘어간 것을 당시의 강릉부사 이형규의 주선으로 도로 찾게 되었습니다.
이후 강릉시 두산동 최돈길 집에 전해지던 것을 1971년 강릉시가 인도받아 율곡기념관에서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병품의 사연은 사임당의 넷째 여동생의 아들인 권처균(權處均)이 초서 6폭을 얻었는데, 그의 딸이 최대해(崔大海)란 사람에게 출가하면서 이것을 시집으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 뒤 영조 때 이웃 고을 사람의 꼬임으로 넘어갔는데 부사가 그 사연을 듣고 찾아서 후손에게 되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근래까지 강릉시 두산동의 후손 최돈길(崔燉吉)씨 집에 전해오다가 1971년 강릉시가 양수(讓受)받아 율곡 기념관에 보관하게 되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