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돌궐족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외모가 서양인처럼 생겼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돌궐은 터어키인 들이고 터어키는 지금도 남유럽에 속해 있는 유럽인 입니다. 한자어 돌궐(突厥)은 튀르크족의 가차(假借)식 표기인데 한편 주서 이역전(異域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금산(알타이산맥)의 남쪽에 살며 여여(유연)을 위하여 철공 일을 하였는데 금산의 모양이 투구와 비슷하였는데, 그들이 관습적으로 투구를 돌궐이라고 했기 때문에 마침내 이를 이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당나라를 세운 당고조 이연는 한족 아닌 유목민 족의 후손이란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은 약 90% 이상의 인구가 한족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 누가 진정한 한족이고 이민족인지를 구분 하긴 상당히 어렵다고 합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거란, 흉노 약탈과 선비족, 말갈족, 몽고족, 만주족 등등 정복과 경영으로 만들어진 나라 입니다. 그래서 사실 당나라 고조 이연 또한 유목 민족의 후손이라고 한들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두꺼비 집 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기선들의 합금이 녹아버려 전기가 더 이상 흐르지 못하여 전기 사고를 방지할 수 있게 만든것이 '퓨즈(fuse)'였습니다. 이 퓨즈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기 재질의 보호 상자를 외각에 만들었는데 이 상자의 모양이 두꺼비를 닮았다고 하여 '두꺼비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세종대왕 말고 조선시대 다독왕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외에 조선 시대 다독왕은 아마도 정조 임금 이였을 것 입니다. 그는 4세 때 <효경>을 읽었고, 보양관으로부터 <소학>을 배웠다고 합니다. 동궁 시절 14년 동안 읽지 않은 책이 없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엄청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신하들을 가르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지요. 독서는 습관이라고 하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으며 늘 책을 읽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지요. 일성적으로 정조는 낮에 일이 바빠 책을 읽지 못하면 깊은 밤이라도 책을 읽어야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날마다의 독서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책을 읽는다는 매일의 계획을 세워 두었기 때문인데요. 매일 일정한 양을 정해두고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식 습득에도 도움이 되지만, 마음을 잡는데도 중요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정몽주가 이성계와 협력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같은 고려 시대의 신하 였지만 정몽주는 충신의 표본으로 기억하고 신숙주는 변절의 표본으로 기억하고 있는 아유는 바로 정몽주는 개인의 안위 보다는 고려 시대 왕조에 대한 충정을 인생의 우선으로 삼았고 신숙주는 왕조 보다는 조선이라는 나라 혹은 백성이 먼저 라고 생각을 한 이유 인 것 같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인도처럼 계급이 존재하는나라가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사라져 가는 제도 이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는 금지를 하고 있는 시스템 입니다. 현대 국가 에서 공식으로 신분의 차이를 인정 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물시계 자격루와 중국의 비루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항아리나 원통형인데 비해서 중국 비루는 금속모양이 나타나는 육면체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실험과 고증을 통해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돌아가지는 않고 있으며, 모형으로서 의미만 갖는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이 건국될때 다른 이름이 있었다는데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이 국호를 정하는 것은 당시 혼자서 결정 할 것이 아닌 중대한 사안 이였습니다 그래서 명나라 사신을 보내서 어느 것을 택할지 결정 해야 했는데 이를 택정이라고 합니다. 조선이라는 이름과 다른 한가지는 바로 화령이라는 명칭 이였습니다. 조선은 우리 나라 역사상 오랫동안 유래(단군조선·기자조선 등)되어온 명칭이고, 화령은 1369년(공민왕 18)화주목(和州牧)에서 개칭된 지역명으로 이성계의 출생지이자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이유로 채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화령은 1393년(태조 2)에 다시 영흥(永興)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1392년 11월 예문관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다시 명나라에 파견해 국호 개정의 뜻을 전하고, ‘조선’과 ‘화령 둘 중에서 국호를 택해줄 것을 청하였고 다음 해 한상질이 명나라 예부(禮部)의 자문(咨文 : 중국과 왕래하던 외교 문서)을 가지고 왔는데, 여기서 화령은 폐지되고 조선이 택정되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아메리카 13식민지의 대표자회의 대륙회의에서는 어떤 것들을 의결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국의 식민지 13개 주들 뉴햄프셔, 매사추세추, 로드아일랜드 및 프로비던스, 코네티컷,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의 뉴캐슬·켄트·서섹스, 메릴랜드,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대표들이 만나 선언서를 작성 하는데 식민지의 선량한 인민은 영국의회와 정부의 독단적 처사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들의 종교, 법률, 자유가 억압받지 않도록 어떠한 조치를 강구하기 위하여 필라델피아 시에서 전체회의를 소집하고, 이 회의에 참석할 대표를 식민지마다 선출하고, 임명하게 됨으로써 더이상 영국의 식민지가 아닌 자치권을 부여 받은 독립 된 주로 남고자 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임오군란이 일어나게된 배경은 무엇이고, 임오군란은 조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오군란은 1882년(고종 19년) 6월 9일 훈국병들의 군료분쟁에서 발단해 고종 친정 이후 실각한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된 정변인데 그 이유는 무위영 소속 군병들에게 양이 절반밖에 안 되고 겨와 모래가 섞인 군료를 지급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합니다. 소요가 일어나자 민겸호는 주동자를 혹독하게 고문한 후 처형케 했다고 합니다. 이에 격분한 군병들이 통문으로 결집을 호소하여 대규모 폭동으로 발전했지요. 사실 이때에 화가 난 군인들의 손에 명성 황후가 살해 될 뻔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신 척신·관료의 집을 습격하고 마침내 궐내로 난입해 이최응·민겸호·김보현을 살해하면서 사건은 종결 되고 다시 대원군이 집권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