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고지식한 분을 꼰대라고 합니다. 꼰대라고 하는 분들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에는 주로 교사나 아버지를 지칭하는 은어로 쓰이다가 언젠가부터 말이 안 통하거나 서열과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꼰대의 특징은 권위혹은 서열주의 , 불통 , 독선 , 무례 인정욕 자기애 및 과거 회상 주의 등이 특징 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어머니날의 시작은 어떤 계기인가요? 문뜩 궁굼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25종전 이후 1955년 대한 민국에서는 1955년 8월 어머닌ㄹ을 정식으로 국회에서 제정 하게 되었고 1973년 까지 계속 이어져 오다가 1973년 3월30일 어버이 날로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초장기에는 5월 두째 주 일요일이였는데 후일에 5월8일로 되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Mud in your eye의 뜻 유래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말은 영국이나 미국의 경마에서 비롯된 표현 이라고 합니다. 비가온뒤 경마장은 보통 뒤에 오는 말들은 앞의 말들이 일으키는 진흙을 그대로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지요. 그렇게 진흙을 뒤짚어 쓰고 역전을 해서 우승을 한 말이나 기수를 위로 하기 위해 술을 한잔 하면서 mud in your eyes라고 건배사를 제창 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금의환향이라는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의환향 이란 성어의 유래는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금의'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옷이라는 뜻으로 옛날에 왕이나 관직이 높은 사람들이 입던 옷입니다. 초한 전앵에서 항우는 한생을 죽였고 결국 팽성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결국 유방은 다시 함양을 차지하였으며 다시 힘을 되찾아 해하에서 항우를 크게 격파하였고 이로써 항우는 금의환향으로 자신의 공덕을 고향에 널리 알리기는 하였지만 천하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 일화에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금의환향'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포상팔국의 난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 시대가 도래 하기 전인 3세기 전반 후한이 붕괴하고 중원 세력이 분열하면서 동아시아 전역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변한의 여러 국가도 정치적 성장 방향의 전환을 도모하게 되었는데 . 진한(辰韓) 지역에서 사로국(斯盧國)이 진한의 여러 나라를 통합하기 시작한 것처럼 변한 지역에서도 각 소국들 사이에 주도권 경쟁이 가속화되었다고 합니다. 변한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상남도 해안에 위치한 8개국이 작당 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를 흔히 ‘포상팔국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을 일으킨 포상팔국은 가라(혹은 안라)와 신라를 연이어 침공하였지만 모두 격퇴당하였고 그 결과 포상팔국은 몰락하거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전쟁 이후로 창원의 골포국은 탁순국으로 바뀌게 되고 고사포국은 고자국(古嵯國)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칠포국은 인근의 아라가야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갓크기가 신분을 증명하는 방법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모자는 의관 정제를 통해 품격을 완성했던 일종의 문화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신분제의 표본이자 예의이며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패랭이 등은 서민이나 일반 백성들이 쓰고 깃이 넓은 갓은 주로 양반들이 착용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신분확인 방법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패는 조선시대의 신분증으로, 오늘날 만 17세 성인 남녀가 모두 발급 받는 주민 등록증과는 달리 남자들만 지급 받았다고 합니다. 호패는 신분에 따라 재료가 달랐지만 호패를 장식하는 술은 개인적 취향이나 경제력에 따라 달라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호패를 보면, 신분이 높아도 호패 술은 별반 장식이 없는 것도 있지만, 벼슬 하지 않은 사람의 것일지라도 상아로 깎은 주판알 같은 구슬 장식을 이중으로 하여 멋을 내고, 호패 술도 매우 풍성하고 긴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강감찬의 삶에서 가장 큰 고난은 무엇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감찬 장군은 대기 만성형의 위인 이였습니다. 강감찬은 어려서부터 키가 작고 얼굴에 곰보 자국까지 있었지만 학문을 좋아하고 재주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36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를 하고 벼슬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당시 거란군 장수 소배압은 10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고려에 쳐들어왔고, 고려에서는 한국 위인 강감찬 장군이 70세의 나이에 1만 2천 명의 군사로 거란군과 싸웠다고 합니다. 강감찬 장군의 전략은 거란군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 보다 기습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늦은 나이에 과거 에 합격 한것도 힘들었을 텐데 나이 70이란 노인이 전쟁터에서 싸웠다고 생각 하니 굉장히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테레사 수녀의 선교활동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북마케도니아의 스코페에서 알바니아계 로마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1928년에 아일랜드의 라스판햄으로 이주해서 로레토 수녀회 입회 하였습니다. 이때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녀가 되고 테레사로 개명하였다. 그 이후 선교 활동과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이던 인도로 이주하였고 후 45년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다른 나라에서 헌신하였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러일 전쟁에서 표면적으로는 일본이 승리한 것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일본은 경제적으로도 영국에 종속된 상태였습니다. 당시 국제 경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본위 등을 기반으로 화폐를 발행했는데, 일본은 충분한 금을 확보하지 못해 자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받은 배상금을 영국에 맡기고, 이를 담보로 영국 파운드와 연동하는 형태로 엔화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화폐 발행은 당시 영연방이나 영국 식민지에서 주로 취하던 방식으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막고, 영국 파운드를 통해 국제 결제 등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영국 자본에 종속되어 독자적인 환율 정책이 어려울 수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2차 영일동맹은 군사적 관계까지 영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러일전쟁이 일어났고, 그 대가는 온전히 일본이 치루었지만, 그 승전의 보상을 차지한 쪽은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열강이었습니다. 일본이 실질적인 승전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 입니다 일본은 서구 열강의 이른바 대리인이 되어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룬 것에 불과하였던 겁니다. 하지만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부터 영국과 미국 등의 전쟁이 아닌 자국의 전쟁이며, 그 결과 역시 자국의 승리라고 포장하게 됩니다. 자국의 승리로 포장하지 못할 경우 자칫 메이지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