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소수자들은 아직도 법적 한계와 차별을 마주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동성애는 불법이 아니며 법령에 의해 개인의 성적지향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동성 결혼은 법제화를 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나 형법에 동성애가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국가위원호법의 제 2조 3항과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법률》 《군의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에는 성적지향에 대한 처벌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고요. 또 법무부 훈령 '인권수사준칙' 등에도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중세 상하수도 개발은 언제부터 일어났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도 물이 깨끗해 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런던에서 아이 둘 중 하나는 성인이 되기 전 사망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화장실이야말로 인간 수명을 늘리는 절대적 요인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현대의 위생시설 덕분에 20년 늘어났다는 말도 있습니다. . 런던 하수도를 최초 설계한 조셉 바젤게트는 '위대한 위생가'로 추앙해야 마땅하다고 하는데요. 그가 1858~1866년 런던 중심부에 하수도를 만들기 전 템스강은 거대한 변소였다고 합니다. 이 것은 마치 조선 시대 우리의 청계천도 하수천 이랑 다를바 없던 것이지요. 1848~1849년 템스강 식수를 마신 런던 시민 1만4000명이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런던 1858년 드디어 토목 공학자 조셉 바젤게트와 그 자문 위원단의 주도하에 런던의 하수도는 엄천난 공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런던은 하수도망이 세계에서 가장 긴 도시가 되었고 민영 수도회사 템스워터가 관리하는 런던 하수도는 약 6만㎞로 뉴욕의 6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 음악을 가장 사랑한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궁중에는 향악, 당악, 아악이 연주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향악은 우리 음악, 당악은 당나라 음악, 아악은 중국 주나라 때 음악으로 고려 시기 송나라에서 전해진 음악입니다. 잔치 때는 주로 향악과 당악이, 제사 때는 주로 아악이 연주되었는데요. 당시 세종 대왕은 “우리나라의 음악이 다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없기에 중국에 부끄러워할 것은 없소. 중국의 음악인들 어찌 바르게 되었다 할 수 있겠소?” 라고 당시 박연에게 예기 했다고 합니다. 박연은 중국 태평성대 시대인 주나라 음악을 복원하려고 했어요. 세종은 아악과 우리 향악이 조화롭게 연주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고요.세종의 명을 받은 박연은 궁중 음악인 아악을 잘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음악인 향악도 함께 연구했지요. 또 악기를 손보고, 악보도 정리해 책을 펴냈어요. 차근차근 우리 음악의 기틀을 마련해 나갔습니다. 즉 세종 대왕은 나라의 말인 한글 창제뿐 아니라 조선의 음악 까지도 중국과는 차이를 두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던 진정한 문화 예술 까지도 사랑했던 왕이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포퓰리즘(populism)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포퓰리즘은 ‘대중영합주의’ 특히 ‘나라 망치는 포퓰리즘’ 같이 상대방의 정책을 비방하는 공격적 맥락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정의 방식에 따라 그 의미가 매우 다양합니다. 포퓰리즘은 인민, 대중, 민중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포퓰리즘을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즉, 그렇게 부정적인 뜻한 있는 것은 아니고 대중의 심리 , 기대감등에 영합하는 정책주의나 공공 주의의 의미도 있다는 것 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경주 첨성대는 언제 만들어졌으며, 역할과 용도는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에는 7세기 중엽 중엽 신라의 선덕여왕 시대에 백제인 아비지에 의해 건립했다고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아비지는 황룡사 9층 목탑을 만든 이로 선덕 여왕이 백제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하여 신라로 초빙된 인물입니다. 지금은 워낙 고층 건물이 많아서 9미터 높이의 건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지만 당시7세기에는 고층 건물이 많이 않았기에 첨성대 정도의 높이에서도 매연이나 공기 오염이 없기에 충분히 별과 달을 관찰 할 수 있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단군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느 국가 더ㄴ지 건국 신화는 다 존재 합니다. 일본도 중국도 사실 관계를 따지면 믿기 어려울 수 있는 말 그대로 신화적인 요소가 존재 합니다. 우리 민족의 <단군 신화>는 우리 민족의 개국 신화인 동시에 국조신앙(國祖信仰)을 곁들이고 있어서 민족사의 시발로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 왔습니다. 이 신화는 우리 민족의 긍지로서 천제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라는 성소(聖所)에 강림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바탕으로 개국의 터전을 닦고, 그의 아들 단군 왕검이 조선을 세웠다는 웅장한 규모의 건국신화 입니다. 천신(天神)께서 택하신 땅에서 천신의 후예를 모시고 세운 나라라는 강한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느낄 수 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 승려 일연(一然:1206-1289)에 의해서 기록 되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극한속에서도 얼어 죽지않고 살수있는 동물들의 생존 원리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극은 일년 내내 영하의 온도이고 또 6개월 이상은 -40도 이하로 정말 얼어 죽을 수 있는 날씨이지요. 하지만 남극 펭귄들은 그 환경에 적응하도록 시체가 진화해 왔습니다. 우선 펭권의 몸의 구조를 살펴 보면 표피털은 방수 두꺼운 SKIN 입니다. 그 아래에 바로 단열층의 지방층이 있습니다. 지방층의 역할은 단열의 가능이 있어서 열을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 열을 몸안에 가두고 있는 역할을 합니다. 즉, 외부가 아무리 추워도 펭귄은 몸은 뜨거워서 오히려 쪄 죽을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바로 맨발을 통해서 땅으로 몸에서 가두고 있던 열을 방출해 내는 것 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펭귄은 그렇게 혹독한 남극의 날씨에도 절대 얼어 죽지 않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좋은 논문을 찾아서 읽을 수 있는 선택기준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좋은 논문을 쉽게 찾고자 할 때 내가 찾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두번 째 주제와 관련된 핵심 키워드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논문의 질이 좋은 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착조자 하는 주제를 정했다면 그에 관한 리뷰 논문( review paper)을 찾아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 <임진 왜란이 조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적절한 키워드를 사용해 연구논문(research paper) 혹은 리뷰 논문( review paper)을 찾아 봅니다. 단순히 네이버나 google 검색엔진만을 이용해줘도 관련된 많은 review paper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문을 찾았다면 그에 대한 평가를 한번 봐야 합니다. 이 부분은 사실 좀 조심 해야 합니다. 왜냐면 남들이 피땀 흘려 작성한 논문을 평가 한다는게 사실 좀 어렵습니다. 암튼 논문이 출판된 출판사의 impact factor(IF)입니다. Impact factor는 한국어로는 피인용지수로 인데 특정 학술 잡지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지를 말해주는 척도입니다. 과학 분야를 예로 들었을 때, 대략, 10-20 정도의 IF에 출간된 논문은 꽤나 좋은 논문으로 생각할 수 있고 30 이상의 IF에 출간된 논문은 그 분야에서 꽤나 많은 인정을 받는 논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논문을 찾았으면 이것을 인용하는 것도 중요한데 영어던 한글이던 그 인용문구를 복사해서 구글이나 네이버 등에 그래도 붙여 넣고 인용 횟수등을 보는 것 입니다. 남들이 많이 인용했으면 오히려 더 안좋을 수도 있을 것이고.. 나머지는 본인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5.0 (1)
응원하기
우리나라 왕들 중 세종대왕과 견줄 만한 훌륭한 왕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종과 감히 비교 할 수 있는 왕들은 조선 저 역사를 통 털어 봐도 별로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그래도 한 분을 뽑자면 아마도 정조 일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이 중세 시대의 문화를 이끌었다면 정조는 조선의 문예 부흥기, 즉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군주 였습니다. 세종 대왕처럼 한글 창제같은 업적은 없었지만 탕평책을 펴서 당쟁을 멀리하고 세종 대욍처럼 과학 기술에도 관심이 많아서 수원성 건설시 기중기를 사용하게 되었고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통해 훈민 정음, 용비어천가 등등 각종 학문 발전에 이바지 했다면 정조는 규장각을 통한 문화사업, 일성록과 무예도보통지의 편찬등 각종 학문 발전에 이바지 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세종대왕과 정조를 비교해도 될 듯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현대시대를 신석기 철기 청동기 이런 개념으로 어떤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의 시대는 단지 하루 앞을 볼 수 없는 혼돈의 시대 혹은 아나키즘의 시대이지만 도구의 사용적인 측면을 중심으로만 본다면 현대의 시대는 각종 금속을 변형하고 합성해서 만들 수 있는 특수 합금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