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을 가리지않는다 라는 말은 언제 생겨난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어식 표현으로는 go through fire and water는 "물불을 가리지 않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다"는 뜻입니다. 마녀 사냥이 극성을 부리던 중세 유럽에서 마녀 식별법이 주로 사람을 불 속이나 물속에 던져 놓고 사는지 죽는지를 보는 '불과 물의 시험'에 의존했던 데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약간 와전되어서 위험이나 곤란을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 하다는 의미로 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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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어떻게 오랫동안 재임할 수 있었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았으며, 유신 정권과 임기 연장을 골자로 하는 3선 개헌으로 5대부터 9대까지 거의 16년을 대통령으로 장기 집권이 가능 했던 것 입니다. 1987년 헌법 개정으로 1988년 이후부터 임기가 5년 단임으로 고정되어 재직 일수는 1826일 또는 1827일(5년)이 되었고 그해 노태우 대통령이 처음으로 단임재 대통령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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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버킷챌린지의 유래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루게릭병으로 일컬어지는 ALS의 치료법 개발을 위해 미국 ALS협회가 진행 중인 모금 운동에서 시작된 것으로, 참여자는 얼음물 샤워를 하고 이를 인증한 뒤 3명을 지목해 다음 참여를 요청한다고 합니다. 애초에 이 캠페인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기부에 좀 더 의식과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이 캠페인이 시작한 당시에는 ALS(루게릭병)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프로 운동선수들 간에 유행하던 일종의 게임이었는데, 그 때에는 얼음물을 뒤집어 쓰지 못하면 ALS 단체에 국한 되는것이 아닌 가장 선호하거나 좋아하는 기부 단체에 기부를 하는 식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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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 중에 최초로 일기를 쓴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1752년부터 1910년까지 국왕의 동정을 기록한 일기 ‘일성록(日省錄)입니다. 정조는 국정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반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1752년 일성록을 처음 만들었고, 이후 왕들도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까지 158년에 걸쳐 꾸준히 기록됐다고 합니다. 정조의 기록은 일성록 전체 분량의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이 기록에 따르면, 1800년 8월 중순부터 정조는 며칠째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종기를 심하게 앓았는데 서거 하루 전인 1800년 8월 17일 정조는 “도목정사(都目政事,`정기 인사)가 임박했는데 정관의 일이 딱하게 되었다”며 “민사(民事)에 관련된 일이 있으면 비록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도 낱낱이 내게 물어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은 평범한 범인이던 왕이던 다 자기를 돌아 보는 중요한 습관 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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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학문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기전 7세기경 소아시아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에 살았던 최초의 철학자들은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고 만물의 원인과 원리를 추구함으로써 철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철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그리스어로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뜻합니다. . 필로소피아는 필로스(philos, 사랑함)와 소피아(sophia, 지혜)라는 두 말을 합성한 것인것이지요. 필로소피아라는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지혜에 대한 사랑’ 또는 ‘애지(愛智)’를 뜻합니다. 그러나 이오니아주의 자연철학자들이 활동하던 당시는 아직 철학이라는 말과 개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철학자라기 보다는 현자(현명한자)로 불렸고, 자신들의 활동을 철학이 아니라 역사(historie)로 규정하였습니다. 후대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을 철학자(philosophus)라고 소개한 사람은 피타고라스로 전해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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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이름이 경성, 서울로 바뀌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도 명칭인 서울은 원래 한 나라의 수도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의 일반명사 였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도 모두 서울이라고 불렀지요.조선의 수도였던 한양 역시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처럼 서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이자 지명을 겸하는 공식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1년 후인 1946년 서울시헌장을 발표하면서부터 였다고 합니다. 백제 시대에는 위례성 혹은 한산으로, 고구려시대에는 남평양(南平壤),북한산군 통일신라시대에는 한산주(漢山州), 한주(漢州), 한양군(漢陽郡) 고려시대에는 양주(楊州), 남경(南京), 한양주(漢陽州) 조선시대에는 한양(漢陽) 혹은 한성부(漢城府)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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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 나온 고전 애니메이션은 모두 수작업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8,90년대 애니메이션은 거의 다 만화가가 수작업으로 직접 그림을 그렸습니다. 당시에는 전부 다 종이로 된 만화책 이였기에 일일이 만화가가 그림을 그려서 원고 형태로 출판사에 보내고 그것을 출판해서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전 애니메이션 작가들은 전부 다 화가 이상의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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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 일기는 왜 쓰여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승정원에서 왕명의 출납·제반 행정사무·의례적 사항 등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입니다. 왕조 실록이 왕에 관한 기록이라면 승정원 일기는 는 국정 일반에 관해 광범한 기록을 했다는 점과 또 매일의 기록으로서 일차적 사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더욱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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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서 구입한 작품~ 반품 가능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만일 화랑에서 작품을 구매 했다면 구매가의 90% 를 환불 받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매를통해서 작품을 구입 했다면 일반적으로 거의 힘들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경매라는 것 자체가 그 작품을 구매 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인 후 구매한 것이고 그래서 그 작품을 사고자 했던 사람은 결국 포기를 해야 했던 포기 비용 까지도 생각 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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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두리는 우리나라의 장신구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겉을 검은 비단으로 싼 여섯 모가 난 모자로 위가 넓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게 만듭니다. 속에는 솜이 들어 있고 그 가운데를 비게 하여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고 하지요. 족두리라는 말은 고려 때 원나라에서 왕비에게 준 고고리(古古里)가 와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므로 족두리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원나라와의 혼인이 많았던 고려시대 후기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의 족두리는 조선시대의 것보다 모양이 크고 높이도 높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양식이 점차 작아지고 위와 아래가 거의 밋밋하게 비슷하여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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