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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에 상표가 등록된 음료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상표 등록 음료수 및 인기가 많고 현재까지도 잘 팔리고 있는 음료수는 바로 6.25전쟁에도 살아남은 1950년에 등장한 칠성 사이다 입니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70세가 넘는 할아버지 나이지만 70여년 동안 판매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음료수계의 최강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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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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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최초에 대량으로 발간된 책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복 이후 최초로 1954년 발간된 정비석의 < 자유부인> 은 14만부가 팔려 최초로 대량으로 판매된 책이 되었으며 그 후에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즉, 처음으로 100만권 이상 팔린 책인 ‘인간시장’은 주간한국에 연재되다 단행본으로 출간됐다고 합니다. 20권에 달하는 장편으로 1984년 밀리언셀러로 이름을 올렸고 누적 판매량은 560만부라고 합니다. 1970~1980년대 민주주의 갈망하던 시대의 암울함에 갇힌 대중들에게 통쾌한 대리 만족을 선사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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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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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는 언제부터 시행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3년 12월, 한국은 최초의 건강 보험법인 의료 보험법을 시행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회사는 직원에게 자발적인 건강 보험을 제공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77년에 건강 보험을 의무화하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에는 500 명 이상의 기업에 직원 의료 보험을 의무화했고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이후 1979년 공무원에게 보험이 제공되고 1981년에 자영업자에게 보험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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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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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는 누구인가요? 어떻게 배웠고, 실제 비행기를 몰았는지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첫 번쨰 조종사는 바로 안창남 입니다. 1920년 8월 일본의 비행학교에 입학한 안창남은 입학 두 달 만인 10월 15일 오쿠리 교장이 '아사히버선' 광고지 20만매를 도쿄 시내에 뿌릴때 일본인 연구생을 제치고 그의 조수로 비행기에 동승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남들은 1~2년이 걸리는 졸업과정을 불과 3개월 만에 마친 그는 학교측의 간곡한 권유로 비행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교수가 된 지 한달만인 1921년 5월 일본최초로 치뤄진 비행사 자격시험에 참가하여 17명의 응시자 중 유일한 우리나라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 하에 태극기를 사용할 수 없던 안창남은 1922년 12월 10일 한국지도를 그려 넣은 쌍엽기 금강호를 요꼬하마 항으로 부터 인천항으로 수송하여 조립하여 방문 비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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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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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이 보장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식민통치하에 신음하던 우리에게는 한줄기 빛과도 같았을 이 사건을 가능케 한 3명의 인물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이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핍박받던 시절, 우리 임시정부에 수시로 지원금을 보내고 임시정부 요인들과 밀접한 관계였던 장제스는 카이로 회담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한국 독립의 뜻을 이끌어 내는 가장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중국 국민당의 장제스는 나중에 중국 공산당에 패배해 대만으로 쫒겨나지만 우리에게는 은인 이였고 대만 또한 우리에게는 은인의 나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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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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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중에서 딸이 가장 많았던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의 아들 4대왕 세종이 아들 18명을 두었고 딸은 성종이 총 12명의 딸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 딸 구별 없이 가장 많은 자식을 둔 왕은 태종인데 총 29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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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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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들상에 절을 해야한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교가 있다면 당연히 안하겠지만 무교나 손아래 사람이라면 분향, 애도만 하고 절은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그냥 묵념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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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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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효과는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음악은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며, 우리의 기분을 고조시켜 우울증이나 불안을 극복하게 한다고 합니다. 음악은 통증과 고통을 완화시켜 주며 치유를 빠르게합니다. 음악은 기독교에도 영향을 주어 영적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데 . 음악을 통해 영적인 인식이 열리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가들 중에는 찬송가 형식의 곡들도 많이 있습니다. 헨델의 작품은 찬송가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 특히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자주 인용됩니다. 찬송가 170장 <내 주님은 살아계셔>는 <메시아> 제3부 첫 곡으로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 <나는 구주가 살아계심을 아노라>를 편곡한 것이며, 크리스마스의 대표곡인 115장 <기쁘다 구주 오셨네> 역시 로웰 메디슨이라는 작곡가가 <메시아>의 부분 부분을 편집해서 만든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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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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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고기잡는 전통방식인 원담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담이란 제주 해안의 자연 지형과 조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돌을 쌓아 만든 담이다. 밀물 때 원담 안에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해 남겨지면 잡는 방식입니다.아주 원시적이고 단순한 것 같아 보이지만 담을 쌓을 때에는 바깥쪽은 비스듬하게 돌을 쌓아 고기가 쉽게 넘어 들어오도록 하고 안쪽에는 직선으로 돌을 쌓아 들어온 고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역별 환경조건에 따라서 그 축조법이 각기 달라서 때로는 바다를 이기고, 때로는 바다와 벗하며 살아가야 했던 제주인에게 ‘원담’은 생업문화유산으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하지요. 요즘은 원담에서의 고기잡이는 거의 볼 수 없고, 그나마 남아있던 원담마저 파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원형이 제대로 보존된 것은 구좌읍 하도의 ‘원’과 제주시 연대마을의 ‘원’ 등 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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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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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지명을 보면 '왜관'이라는 잘못된 지명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맞습니다. 일본인 들에게 조선 정부에서 교역을 허가 해 준 장소 입니다. 왜관이란 지명은 조선 태종때 왜구의 노략질이 하도 심해져서 왜구와 교류를 목적으로 일본 교역자들과 관리들을 숙박 하게 하면서 공식적으로 교역을 허가 하게 해준 장소 입니다. 지금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위치해 있고 그 이후에도 계속 적으로 왜관읍으로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기차역 이름이 왜관 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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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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