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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우리나라 최초로 수입자동차를 탔다는데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은 고심 끝에 이를 윤허 하게 되며 이용익은 미국 공사관의 호러스 뉴턴 앨런(Horace Newton Allen)에게자동차 구입을 부탁하였습니다. 얼마 후 미국을 출발해 인천항에 도착하게 된 자동차는 기차에 실려서울에 도착한 다음 미국인 운전수에 의해 궁궐 안까지 배달되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 조선의 첫 자동차에 대하여 미국의 '포드' 나 '캐딜락'이라고주장하고 있지만 이 차종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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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달에 몇번 다녀왔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류의 달 탐사 역사, 시작은 옛 소련입니다. 1959년 '루나 2'라는 작은 비행선을 달에 충돌시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15번이나 달에 가 달 뒷면 사진도 찍고, 최초로 달에 착륙도 했습니다.하지만 사람을 달에 보낸 건 미국이 유일합니다.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간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최초로 달에 내렸습니다. 아직도 인간을 달에 보낸 기록은 미국이 유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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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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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영화 한편 출연료는 얼마 정도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화 제작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출연진의 개런티 입니다. 남자 한류스타의 경우 15억원 안팎을, 여자 한류 스타의 경우 10억원 내외의 영화 출연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송혜교 10억원이 넘는 출연료를 받고 중국 영화에 출연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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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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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수도 개경은 서울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경은 현재 남한이 아닌 북한 입니다. 개경은 500여년간 번성한 고려의 수도이며 오늘날의 북한 개성시 입니다. . 태봉, 고려, 조선 세 왕조가 도읍하였지요. 송도(松都), 송악(松岳), 송경(松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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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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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을 걷는다"라고 말할 때 "오솔"은 무슨 뜻이고, 어떤 단어에서 파생된 말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솔길'은 '*외솔길'에서 온 것으로 보고, '*외솔길'은 '솔길'에 '외'가 덧붙은 구조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솔길'은 형용사 어간 '솔-[狹]'과 '길'이 결합된 어형으로 '좁은 길'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았으며, '외'는 '외따로 있는'이라는 의미의 관형사로 판단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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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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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는 어떠한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관포지교 뜻은 형편이나 이해 관계에 상관없이 친구를 무조건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뜻하는 한자 고사성어 입니다. 관포지교 유래는 춘추시대 제나라에 관중과 포숙아라는 사람에게서 유래 되었습니다. 그들은 동업을 하며 서로 뜻이 맞고 상대방에게 너그러운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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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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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왜 역사상 가장 인기많았다고 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이애나 비가 아직 까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중요한 이유는 그녀의 파격 행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에이즈 환자, 나병 환자 등 질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다이애나 비는 희귀병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앞장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인지뢰 금지 운동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위해 앞장서는 그녀의 노력에 영국인들은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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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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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에 놀이공원은 어디에 있고 이름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 최초 놀이공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1583년 문을 연 덴마크의 뒤어하우스바켄을 최초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문을 열 당시에는 놀이 기구가 설치되어 있지는 않았고, 주로 광대들의 공연과 노점상 위주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리 나라 조선 시대에 놀이 공원 이라니 대단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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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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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일기토가 빈번히 이루어질 수 있어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기토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삼국시대만 해도 이 100여년간의 시간대에서도 무려 일곱번의 일기토가 있었고 그 중에서 4번이 1:1 일기토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역사 전체의 레벨로 가면 정말로 장수끼리 1:1로 맞대결을 하는 경우를 좀 볼 수 있습니다. 당장 관장 지용 문서에서도 일기토를 뜨는 무장 가지고 관우, 장비에 비하는 문구를 꽤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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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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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제 문화를 서양에 개방하였습니다. 자의던 타의던 먼저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예전 부터 일본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우리나라가 더 선진국이고 이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촌뜨기로 여기게 됐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 특히 힘의 중심에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고 싶어하게 됐다고 합니다. 한국인과의 오랜 경쟁 관계도 이야깃거리가 되고는 했지요. .항상 중국의 중심과 조금 더 가까웠던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일본보다 문명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스스로 주변적이라고 느끼게 하기 위해 일본에 사절단을 보낼 때면 일본 왕실에 전하는 편지를 난해한 중국 문장으로 써서 이를 해독하는 데 어려움을 겪도록 했다고 합니다.그러나 그 힘은 이제 서양으로 옮겨갔습니다. 유행과 지식의 근원은 창안과 베이징에서 파리, 런던, 뉴욕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시각과 경향에 열렬한 호기심을 품는 주변부적 사고는 그대로 남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기꺼이 배우려는 자세, 뒤쳐지지 않으려는 열망은 일본이 3백여 년동안 가장 유복하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아시아 국가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를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17-19세기에 쇄국 정책을 쓰던 기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절대 폐쇄적인 국가가 아닙니다. 그 어느 아시아 국가보다 더 서양 문화를 배우고 더 신경 쓰는 그런 민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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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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