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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은 언제부터 장례에 등장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에서 최초 영정사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영정사진이 유명하지요. 주한미국공보원의 한국인 직원이 1945년 7월 5일 촬영한 장례식 영상 속에서 백범의 영정 사진은 운구행렬과 효창공원 까지 함께했다고 합니다.국내에서 영정 사진이 대중화된 것을 장례업계에선 1980년대라고 추측한다고 합니다. 1982년 부산의 한 상조 회사가 일본식 장례상품을 판매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정 사진이 유입됐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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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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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왜 청도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9년 8월 초순, 故 박정희대통령이 경상남도의 유례없이 참혹했던 수해현장을 시찰하고자 전용열차를 이용하여 경부선 청도지역을 통과하던 중, 신도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수해를 복구하는 광경을 보고 대통령 전용열차를 잠시 멈추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마을 안길 및 하천, 산림 등 마을 전체가 잘 정비된 모습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어 “모든 농촌을 이 마을처럼 가꾸었으면 좋겠다.” 고 착안한 것이 새마을 운동이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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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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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도 르네상스 같은시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르네상스는 바로 바로 정조의 시대 입니다. ‘붕당(朋黨) 정치’를 무너뜨리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정사를 돌보게 하는 탕평(蕩平)의 시대였으며, 문화사적으로는 조선 고유색을 발현해 이른바 ‘진경 시대’를 무르익게 한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의 절정으로 평가되고 있지요. 정조 시대는 사회사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시대였는데요. 신분제 사회의 굴레였던 서얼 차별, 노비제 폐단이 적극 시정 되던 때가 바로 이 때이며, 조선이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조선 중화(中華)’를 외치며 민족 자부심을 과시했던 것도 바로 이 때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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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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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혼과 육체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옷이라고 까지는 말 할 수 없지만 정신과 영혼을 중요시 여기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좀더 확대 해석 하면 데카르트의 이분법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는데요. 데카르트에게서 정신은 육체와 분리되고 구분되며, 육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데카르트에게서는 정신과 육체는 본질적으로 다른 두 실체이지요. 정신은 연장(延長)되지 않은 사고하는 실체이고, 육체는 사고(思考)하지 않는 연장된 실체이며, 각각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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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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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은 실제로 존재했던 풍습이었는지 설화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장이란 말은 우리 나라 어떤 역사책에도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도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조선 시대의 사람들이 생활상을 비하하면서 만들어낸 조작된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더 합리적인 추측 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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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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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록은 누가보려고만든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세운 나라에요. 유교는 기본적으로 옛 것을 숭상해 모범적인 통치나 태평성대의 기준을 모두 고대의 모범적인 사례에 두었어요. 정책을 논의하다가 의견이 엇갈리면 옛날에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아보고 참고하였지요.그러다 보니 성현들의 언행이 기록된 경전과 역사 기록이 중시되었고, 자신들의 일도 후세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모두 기록해서 남기고자 했던 거예요. 유교를 중시하는 조선에서 실록 편찬은 후손에게 역사를 전해 주는 아주 중요한 일이지요. 후대 왕이 선대왕의 기록을 아주 못 보는 것은 아니 에여. 다만 그 기록을 수정 할 수 없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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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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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음서 제도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음서제도가 최초로 시행된 사례는 5품 이상의 관원에게 지급한 997년(목종 즉위년)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원칙적으로 18세 이상이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 훨씬 이른 나이부터 음서를 받았으며 15세 무렵 실제 관직에 임용되기도 하였다고 하지요. 또한 이미 관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품계를 올려 주는 방식도 있었다고 합니다.음서를 지급하는 기준 관품이나 지급 대상은 시기에 따라 변동이 있었다고 하구요. 음서를 지급하는 대상은 친 아들이 가장 우선권이 있었으며, 아들이 없을 경우 조카, 사위, 친 손자와 외 손자, 양자 등의 순으로 지급 받을 수 있었다고 하지요.조선 시기에도 음서 제도는 계승되었으나 그 범위가 제한되어, 음서를 통한 관직 진출이 크게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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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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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 서경 천도 이유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경출신의 승려 묘청은 풍수지리설에 의거, 고려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개경(開京)의 지덕(地德)이 쇠약한 때문이라고 역설하였다고 하지요. 따라서, 나라를 중흥하고 국운을 융성하게 하려면 지덕이 왕성한 서경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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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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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원칙 탄생배경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란다의 원칙은 1963년 미국 에리조나에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미란다의 재판 결과 판결로 확립되었다고 하지요. 1966년 연방 대법원은 그가 진술 거부권, 변호인 선임권 등의 권리를 고지(告知)받지 못하여 5대 4의 표결로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범인 체포 시 항상 범인의 권리를 고지 하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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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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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야통(통행금지령)은 왜 시행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야간 통쟁 금지라 함은 일정 시간에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하는 제도를 이르는 말로, 주로 야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칙적으로 분쟁이나 재난이 있을 때에 치안 유지를 위해 오직 제한적으로만 시행된다고 하지요. 어린이나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시행되기도 하지요. 우리나라는 1982년 1월 5일 자정을 기해 폐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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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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