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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학도병들은 자진해서 참점한것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방부는 국가의 장래를 짊어질 학도들의 참전을 만류하면서 정훈국의 지도에 따를 것을 종용하였지만 7월 1일 대전에 내려온 피난 학도들과 현지의 학도들은 다시 ‘대한학도의용대’를 자발적우로 조직하였다고 합니다.어린 중학생 소년에서 장성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학도의용군의 이름으로 실전에 참여한 학도들은 그로부터 6·25전쟁의 전 기간을 통하여 모두 2만7700여 명에 이르렀고, 후방지역 또는 수복지역에서 선무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무려 2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하네여.
학문 /
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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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머리를 무엇으로 감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 머리는 그리 자주 감는 것이 아니었다. 세정제의 도움이 없어도 깨끗한 물에 마리를 골고루 적셔 감고 빗질을 촘촘하게 해서 틀어 올린 모양이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일반적이었으므로 쉽게 더러워질 일도 없었고 생각만큼 냄새가 지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샴푸 등의 세정제 없이 물만으로 머리를 감아서 빛나는 머릿결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성공담을 인터넷상에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염색도, 파마도, 열기구를 사용한 모발 손상도 없던 조선시대에 지금처럼 미세먼지와 화학적 헤어제품들로 범벅이 되지 않은 머리라면 물로 정성 들여 감고 말리고 빗는 과정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생관리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단오날에 창포물에 멱감을 감는다는 말처럼 굳이 그냥물이 아니라 청포꽃잎를 띄운 물에 머리를 감으면 벌레가 안 물린다는 것 때문에 종종 창포물을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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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안했다면 어떻게 됬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안했어도 결국 다른 시점에 고려를 뒤엎을 혁명은 일어났을 것이고 정도전 등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또 했을 것입니다. 당시 고려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너무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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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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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나보다 아주 많이 큽니다 만약 우주가 반대로 나보다 작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재미있기고 하고 약간은 황당한 질문이네여. 물리적으로는 우주를 나보다 작게 만들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내가 우주 보다 클 수 있을 까요? 우주를 세상이라고 가정 하면 과연 어떻게 하면 내가 세상 보다 클 수 있을 까를 생각해 봤어요. 내가 내 하는 일에 자신감이 없고 세상을 대하는게 두려우면 세상(우주)는 한없이 커 보 일거에여. 하지만 내가 스스로 자신감이 있고 떳떳하고 올바르면 세상(우주) 는 결코 나보다 크지 않을 거에여. 즉, 세상을 대할때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이 대하면 우주는 나보다 작게 느껴 질 거에여.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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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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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와 한지는 어떻게 다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지의 다른 이름으로 창호지가 쓰일 만큼 널리 오래 많이 사용된 종이였습니다. 창호지는 종이 가운데 따로 문이나 창에 바르는 종이를 일컫는데, 바람이나 열은 드나들지 못하지만 빛은 통과시키고자 하는 데에 그 쓰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창호지가 열과 바람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빛을 아주 잘 통과시키지도 않지요. 빛의 투과율은 대체로 40~50퍼센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지는 깨끗한 옻이나 금동을 얻기 위한 거르개로도 쓰이니 작은 구멍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점은 유리가 따를 수 없는 좋은 점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호(窓戶)는 창과 문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고 이러한 창호에 한지(韓紙)를 붙인 것을 창호에 쓰이는 한지란 뜻으로 창호지(窓戶紙)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한지의 이런 뛰어난 보온성과 통기성은 헌책이나 과거시험의 답안지를 찢어 겨울옷에 방한용 솜 대신 넣고 누벼 입거나, 아예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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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연암의 관계가 궁금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지원이 44세 때인 1780년 삼종형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북경에 가게 되자 심부름군에 불과한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따라가 청나라 여행 중 보고 듣고 배운 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우리가 잘아는 < 열하일기> 입니다. 박지원은 이 책을 통해 이용후생을 비롯한 북학파의 개혁 사상을 역설했는데요. 연암 박지원은 또 열하일기 내에 소설체로 호질과 허생전을 삽입하여 당시 사회 제도와 양반 사회의 모순을 신랄히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고 동시에 구태의연한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는 당시 조선 사대부들의 경색된 사고 방식을 풍자했다고 합니다. 일반 백성들에게는 재미있는 글이였지만 정치를 하는 대신들이나 왕에게는 그리 기분좋은 글은 아니였지요. 정조는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어 보고 나서 패관잡기나 명말청초(明末淸初) 중국 문인들의 문집에 영향을 받아 개성주의에 입각한 참신한 문체가 조선에서도 크게 유행한다고 판단 한 후 정조는 서양학, 패관잡기, 명말청초의 문집을 사(邪)로 규정하고, 1791년에 서학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서양학을 금하려면 먼저 패관잡기부터 금해야 하고, 패관잡기를 금하려면 먼저 명말청초 문집부터 금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문체반정의 시작인 것이지요. 계몽군주 정조답게 문체반정에 걸린 사람들에게 큰 벌은 주지 않았고 반성문 정도 쓰게 하는 것으로 대신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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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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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지요. 그것도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게 되는 큰 아픔을 겪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또한 정조는 왕세손 일때 화완옹주와 정순왕후를 비롯한 주위의 정적들의 갖은 모략과 술수 속에서도 살아 남아서 결국 왕이 됩니다. 이러한 그의 일생을 그린 드라마가 2007-2008년까지 mbc에서 했던 이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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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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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도 죽을때는 태여난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자성어로 수구초심(首丘初心) 이라고 하지요. 미물인 여우도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窟)이 있던 구릉(丘陵)을 향해 머리를 둔다’ 는 뜻으로, 자신의 근본을 잃지 않거나 죽어서라도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유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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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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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어느나라에게 멸망당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4세기 경에는 요령 지방을 중심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잇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던 고조선은 기원전 2세기에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고 약화되면서, 한때 왕위가 중국으로부터 망명한 고조선 사람 위만(衛滿)에게 넘어갔다가 끝내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 무제에게 멸망 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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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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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의 이름을 외자로 짓기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역사를 유심히 살피면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임금의 이름을 외자로 짓는다는 것입니다. 고려왕조의 경우 475년 동안 34대의 국왕이 거쳐갔는데, 그들의 이름은 모두 외자 였다고 합니다. 1대 태조(건·建), 2대 혜종(무·武), 3대 정종(요·堯), 4대 광종(소·昭)조선의 경우엔 3대 태종(방원)과 6대 단종(홍위·弘暐)를 뺀 나머지 25명의 국왕 이름이 외자 입니다.역대 국왕들이 외자를 택한 이유는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씨’ 였습니다.백성들의 입장에서 황제나 임금, 옛 성현의 이름을 피해야 했기에 이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도였지요. 그러니 임금으로서는 피해야 하는 글자인 자신의 이름을 한자라도 줄여 백성들의 편의를 돌봐야 했구요.역대 임금들은 일부러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희귀한 글자를 골라 썼고, 심지어는 사전에도 없는 한자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선조는 아예 역대 임금들의 이름을 대신하는 글자를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잘못하여 글로 쓰거나 하면 큰 벌을 받았는데요. 과거 시험에서 역대 왕들의 이름이 답안에 한글자 라도 들어가면 무조건 낙방이 됨은 말 할 것도 없고 곤장백대를 받게 규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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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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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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