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추척의 기원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음력8월15일을 중추절로 중국의 4대 명절 중의 하나로 지냅니다. 우리가 송편을 먹고 차례를 지내듯이 중국인들도 월병을 먹고 달에게 혹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다만 우리는 추석과 구정을 둘다 큰 명절로 생각하지만 중국인들은 구정만큼 추석을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물론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지도 않구요. 우리나라도 추석에는 여러가지 전통 놀이를 하듯이 중국도 불꽃놀이를 즐겨합니다. 우리나라 추석의 기원이 신라시대로 부터 전해져 내려왔다고 합니다만 중국의 중추절은 언제가 기원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중추절이 우리나라의 추석 명절을 따라간건지 아님 중국의 중추절이 우리의 추석명절의 유래가 된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추석 명절은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시작된것 임에는 틀림 없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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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보면 하나의 나라로 봐야 하나요 아니면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봐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만의 정식명칭인 중화민국(中華民國)은 신해혁명 직후인 1912년 중국 대륙본토에서 건국된 공화국으로, 현존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입니다.우리가 대한민국 정부를 1948년에 세웠으니 대만은 사실 우리보다도 36년이나 먼저 정부를 세운 셈이지요.남한과 북한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원래 우리나라도 하나의 국가에서 지유민주주의의 사상의 남한과 공산주의 사상의 북한이 나누어 졌듯이 원래 하나의 중국에서 국공 내전을 거치며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장개석(장체스)의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과의 국공 내전에서 패하며 1949년에 수도를 중국본토에서 대만 타이페이로 옮길수 밖에.없었지요. 다만 중국의 영향으로 현재 유엔에는 가입을 할수가 없어서 정식 영어국호인 Tauwan(타이완)이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고 Chinese Taipei 라는 이름으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공식명칭을 쓰고 있지요. 홍콩 과는 다르게 대만은 중국의 특별 자치구가 아니라 정식 국가이며 수도는 Taipei(타이페이) 입니다. 현재 대만과 외교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나라는 아프리카및 남미의 약 10여개 나라정도이며 우리나라도 90년대 초까지는 정식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중국과 외교관계를 위해 대만과는 단교를 했고 하지만 아직 서울 광화문에 주한대만 대사관에 해당하는 대만 대표부는 남아있습니다. 중국은 대만을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흡수 합병 혹은 자치구로 만들고자 하고있으나 현재 대만은 미국의 지지를 힘입어 지속적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와 정치체계를 유지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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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서"의 유의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덜어서 혹은 덜어내서 라는 말과 유사한 말로는 제(除)하다 혹은 감경(減輕)하다등의 한자(汉字)로된 유의어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덜어내는 지는 모르겠지만 먹을것을 언급할 때는 오히려 원래 시용하셨던 순수 우리말인 "덜어서" 혹은 "덜어내서" 라는 표현이 더 좋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한자로 되어있다고 해서 더 격식있는 표현은 아니니까요. 제 생각에는 이경우에는 굳이 더좋은 표현을 찾으실 필요는 없으실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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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언어는 지금이랑 많이 달랏다고 하던데 현재의 사람이 조선시대로 간다면 전혀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재미있고 흥미로운 질문 이네여.언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태하고 사라지죠. 아마 누구나 한번 쯤 이런 생각을 해 봤을 겁니다. 타임 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나 삼국시대로 가서 그 조상분들과 대화도 하고 새로운 신문물을 소개도 하구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조선시대로 돌아간다면 대화는 아마 가능할 것 입니다. 지금쓰는 표현이나 어휘 등은 많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말의어순이나 문법체계는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정확한 예라고는 볼수 없지만 북한을 비근한 예로 들어보지요. 북한은 언어적인 측면으로 볼때 외래어 단어를 많이 쓰지않고 우리나라보다는 예전말을 많이 쓰는 편인데 그렇다고 대화가 불가능하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고대 시대, 예를 들어 한글 창제이전인 삼국시대로 간다면 예기가 틀려 집니다. 왜냐면 그때는 아무래도 중국어의 어법에 의한 단어나 문법적인 체계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테니까요.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17,18세기 영어는 지금 현대 영어와 그 의미와 형태가 많이 달라도 이해하는데 그당시의 책을 읽거나 하는데 아주 큰 문제는 없지만 중세시대인 12세기 정도의 영어는 지금 영어와 너무나 다르기에 알반인들이 당시의 자료들을 보는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여.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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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는 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사건에는 여러가지 루머가 존재하고 정확한 이유는 본인만이 알겠지만 우리는 그의 1차 재판에서의 최후 변론를 통해 그 이유를 가늠해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김재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나다. "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상에서 유추해 볼때,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독재자를 죽인 반란이 아니라 18년간의 군사 독재를 종식시키고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구한 혁명이라고 자신을 애국자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단순히 박정희 대통령만 살해하고자 하는 이유가 아니라 자기가 독재자를 처단하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겠다는 야망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인이 생각할때 그 떳떳한 그 행동을 굳이 차지절 경호실장에게 떠 넘길 이유가 없지요. 그 근거는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 중 대통령만을 제거하고 현장에서 자살하거나 외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재규는 "본인이 살아남아야만 대통령 제거 이후의 혼란된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 뒷설거지를 하고 본인의 구상대로 통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부분에서 명확히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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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다처제는 언제까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부다처제를 논의 하려면 일부일처제를 먼저 생각해봐야 겠지요. 그러기위해서는 일부일처제의 정의와 우리나라 가족법의 유래도 생각해 봐야 할것 입니다. 일부 일처제란 남편이 복수의 아내를 가지지 않고 아내도 복수의 남편을 가지지 않는 제도입니다.일제 시대인 1920년대에 우리나라에 근대적 법률이 도입되면서, 일부일처제 가족을 구성하고 첩을 두는 것과 이혼에 대한 이슈가 사회적으로 부각이 되기 시작했고 1921년 일본 가족법이 조선에 적용되게 됩니다. 1920대를 거치면서 근대적 민법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부일처제’가 법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합니다. 또한 혼인신고를 통해 부부의 법률적 효력을 인정하는 법률혼주의는 1923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했구요.1930년 이후에는 첩을 두는것을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일부일처제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민법의 체계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 일부다처제가 끝난 시점은 1930년대로 봐야 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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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와 Hello의 차이점이 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많은 한국분들이 Hello 는 '안녕하세여' 처럼 존대말로 알고계시고 Hi는 '안녕'이라고 반말로 알고 계시는데 아닙니다. 둘다 상호 교환 가능하며 우리말에 ' 안녕하세여' 라고 하는 평번한 말입니다. 그러니 공식석상이던 비공식 석상이던 둘다 써도 됩니다. 절대 외국인이 기분 나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의 하셔야 할 표현은 Hey 입니다. 이건 친구나 지인, 연인 친한 사람에게만 쓸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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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먼저 우리나라는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 8개의 도, 그리고 1개의 특별 자치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그 중에서 가장 큰 도는 우리나라 면적의 약 19%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경상 북도이구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도는 바로 특별자치도인 제주도인데 경상북도의 1/10크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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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나 전설?을 보면 12지신이나 12제자등 12라는 숫자가 많은데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서양을 막론하고 12라는 숫자는 정말 많이 쓰입니다. 우선 서양에서의 숫자12에 대해서 살펴보면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책인, 성경에는 187번에 걸쳐서 12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요한 계시록만 봐도 22번이나 나오지요. 구체적인 예시는 너무 많아서 별도로 예를 들지 않겠습니다. 이렇듯 12라는 숫자의 의미는 완벽함을 나타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를 나타내는 숫자이지요. 동양에서 예기하는 12지라 함은 12간지와 10간을 조합해 60가지의 간지가 나오는데 한 사람의 인생 사이클을 의미하는 ‘환갑’의 나이 60세가 바로 여기서 나오지요. 즉 동양에서의 12라는 숫자는 인생숫자입니다.우리의 실생활에서도 12라는 숫자는 굉장히 많이 보여집니다. 1년은 12달이고 하루는 24시간이며 오전 오후 각각 12시간으로 나누어 지지요. 또한, 피아노 건반은 한 옥타브가 12개의 반음으로 이루어지구요. 이렇 듯 숫자 12가 상징하는 바는 동서양을 막론 하고 아주 크다고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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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의 가장 큰 없적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순신 장군의 대표적인 업적은 정유재란때인 1597년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진도 울돌목에서 13척의 배로 133여 척의 왜군에 압승을 거둔 명량해전이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 전투로 인해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습니다.이 전투가 대단한건 당시 임금인 선조는 수군의상황이 어렵다는 걸 알고 수군을 육군으로 편입해 육상전을 펼치도록 명령을 내렸으나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으므로 승전할수 있다라고 확신하며 끝까지 해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의 발생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전까지 기록이 남긴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2014년 한국 갤럽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또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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