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광장을 계획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베드로 광장의 다른 명칭은 바티칸 광장이라고도 하며, 베드로가 순교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입니다. 주일 정오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교황의 축복을 받기 위해 이곳에 모인다고 합니다. 광장은 폭 240m, 길이 300m의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타원형 광장으로 1656~1667년 교황 알렉산드로 7세의 명으로 베르니니 (Giovanni Lorenzo Bernini)가 완성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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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유소년 축구와 관련된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소년 축구도 2002년 월드컵 게임을 이후로 많은 발전을 가져 옵니다. AFC는 회원국의 프로팀 유스 보유를 의무화했고 한국 역시 08년에 전 구단 프로 유스 의무 보유와 함께 K리그 주니어라는 리그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02월드컵 이전 한국 학원 축구의 가장 큰 폐해는 리그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 모든 대회가 토너먼트 대회였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건 한참 성장하는 선수들의 팀이 몇 경기만에 탈락하게 되면 더 이상의 실전 경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이를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이 초중고 주말 축구 리그이고 08년 시범 운영되었다가 09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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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국주의의 끝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의 대 미국진주만 공습은 역사상 최장거리의 기습작전이었으며, 또 전술적으로 완벽한 일본 제국의 승리였으나, 전략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을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만듦으로써 일본 제국주의 더 나아가 동맹국 나치 독일 등 추축국 전체를 패망으로 이끈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사건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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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와 나전칠기의 인기는 어느정도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청자는 색깔만큼이나 그 모양도 다양 합니다. 아까 우리가 살펴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은 입구가 매우 좁고 윗부분은 둥글고 넓으며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런 청자를 매병이라고 불는 다고 합니다. 매병은 흔히 매화 같은 것을 꽂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고려 시대에는 달랐는데 술이나 차를 끓일 때 쓸 물을 담기도 했고 또 꿀과 참기름을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했습니다. 매병 이외에 눈길을 끄는 것은 주전자인데 주전자는 표주박 모양, 사람 모양 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고려 시대 사람들은 이런 주전자에 술이나 물을 담아서 사용했습니다. 이외에도 참외나 대나무 모양의 그릇과 사자와 기린, 연꽃 모습의 향로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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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이 어째서 도쿄가 아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터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원자 폭탄의 투여 장소에 대해서 많은 토론이 있었는데 히로시마는 주요 육군보급창이자 군항 (army depot and naval port)인 데다 산과 구릉으로 둘러싸여 원폭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었고 나가사키는 언덕이 많아 (be hilly) 적합한 곳은 아니었지만 대형 전함을 건조하는 미쓰비시조선소가 있어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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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세기 말에서 시작된 유럽의 낭만주의는 어떤 특징을 지녔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의 낭만주의는 개성을 구가하고 자아의 해방을 주장하며 상상과 무한적인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 감정적인 태도가 두드러진 것이 특색 입니다. 낭만주의하면 가장 먼저 소개되는 작품,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다. 외젠 들라크루아 < 키오스섬의 학살> 그리고 윌리엄 터너의 <비, 증기 그리고 속도감>이라는 작품도 유명한 작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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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었다 폈다 하게 된 부채인 접부채는 어디서 발명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접부채의 역사는 헌종 시기 쓰여진 재물보에 따르면 접부채는 고려 시기 발명됐다고 적혀있고,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 (徐兢)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고려인들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니는데 접었다 폈다 하는 신기한 것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렇게 추정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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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가서 보면 꿀빵이 유명하던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꿀빵은 1963년 통영 항남동에 있는 세탁소에서 정원석이 직접 만들어 판매한 빵이라고 합니다. 6.25 전쟁 이후 1960년대초 통영의 따뜻한 기후에도 상하지 않고 오래두고 먹을 수 있게 만든 뱃사람들의 간식로 개발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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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어째서 9명이나 후궁을 들였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종 이방원의 후궁 수는 19명입니다. 조선 국왕 전체에서 가장 후궁을 많이 둔 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편, 그 뒤에는 광해군 14명, 성종 13명, 고종 12명, 연산군 11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태종이 후궁 간택제를 하면서 원경왕후 민씨와 엄청난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왕권강화의 집착이 원인이기도 했기에 이렇게 많은 빈을 두는데 각각 명빈 김씨, 영월 신씨, 의빈 권씨, 효빈 김씨, 신빈 신씨, 선빈 안씨, 소빈 노씨, 정빈 고씨까지가 "빈"이고, 숙의 최씨, 숙공궁주 김씨, 의정궁주 조씨, 혜순궁주 이씨, 신순궁주 이씨, 덕숙옹주 이씨, 혜선옹주 홍씨, 순혜옹주 장씨, 서경옹주 등이 있었습니다.그외에 일반 궁인인 후궁 김씨, 이씨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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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산송문제는 왜 일어났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산송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한 이유는 유교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부모님께 마지막 효도를 하기 위해 묏자리를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음택 풍수가 유교 사상과 결합하여 묏자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신분제의 동요로 인해 중인, 상인 층이 몰락한 양반 가문의 선산을 뺏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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