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불출 의 유래가 궁금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두문불출 (杜門不出)이란 고사성어는 주로 사회의 일이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데 이 성어는 고려시대의 한 문장가인 이사춘 (李師春)의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이사춘은 문장력도 있고 능력도 있었지만 집에만 있었던 인물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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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문고는 실제로 효과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셋째 임금이 된 태종은 대궐 밖에 신문고를 두도록 했는데 신문고는 백성이 분하고 답답한 일을 임금에게 하소연할 때마다 치게 한 북이었지만 실제로는 신문고의 이용은 주로 서울의 관리들에게만 한정되었으며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일반 상인(常人)이나 노비 또는 지방 관민에게는 효용이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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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왜 하얼빈을 택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직전에도 거사를 이틀 앞두고 우덕순과 함께 조린공원을 거닐면서 거사 계획을 검토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순국 전날도 동생을 만났을 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던 자리이기도 한데 하얼빈은 가는 곳마다 안 의사의 영웅정신을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현재 안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하얼빈시조선민족예술관에 새로 세워진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나 자료들은 이곳을 찾는 한민족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바로 안중근 의사의 삶과 숭고한 의거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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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수상전에 능한 장군을 보았을때 이순신 장군이 전 세계적으로도 명장 중에 손꼽힐 정도라고 들었는데 그게 맞는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0년전에 영국의 BBC 에서 세계의 장군 100선을 선정 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순신 장군은 54위를 차지 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저지한 드레이크가 56위 인데 이보다 2순이가 더 높은 것으로 보아 이순신 장군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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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의 간체와 번체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오쩌둥의 명령을 받아 중국 교육부는 1956년이후 중국어의 발음부호인 "한어병음"을 만들었으며 또한 높은 문맹의 중국인들을 위해 복잡하고 배우기 어려운 번체자 (繁体字)의 한자를 배우기가 쉽고 간단하게 쓸 수 있도록 새롭게 만들었는데 이를 간체자 "(简体字)"라고 부릅니다. 결국 어려운 번체자를 외국인들과 국민들이 쉽게 배우게 하기 위해 만든 글자가 간체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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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많은 역사적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사회는 선교사가 들어올 때도여전히 엄격한 신분차이가 있었는데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런 신분의 차이를 철폐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한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인데 여기에도 감명 깊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제중원의 4대 원장이었던 에비슨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의 요청으로 중병에 걸린 사람을 고쳐주었는데 그런데 이 사람의 직업은 백정이었고 조선시대의 백정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임금의 의사였던 에비슨이 몇 번이나 직접 중병에 걸린 이 백정을 찾아가서 고쳐주었고 이 백정은 선교사의 정성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백정은 원래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많은 백정들을 모아 백정 권리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천한 신분에 평등한 사상을 심어준 기독교는 조선 사회에서 서민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성해 나가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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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어떻게 후삼국을 통일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더 이상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스스로 왕건에게 항복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936년 고려군은 일리천 전투와 황산 전투에서 신검의 후백제군을 물리쳤고, 그렇게 후삼국 통일을 이뤄내는데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신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후백제와 대립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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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시제문제 빈칸에 왜 이게 들어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been praised 가 답이 되면 수동태가 되기에 답이 될수 없습니다. Mr.Zapata and Ms.Coleman 이 마케팅 팀을 칭찬 한것이 맞는데 2가 답이 되면 Mr.Zapata and Ms.Coleman 이 칭찬을 받아 진것이 되기에 답이 될수 없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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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왕과 여왕은 세습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58년 7월부터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가 승하한 이후 2022년 9월 8일에 즉위할 때까지 웨일즈에 가장 오래 군림한 공작이었다고 합니다. 조지 6세 (1936년~1952년)가 즉위한 이후로 70년 만에 첫 남성 국왕 입니다. 이러한 왕위는 세습이 되고 찰스 3세가 세상을 뜨거나 자리에서 물러나면 윌리엄 왕자가 왕이 되게 된다. 이 경우 윌리엄의 부인 케이트는 왕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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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왜 평양이 아닌 개경에 수도를 세웠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경은 서경(평양), 남경(경주)과 함께 고려 3경 중 하나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들보다도 월등히 번성하고 높은 격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를 증명하듯 성종 때 정비된 5도 양계 행정구역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는데 개경은 주변 지역과 합쳐서 어느 도에도 속하지 않는 '경기'라는 별도의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경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여몽전쟁 시절 강화도로 파천을 갔을 때를 제외한 434년간 번성했다고 합니다. 개경의 인구가 10만 호, 그러니까 약 50만 명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아무리 개경이 북적거렸다고 해도 이는 주변의 행정구역을 포함하거나 과장이 가미된 숫자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과장을 배제하더라도 여러 기록을 절충해 보았을 때 개경이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번영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또한 아무리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 받고자 햿다고 하더라도 고려는 거란이나 여진 때문에 평양을 전략적으로 수도를 취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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