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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와 장조, 단조 여부는 절대적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조와 장조의 가장 큰 차이는 그 것들이 만들어 내는 음의 간격 구조와 그 음들의 감정적인 느낌에 있습니다. 그래서 장조는 보통 밝고 온화한 느낌을 주고 단조는 애잔한 느낌을 주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므로 절대적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대체적인 기준 입니다.
학문 /
음악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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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벨상 후보자 추천은 전해의 노벨상 수상자들과 물리학·화학·생리·의학 분야에서 활동 중인 학자들과 대학교 및 학술단체 직원들에게 요청하고 한 부문당 약 1000명씩 총 6000여 명의 후보자를 추천해야 하며 해당 후보를 추천하는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추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후보자 명단은 다음해 1월 31일까지 노벨위원회에 도착하며 접수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선정 작업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1년 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 한다고 합니다. 물론 유럽 미주 수상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나 어찌 되었건 현존 하는 세계적인 상 중에서 가장 신뢰성을 가지고 뽑는 다고하는 것은 사실 인 듯 합니다.
학문 /
문학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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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가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미 인조에게는 소현 세자가 더이상 세자가 될수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봉림대군을 세자로 세운 뒤 인조는 소현세자 일가가 봉림대군에게 걸림돌이 될 거라 스스로 단정짓고 소현세자 일가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 원손은 뚜렷한 책(꼬투리)을 잡을 수가 없었 던 것도 사실 입니다.
학문 /
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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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 시대의 다케다 신겐은 왜 가이의 호랑이로 불렸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은 일본 역사에서 높은 명성을 얻은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가이(甲斐) 지역의 다케다 가문의 지도자로서, 가이 지역을 통일하고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별명 중 하나는 "가이의 호랑이"인데 이 별명은 그의 무적의 기마 군단을 이끌었던 데서 비롯되었고 그만큼 전국의 군웅 중에서 가장 무서운 자라는 의미 입니다.
학문 /
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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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란 명칭은 언제부터 사용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 이라는 명칭은 삼국 시대 부터 사용 되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명칭은 1919년 4월 13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건국일로 정해진 날짜인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1948년 8월 15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서 1948년 8월 15일을 기준으로 개최된 건국 60주년 행사 때도 그렇게 기념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1919년 4월 13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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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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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장흥에서 유명한 돈차는 어떤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돈차(돈茶)는 주화 모양으로 생긴 한국의 후발효차로 떡차(병차, 餠茶)의 일종 입니다. 전차(錢茶)라고 부르기도 하며 발효된 찻잎이 푸른 이끼가 낀 주화처럼 생겼다고 해서 청태전(靑苔錢)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주로 대한미국의 전남 장흥군에서 재배 되는 차 이라고 하며 일반 녹차처럼 재배해서 키우는 차나무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산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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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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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영업전은 어떻게 해서 생긴 제도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업전은 고려시대에 양반(兩班) · 서리(胥吏) · 군인(軍人) 등에게 지급하였던 전시과(田柴科) 및 공음전시(功蔭田柴)의 이칭 입니다. 전시과만 영업전으로 파악하거나 공음전시만을 영업전으로 파악하기도 하느데 영업전은 비록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토지는 아니었으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자손에게 세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귀족 사회인 고려 시대에 귀족의 막강한 권력을 유지 시켜 주는데 도움이 되는 제도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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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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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왕실사람만 뽑는 과거를 시행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가 왕실사람만 뽑는 정책을 시행한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우선 왕위 계승 문제 떄문 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왕위를 계승할 적절한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왕실 내에서 후계자를 선출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흥선 대원군은 왕실사람만을 뽑아 후계자로 삼고자 했고 다음으로는 정치적 안정 무제 입니다. 왕실사람만을 뽑는 것은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왕실 외의 사람들이 왕위를 계승하면 권력 분쟁이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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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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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전염병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조들의 전염병에 대처하는 자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대표적인 역병은 온역(티푸스의 일종), 홍역, 두창(천연두) 이였는데 천연두를 종식시키는 데 일조했던 제너의 종두법(우두법)이 지석영에 의해 조선에 도입되는 것은 거의 100년 가까이 지난 후였습니다. 하지만 뒤쳐진 의학기술과는 달리, 우리의 선조들의 전염병을 대하는 방법은 현 시대의 대처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광해군 시대에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이 쓴 ‘신찬벽온방’(新撰辟瘟方)은 역병에 관한 것들을 집필한 의서에도 나와있듯이 구체적으로 대책 본부를 세우고 질병 관리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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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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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큰 전투로 꼽히는 전투는 어떤 전투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의 가장 큰 전투는 바로 팽성대전 입니다. 팽성을 점령한 유방(劉邦)의 56만 제후 연합군을 항우(項羽)의 3만 별동대가 기습하며 벌어진 회전(會戰)으로, 무려 19배에 가까운 전력차를 극복하고 3만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곤양 대전과 더불어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의 전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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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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