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DC인데요 .. 왜 가장 큰 뉴욕이 수도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리적 중립성이 그 이유인데 미국 건국의 당시 건국을 주도한 사람들은 수도가 특정 주를 선호하지 않는 지역에 위치하기를 원했습니다. 지도상으로 보더라도 워싱턴 DC는 북부와 남부 주 사이의 동부 해안을 따라 위치해 있어 지리적 중립성에서 가장 미국의 수도로서 적합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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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에서 문제가 생기면 항상 영국이 거론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 만큼 영국이 전세계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고 전세계 역사에 관여 했다는 것 입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그 역할을 미국이 넘겨 받아서 이제는 그 역할을 미국이 대행 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영국이 전 세계의 경찰 국가 역할을 해 온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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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운동가들 중 열사와 의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사와 열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사는 무력으로 대항한 사람들을 의미 하며 열사는 맨몸으로 싸우다 돌아 가신 분을 의미 한다고 합니다. 의사와 열사는 둘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구분 하는데 사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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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언제부터 생겨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설의 기원은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적어도 삼국 시대 이전 으로 볼수 있습니다.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1896년부터 공식적인 새해 첫날의 기능은 양력 1월 1일(양력설)에 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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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호판은 현재 우리나라 어느 정도 직책의 위치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조는 육조의 하나로 지관(地官), 지부(地 部)이라고도 한다. 재정을 담당하는 부서로 현재로는 '재정기획부'라 할 수 있습니다. 호판은 현재의 기획 재정부 장관 정도의 위치 라고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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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왜 채색이 없는 수묵화가 더 유행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가 약간 채색위주의 화려한 미술 문화를 보여 줬다면 조선 시대의 유교 중심의 문화는 다소 소박 하고 차분하며 단색 위주의 수묵화와 같은 소박함을 보여 준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수묵화가 고려 시대에 전해 지긴 했지만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유행 했던 것은 수묵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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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축구하는 날인데 한국과 요르단에 축구 전적 역사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번 조별리그 무승부까지 전적을 합하게 되면 요르단과의 역대 전적은 6전 3승 3 무의 기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한번도 요르단에게 진적은 없습니다. 다만, 이긴 것도 전부 다 1점 차이로 이겼을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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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자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대통령은 파블로에게 "당장 자수를 하면 형량 감경, 미국 송환도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후 파블로는 자수를 했고 그렇게 10년간의 유혈 사태가 종료됐다고 하는데 파블로는 자수 전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 건 협상을 했고 이에 호화로운 수감 생활을 지냈다고 하는데 이는 전 세계 역사상 최고의 양형 거래로 기록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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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국제 화가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산 김준근은 1980년대 이전까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화가였습니다. 처음엔 '기량이 떨어지는 삼류 화가'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에게 '조선 최초의 국제 화가' 'K컬처의 원조'란 수식어가 붙고 있는데 김준근이 그린 ‘망근장이’와 ‘추천하는 모양’ 등의 민속화가 유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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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번의 난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번의 난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오삼계군에게는 대의명분이 없었다는 것 입니다. 원래 한 나라의 지배자가 되려면 단지 군사적 싸움에서 이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의 집권을 정당화해줄 명분을 갖춰야 하는데 오삼계에게는 그 명분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 오삼계는 반란의 대의명분으로 대명의 부흥, 복수를 내걸었으나, 애초에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산해관을 활짝 열어 같은 한족인 이자성도 아니고 청을 맞이한 것도, 그나마 남아있던 남명의 저항 세력을 모두 박살낸 것도, 남명 최후의 황제 소종 영력제를 직접 교살한 인간도 오삼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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