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th of never는 어디서 유래된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The Twelfth of Never라는 단어의 유래는 조니 매티스(Johnny Mathis)가 1957년에 처음 녹음한 클래식 사랑 발라드 곡의 제목 입니다. 가사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주인공의 깊고 변치 않는 애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간을 초월하고 모든 역경을 뛰어넘는 사랑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 자체는 노래에 담긴 사랑이 영원을 상징하는 Never의 12번째를 넘어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파생됐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옛사람들은 떡 본김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떡 본김에 제사를 지낸다라는 말은 제사를 지낼 때 떡은 아주 필수적인 음식 이였습니다. 예전 처럼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떡을 해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떡을 보게 된다면 제사를 지낼 수도 있다는 의미로 우연히 운 좋은 기회에, 하려던 일을 해치운다는 말로 쓰이게 된 것 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켈트족들은 과거에 한창 갑옷을 입지 않고 싸웠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른바 켈트족이라고 하는 집단은 유럽에서 철기 시대가 시작될 무렵인 기원전 800년경에 중부·서부유럽을 중심으로 생활 하기 시작 했는데 켈트족은 외부에서 이주해 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발전하면서 형성된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국가 개념이 없이 부족 개념으로 생활을 했고 그래서 그리이스나 로마 처럼 군대 개념도 없다 보니 갑옷 이나 투구등의 복장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서유기는 소설인 건가요 그렇다면 누구에 의해서 쓰여진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설 『서유기』는 중국의 인기있는 대중 소설인 『서유기』를 16세기 명나라 때의 학자이자 시인인 오승은이 번역 및 축약한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민간 종교, 신화, 철학, 특히 도교, 유교, 불교 등의 영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민간 설화를 바탕으로 하는 『서유기』는 중국 문학의 4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나라마다 수도를 별도로 정하는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과거 조선이나 고려 시대에도 왕이 살고 중심이 되는 도시가 한양과 개경이 있듯이 현대 국가에서도 대통령이나 수상 등이 자내고 경제 행정의 중심지가 있어야 그 나라가 돌아 가는 것 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살고 그 국가의 중심이 되는 도시가 수도가 되는 곳이고 우리 나라는 그곳이 서울이 된 것 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과거에 전쟁을 할때 쓰던 투구는 어느정도의 무게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갑주( 갑옷과 투구) 의 무게는 약간 씩 다른데 조선 시대 투구의 무게는 약 1.5키로 정도 하였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동서양 군인들이나 전사들은 일본식 변발형태의 머리가 많았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머리를 변발로 자르지 않으면 투구를 썼을 떄 땀이 차서 투구가 잘 벗겨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 등의 장수들은 머리를 변발 머리를 하게 된 것 입니다. 우리 나라 장수들은 상투를 보통 틀었기에 그래도 투구를 벗고 쓰는 데 별 문제가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헤즈볼라가 무엇을 말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즈볼라는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당시 호메이니를 지지하며 이스라엘에 대항한 시아파 민병대에서 출발하여 레바논 내전 당시 이스라엘이 차지했던 레바논 지역에서 저항 활동을 하였다.헤즈볼라의 지도자들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군대는 이란 혁명 수비대가 조직하여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약자로, 1987년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점거에 대항한 최초의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후 창설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고려나 조선때 중국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당인으로 불렀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나라는 618년 ~ 907년까지 약 300년동안 중국 대륙을 지배 한 영향력이 막대한 왕조 였기 때문 입니다. 그 뒤의 명이나 청도 당나라 만큼 중국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명나라나 청나라도 당나라 만큼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을 지배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인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사육신은 왜 거사를 미루다가 결국 당하게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욱신들은 원래 1456년 6월 본국으로 떠나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유응부가 국왕 양쪽으로 칼을 들고 지켜서는 별운검(別雲劍)이란 것을 하게 됨을 기회로 세조 일파를 처치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이 사실이 사전에 누설되어 계획은 좌절되었고 이 때 윤영손이 노하여 신숙주를 죽이려 했으나 성삼문 등이 말리고 거사를 연기하였고 이들의 계획이 일단 좌절되자 같은 동지이며 집현전 출신인 김질등은 뒷일이 두려워 장인 정창손을 통해 세조에게 단종 복위 계획의 전모를 밀고하여세조는 연루자를 모두 잡아 들여 스스로 이들을 문초하였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