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충혜왕은 왜 백성들의 민심을 얻지 못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충혜왕은 세자 시절, 절 지붕 위의 새를 잡기 위해 불교 사찰에 방화를 한 뒤 도망가거나 불량배들과 어울려 걸핏하면 여자를 겁탈하고 술을 즐기는 만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아들의 만행을 듣게 된 부왕인 충숙왕으로부터 많은 질책을 받았다고 합니다. 원래 본성 부터가 약간 잘못된 인간형 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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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체결된 배경이 어떻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마디로 당사자와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없이 남의 땅 나눠 갖기 모임 이였습니다.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1905년 7월 29일 당시 미국 전쟁부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와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가 만나서 회의를 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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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신라조정에서 통제할 수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한 때 장보고가 신라 조정에서 통제 불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해상무역과 군사력이 너무 강력해서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세력을 두려워 한 나머지 신라 조정에서는 염장을 시켜 장보고를 암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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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병자호란 때 홍타이지가 직접 내려오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 나라를 두고 칸 자신의 자신의 입장에서 일개 변방에 불과한 조선까지 직접 내려온 이유도 인조를 빠르게 압박하여 신속히 끝을 내려는 이유에서였기에 직접 조선에 까지 온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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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하한제가 가지고 오는 부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가격 하한제의 부작용으로는 초과 공급 이나 정부의 추가 비용 발생, 블랙 마켓의 형성 등 다양한 부작용 적인 요소가 존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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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드리븐이라는 용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일어나는 일’이란 뜻의 영단어 (event)에 ‘특정 방향으로 이끌다' 란 동사 (drive)의 과거완료형이 합쳐져 ‘어떤 일의 발생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가도록 된’이란 의미를 갖는 표현 입니다. 즉 특정 행동이 자동으로, 혹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발생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구조를 가리키는데 이벤트-드리븐이란 용어가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활발하게 쓰인 분야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 인것 같습니다.예를 들어, 마우스 클릭이나 키보드 입력 같은 event 를 drievn 함으로써 이벤트에 대한 반응으로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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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서는 왜 과거제를 서얼, 천민은 볼 수 없게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원래 양천제의 구분이 뚜렸한 신분제 사회 입니다. 노비와 천민은 사실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게 됩니다. 조선 초기 세종 대왕 시절에 물론 장영실과 같이 노비가 큰 업적을 세우거나 왕의 추천으로 관직을 얻을 수는 있지만 거의 불가능 한 일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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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온돌문화의 원형, 즉 뿌리는 어느 지역에서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온돌문화는 특정한 지역 구분 없이 한반도 전 지역에서 발견 됩니다. 청동기시대를 거쳐 삼국시대 부뚜막식 화덕과 연도가 설치된 원시적 형태의 난방 방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고 기원전 3세기~1세기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원시적 온돌이 한반도에서 발견된 점들로 미루어 보아 한반도에서 온돌문화는 약 2천년이상 전승되었다고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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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장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관창을 왜 두번이나 살려주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 합니다.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맞붙었는데 계백은 김유신의 부하인 관창을 두 번이나 사로잡았고 하지만 계백은 관창을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던 이유는 관창이 어리고 용기가 있어서 그점을 높이사서 돌려 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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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이라는 옛날이야기는 어떻게 생긴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설화인데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 또는 金堤上)의 아내가 치술령에서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눌지왕 때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王弟)를 구해 온 박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일본에 건너가 또 다른 왕제를 구해 보낸 뒤 일본에서 신라의 신하임을 고집하다 죽는데 그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되고, 그 곳 주민은 부인을 칭송했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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