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천주교가 최초로 들어온것은 어느왕때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주교의 전래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임진왜란 당시인 1594년(선조 27) 포르투갈 신부인 세스페데스(Sespedes)라고 기록됩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종군신부로 입국한 그는 이후 많은 선교활동을 하였고,조선시대에 천주교 박해는 꾸준히 있었는데, 대규모 박해는 총 4번 있었으며 이 4번의 박해로 많은 천주교인이 학살당하며 순교를 하게 된다. 이렇게 100여년 가까이 이어져온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천주교 포교가 허용되면서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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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경제 성장률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1분기 국내총생산 (GDP)이 전년 동기 대비 7.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는 1분기 성장률로는 최근 10년 만에 가장 높은 것인데 베트남은 또 1분기 중 산업생산지수가 11.6%, 소매판매가 9.9%, 그리고 수출이 22% 늘어났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 같은 실적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것인데 경제개발협력기구 (OECD)에 따르면 베트남의 7.38% 성장은 중국과 인도의 6.8%,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5.1%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경제단위가 아주 작아 증가율이 의미가 거의 없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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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스페인의 함대에 무적함대라는 닉네임이 붙게된 연유는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적함대의 정식명칭은 '그란데 이 펠리키시마 아르마다', 해석하면 '축복받은 함대'라고 합니다 당시의 스페인 해군은 이미 무적함대로 통용되기 전부터 스페인 해군은 지중해를 이끌던 주요 함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가를 5세 시기에 튀니지에서 오스만 제국 함대를 쳐부수고 결정적으로 펠리페 2세때 1571년 오스만의 주력 함대를 레판토 해전에서 완전하게 전멸을 시키면서 이때부터 무적함대라는 명예로운 명칭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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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의 변화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과거 10년 간도 매년 2% 정도 씩 꾸준히 성장 해 왔고 앞으로도 향후 10년간도 매년 비슷하게 2-3%성장하고 소비, 투자, 수출이 골고루 늘면서 정상 궤도로 복귀해 빠른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단계적 일상 회복이 차질을 빚고 있고, 대내외 위험요인이 산적해 있어서 많은 어려움도 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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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이 몸에 좋다는 것은 옛 사람들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전에는 각종 한약 재료를 다 일일이 먹어 보고 키워 보면서 그 효능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러니 산삼도 그 중에 하나인 셈 이지요. 삼삼은 이미 고려 이전 부터 그 효능을 인정 받아 많은 중국 사진들도 도려의 산삼과 인삼을 가져 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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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쳐상은 어떤 계기로 만들어지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헝가리계 미국인인 조지프 퓰리쳐가 남긴 유언에 따라 50만 달러의 기금으로 1917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언론에 14개 부문, 예술(문학, 음악)에 7개 부문에 걸쳐 상이 수여되고 권위와 신뢰도가 높아 기자들의 노벨상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언론인에게는 가장 큰 영광으로 꼽히지만 하지만 이 상을 제정한 퓰리처는 역설적이게도 저널리즘의 적인 황색언론 주도했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황색언론 경쟁에서 퓰리처의 뉴욕 월드사가 패배하고, 퓰리처 본인도 실명하는 등 건강이 크게 악화되고 나서 깨달음을 얻어 후배들 중 참 언론인을 위해 제정한 상이 퓰리처상 입니다. 언론계에서 노벨상과 같은 위치로 통하기는 하지만,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은 아닙니다. 언론부문은 미국 언론과 미국 언론계에 종사하는 언론인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원칙이며 예술 부문은 미국인, 미국과 관련된 것만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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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팔자는 타고난다고 하는말 왜 생겼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팔자는 타고 난다는 말은 사주 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나타내는데 팔자 八字 :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 (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봅니다. 팔자 八字 : 한자 (漢字)의 ‘팔’이라는 글자의 모양 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팔자도 자기 노력에 의해서 바뀌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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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지역이 육식문화가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인육(人肉) 관련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 29년(1447년) 황해도 관찰사 이계린이 “기근으로 인육을 먹은 사람도 있다”고 고하자 조정이 발칵 뒤집힙니다. 세종이 누구에게 들은 말이냐고 이계린에게 직접 추궁하기에 이르는데요. 이계린은 “사람에게 들었던 것인데 잊어버렸습니다”라고 말을 흐립니다. 형조에 불려가 국문을 받으면서 비로소 말을 옮긴 이의 이름이 나오는데요. 대질 신문 끝에 말이 와전되면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결론이 납니다. 즉, 황해도 지역에 그런 소문은 있었지만 그냥 루머에 불과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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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우리나라 역사물품을 강제로 빼앗고 무기한임대를 주는데 다시 가져올 수 없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식민지 시대에 약탈에 의한 유적이나 유물은 반환 가능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매매에 의해서 판매가 되면 이것은 반환 청구가 불가능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직지 심체 요절 같은 유물은 프랑스 대사가 우리 나라에게서 돈을 주고 구매를 한 것인데 이럴 경우 반환 청구가 불 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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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전체 인구조사를 어떤방식으로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각 고을의 수령들이 호구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호적자료는 실제 인구의 증감을 반영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우선 조선시대에는 연령에 따라 노(老), 장(壯), 약(弱), 아(兒)로 구분했는데, 10세 미만의 아동들은 호적에 올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유아 사망율이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왕조가 호구조사를 현대국가의 인구통계처럼 정책수립의 기본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수령들은 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심한 흉년이나 전염병으로 인구가 대폭 감소했다 하더라도 과거의 관례대로 일정한 수의 호구를 중앙에 보고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반대로 경제사정이 좋아져서 인구가 대폭 증가했다고 해도 역시 과거의 호구에 비해 아주 작은 증가분만을 기록하여 보고할 뿐이었습니다. 이를 실제로 보고하면 자신의 고을에 할당되는 부세량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호구통계는 실제 인구수를 반영하는 통계로서의 신뢰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호구통계의 완전성은 4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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