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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학급의 반장이 일제의 잔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우리 나라는 조선시대에서 일제 시대를 겪으면서 바로 근대화가 이루어 졌기에 우리 생활 주변의 많은 것들이 일제의 잔재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 라는 것 자체가 조선 시대에는 없었으니까요. 조선 시대에는 그냥 서당이나 서원등이 있었지만 근대 교육이 시작 된것은 20세기 일제 강점기와 우연히 맞아 떨어 진것이지요. 반장, 조회, 주번이라는 단어가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들어 진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식이라면 우리가 쓰고 있는 거의 모든 단어들이 다 중국어 에서온 한자이거나 일본 단어들 입니다. 순수 우리말을 쓰는 것은 좋지만 외래어 라고 해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쓰고 한자어가 이미 우리말 화 된 단어들은 굳이 다른 단어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 까 하는 생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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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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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는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Publilius Syrus, BC 85 ~ BC 43)는 고대 로마의 작가이자 풍자시인입니다. 그는 고대 로마시대의 저명한 명언, 명구 작가로서, 원래는 시리아 태생의 이탈리아로 끌려온 노예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지혜와 재능에 감명을 받은 주인은 그를 해방시키고 교육을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무언의 익살극에 재주가 출중했고, 카이사르로부터 값진 포상도 받았다. 그는 교훈적인 짧은 경구는 물론 시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약 700여개의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명언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다.” “반복은 모든 가르침 중에 으뜸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라.” “시도해보지 않고는 누구도 자신이 얼마만큼 해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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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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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력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고대의 상나라에서 사용됐다는 역법 중 하나인데 태음태양력이며 365일과 1/4일을 1회귀년으로 정하고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91일을 1회귀년으로 간주하기에 그래서 사분력(四分曆)이라고 부릅니다. 상나라의 도읍지인 은(殷)이라는 명칭에서 유래되었지만 실재로는 상나라에서 사용하지 않고 전국시대 전국시대 이후에 만들어진것으로 추측되어 한나라 초기까지 사용한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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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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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회강이라는 책은 어떤 책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사 회강은 조선후기 문신·학자 임상덕이 삼국시대부터 고려말까지를 서술한 역사서입니다.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홍여하의 『동국통감제강』과 유계의 『여사제강』에서 비롯된 강목법과 정통론 도입의 역사 서술 방법은 『동사회강』을 거쳐 한 단계 심화되고, 『동사강목』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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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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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학이라는 것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풍수의 기원에 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고 합니다 하나는 한반도 자생설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부터 왔단 가설 입니다. 먼저 가장 극단적인 자생 풍수지리설의 주장은 구석기시대부터 그 연원을 찾고있는데 이에 의하면 한반도는 지형적인 구조에 있어서 산이 많은 까닭으로 산악과 산신에 대한 숭배사상이 구석기시대부터 전해져 내려 왔으며, 산신과 산악의 숭배사상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독특한 지석묘문화를 형성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풍수지리사상은 산악지대의 지리적인 환경조건과 산악숭배사상, 地母觀念, 영혼불멸사상 및 三神五帝思想 등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었으며, 檀君의 神市 선정, 王儉의 符都 건설, 지석묘 설치에서의 위치 선정 및 신라 탈해왕의 半月城 선정 등은 우리나라 고대에 풍수사상이 직접적으로 건축에 적용된 실례라는 것입니다. 결론은 원래 우리 자체의 풍수지리가 이미 이 나라에 있어 오다가, 백제와 고구려에 중국으로부터 이론이 확립된 풍수지리가 도입되면서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삼국 통일 이후에는 신라에도 전해져 한반도 전체에 유포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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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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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의 덮개는 나무였다는데 그럼 철갑선이 아닌거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는데요. 도쿠토미 이이치로(1863~1975)를 비롯한 20세기 초반의 일본 연구자들은 거북선의 개판에 대해 단순히 판(板)이라고 설명할 뿐, 철판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31년 《조선상고사》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장갑선이라고 볼 수는 있어도 철갑선이라도 볼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철갑선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서양에서 주로 거북선을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주장 했던 것 입니다. 미국인 선교사 겸 동양학자였던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1843~1928)는 1884년에 펴낸 《은둔의 왕국, 조선》에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와 조선군의 군함을 설명하면서 “금속으로 표면을 감쌌다(covered with metal)”이라고 설명했다고 하고 1929년에는 세계 유수의 백과사전인 영국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4판에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 군함(first Ironclad war vessel)”이라는 설명이 실리면서 철갑선 주장은 한 때 자명한 사실처럼 간주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의 교육도 이런데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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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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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신문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근대신문의 효시는 1896년 4월 7일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지인 독립 신문 입니다. 우리나라에 첫 광고는 1886년이었습니다. 주간신문인 <한성주보>에서 1886년 2월 22일자에 실렸던 광고가 우리나라 첫 신문광고였는데 요즘 광고와 달리 한자 24줄로 이뤄진 이 광고는 당시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광고였습니다. 내용은 세창 양행에서 사고파는 물품에 대해 나열한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광고라는 단어가 없어서 ‘고백(告白)’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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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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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관련 도서를 읽다보면 어려운 사자성어가 나옵니다. '백면서생'이라는 뜻은 무엇인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송나라의 책 심경지전에 등장하는 고사입니다. 白面書生( 백면서생)얼굴이 하얀 서생( 글공부하는학생)이란 뜻으로, 바깥활동을 하지 않고 오직 집에서 글만 읽고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실전 경험이 부족한 이를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에 주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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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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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라는 책은 어떤 내용의 책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관자> 라는 책의 저자 관중管仲은 우리에게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로 잘 알려져 있고 기원전 약 725~645년에 활동한 사람으로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입니다. 그는 춘추전국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중국 역사 전체를 놓고 보아도 최고의 정치인으로 손꼽히기에 손색이 없다고 합니다. 이 책이 가지는 다른 고서들과 비교되는 점은 바로 유일하게 기원전 고전 중에서 경제학에 대한 통찰이 들어있는 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민에게 돈을 꿔주고 곡식으로 그 빛을 갚게 한다. 그 뒤 높아진 곡식값으로 군수품을 산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렇게 경제학적인 개념을 언급 하 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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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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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말 또는 마차끼리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끼리 부딪히는 경우는 전쟁터가 아니면 거의 없었고 마차 사고나 수레 사고는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이 바로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교통사고는 세종대왕이 (옛날에는 번차추마(翻車墜馬) 수레를 타고 가다 뒤집히고 말에서 떨어져 다치는 것이 교통사고였음)였습니다. 이 사건은 세종이 대마도 정벌을 하러 가다가 당한 사고로만 알려져 있고 누가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았는지까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영화< 천문> 에서는 장영실이 개발한 수레라고 설정 된바가 있지만 그것은 그냥 영화 일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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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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