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생 루베르튀르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투생 루베르튀르는 1743년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섬의 프랑스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노예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루베르튀르가 33세였을 때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줬다고 합니다. 1790년 섬 노예들의 봉기가 일어났는데 루베르튀르는 해방노예 신분으로서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노예들의 봉기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루베르튀르는 남부와 북부의 주민들을 규합,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으나 영국군과 스페인군이 잇달아 쳐들어오면서 위기를 맞았는데 . 루베르튀르는 해방노예들로 게릴라 부대를 결성했다고 합니다. 정식 군사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는 타고난 지도자이자 군사전략가였고 1801년 7월 루베르튀르는 히스파니올라섬의 통일을 선언하고 자치정부 수반에 취임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반동 정권은 자코뱅 정부의 노예해방 약속을 뒤집었다. 나폴레옹은 매제 샤를 레클레르크를 시켜 해군 선단을 이끌고 히스파니올라를 공격하게 했고 루베르튀르는 노예제로의 복귀를 허용치 않는 조건으로 레클레르크와 강화조약을 맺었지만 레클레르크는 약속을 깨고 루베르튀르를 체포해 프랑스로 이송, 포르데주 교도소에 잡아넣었고 그는 거기서 폐렴에 걸려 사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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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의 종류 중에서 입역노비는 무슨 노비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입역 노비는 주인 집 외부에서 사는 노비 인데 외거 노비 라고도 합니다. 외형상으로만 보면, 독립적인 주택과 농토를 가진 외거노비가 그렇지 않은 주인집에 사는 솔거노비보다 더 나았을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외거노비가 솔거노비보다 경제력을 좀더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자기 집과 자기 농토를 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거노비는 사실상 소작농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외거노비가 솔거노비보다 못한 경우도 많았지요. 농사를 짓는 외거노비의 처지는 풍흉에 따라 수시로 뒤바뀔 수 있었지만, 솔거노비는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외거노비는 좀더 많은 자유를 갖는 대신 파산의 위험성도 그만큼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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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정의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로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이 행복함을 느끼는 경우는 다양하지만 궁극적인 행복은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입니다.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 인지에 대해서 알고 그에 맞게 뜻을 펼치는 것, 그것이 자아 실현입니다. 인문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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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이라고 하는 직책은 어느시대 직책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궁중의 숙직, 국왕의 시종·호종·경비, 왕명의 전달, 의장(儀仗) 등의 사무를 맡아보던 내관직인데 남반직은 후세로 내려갈 수록 잡류(雜流)·잡로로 취급되고, 또 말기에는 환자(宦者)가 이 직을 맡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더욱 천시되어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상은 주지만, 7품 이상의 관직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항상 국왕의 측근에서 일하는 근시인 까닭에 간혹 발탁되어 파격적인 승진을 하는 예도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원종 때에는 내시로서 장군이나 낭장으로 임명되는 자가 있었고, 충렬왕 때에는 고위 관직에 임명되는 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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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사도세자를 안죽였다면 어떻게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사도 세자가 안 죽었다면 사도세자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마도 조선의 22대 왕은 사도세자가 되었을 것이고 22대 왕인 정조는 아마도 23대 왕이 되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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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절에 모신다는 뜻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제사의 정의를 살펴보면, “천지신명을 비롯한 신령이나 죽은 이의 넋에게 제물(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표하는 행위” 라고 나와있는데 . 좁게는 천지신명에게 올리는 정성이며, 넓게는 샤머니즘 및 조상숭배, 애니미즘 등과 관련하여 제물을 바치는 의식 전반을 지칭합니다. 다만 고려말 이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유교가 도입되어 가족이 모이고 조상들을 기억하는 의례로 바뀌게 되었을 뿐이지요. 장소만 바뀌었을 뿐 집에서 지내나 절에서 지내나 큰 차이는 없을 것 입니다. 실제로 절에서도 기제사로 해서 약간의 돈을 받고 사람들의 제사를 지내 주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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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품사 중 왜 조사는 품사에 포함되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어의 품사에는 총 8가지가 있습니다.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전치사, 접속사, 감탄사인데요. 이중 우리말에 조사에 해당하는 것이 영어에 전치사 인데요. 전치사도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고 명사나 동명사와 같이 붙어 쓰여야 하지만 품사에 포함 됩니다. 품사는 독립적으로 쓰이냐가 아니라 단어들을 공통된 특질로 모아 놓은 놓은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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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에서 2인칭 소설은 왜 없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설에도 2인칭 소설이 있습니다. 편지의 형식을 빌리는 서간체 소설 중에도 일종의 2인칭 시점으로 된 것이 있습니다. 초대박 베스트셀러인 신경숙 의 엄마를 부탁해 의 1챕터도 2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협작가 진산 의 단편 중 잠자는 꽃 역시 2인칭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특히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너’는 서술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부분들은 위장된 1인칭 서술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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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일으켰다는 장제스는 마오쩌둥의 숙적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의 국부 라고 불리우는 손문이 죽고 나서 그는 새로운 국민정부의 주석으로서 사회개혁 정책을 굳건하게 지지했으나, 그 정책의 대부분은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로는 1928년 그가 중국 군벌들을 흡수했지만 그가 중국 대륙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선 각 지방의 군벌들을 진압했다기보다는 중립화시킨 것뿐이었고 군벌들은 여전히 그의 권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1945년 이전까지 내부 친인척과 측근들의 부패와 비리를 다스리지 못함으로써 국공 내전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게 패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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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사찰 세군데를 가면 좋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혀 근거가 없는 말 입니다. 다니 던 절도 일년에 한번 가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기복 신앙을 위해 부처님날이라고 절을 3군데 이상 돌아 다니는 것이 부처님이 좋아 하시지 않을 뿐 더러 아마도 자기절을 더 많이 찾아 달라는 일부 이기적인 장사속에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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