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올해가 불기2567년 부처님오신날이라고하던데 불기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기 2567년이라 함은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2567년이 흘렀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탄생이나 열반 연도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의 불기는 부처님 입멸 후 100년째 되는 해에 인도 마우리아왕조에서 아소카 왕이 즉위했다는 설을 토대로 계산해 입멸 연도를 산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3.05.09
0
0
역사상으로 보면 1인자를 제외한 2인자가 기억되는 일이 드문데, 1인자 만큼 기억되는 2인로 누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가들은 현대 중국 역사에서 뽑은 가장 완벽한 2인자 중에 하나로 중국 공산당 모택동 시대의 2인자 주은래를 선택 했다고 합니다. 그는 무려 27년간 총리로 재직하며 공산 혁명, 문화 혁명 등 생사를 건 권력 투쟁이 빈번했던 격동의 시대에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2인자를 자리를 지킨 신화적 존재 입니다. 업무 태도, 온화하고 섬세하며 유연한 성품과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많았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유소기, 임표, 등소평 등 많은 이들이 정치적 수난을 겪었지만 주은래만은 외교부장과 총리로 모택동을 보좌하며 오늘의 중국 건설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5.09
0
0
통일이되면 언어적으로 생기는 변화는 어떤것들이 있을수 있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일이 되면 우선 표준어를 만들어야 겠지요. 북한말과 남한말들 중에 공통 되는 것들과 차이가 나는 것들을 같이 통일해서 정리 하는 작업이 이루어 질 것이고 평영 말과 서울 말중에 어떤 말을 표준어로 할 것인지를 정하고 표준어 사전도 다시 만들어야 할 것 입니다. 요즘은 워낙 인터넷이랑 통신 기술이 잘 되어 있어서 서울말이 표준어로 정해 져도 황해도나 함경도 지역에서 서울말을 쓰는 것은 몇 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제주도에서 더이상 사투리를 많이 안 쓰고 서울 표준어를 쓰는 것과 동일한 효과 이지요.
학문 /
역사
23.05.09
0
0
개인이 달러화를 보유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외화 예금입니다. 일명 달러통장이라고 하는데 금리는 연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수익에 대해 세금을 떼지 않고 5천만원까지 예금자보호가 돼 초보자들이 접근하기 좋습니다. 연간 금융소득이 2천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부과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도 물리지 않고 외화예금은 웬만한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데 통장을 개설하면 달러든 엔화든 유로화든 다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달러를 사면 그날 환율 시세에 따라 달러로 환전돼 통장에 찍힙니다. 추후 달러가 오르면 매도해서 원화로 받을 수도 있고 달러로 출금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달러가 많이 남았다면 외화 예금에 넣어도 됩니다.
경제 /
주식·가상화폐
23.05.09
0
0
신용카드 한도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신용 카드 한도는 은행 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개인의 신용 등급을 기준 하고 또한 개인의 소득을 우선 해서 판단 합니다. 또한 채무가 얼마나 있는지도 신용카드 한도를 정하는데 영향을 줍니다.
경제 /
대출
23.05.09
0
0
고려시대 이자겸의 난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126년(인종 4년)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이 벌인 난인데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누르고자 인종이 먼저 측근 세력을 동원하여 이자겸을 제거하려 했고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자겸은 왕궁을 침범하여 왕을 유폐시키고 정치를 독단하였습니다. 인종은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이자겸을 유배 보냄으로써 인주이씨의 발호는 막을 내렸지만 정치기강은 더욱 문란해져 귀족층의 분열과 대립이 표면화되고 귀족사회 자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5.09
0
0
조선의 신분중 하나인 중인은 어떤 신분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인들도 과거 시험인 잡과를 볼 수는 있었습니다. 조선은 공식적으로는 양천제였으므로 중인은 공식적인 신분은 아니었고, 실제 사회적 대우로 구별된 계층이었던 것입니다. 양반에 비해 여러 차별 대우를 받았지만 전문기술자로서 실무를 담당했고, 그 중 잡과 합격자들은 일단 관료로 대접은 받았기에 일정의 권리를 누렸고 수완을 발휘하는 자들은 양반 이상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역관들은 사신단에 참여하여 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문 /
역사
23.05.09
0
0
북한은 왜 공산주의국가를 이어가는거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지 모릅니다. 탈 북민들의 이야기만 들어 봐도 알 수 있지요. 북한에서는 인터넷 접속도 우리나라 인터넷은 차단 당하고 중국보다 더 언론 감시가 심합니다. 교육 자체가 초등 학교 때 부터 공산 주의 사상이 민주주의 사상 보다 더 위대 하다고 배우며 그렇게 성장 합니다. 물론 평양에 살거나 고급 간부들은 한국이 더 잘 살고 경제력도 우수 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것을 모르고 살아 갑니다. 사정을 모르니 부러워할 이유도 없지요. 워낙 김정은 독제 체제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을 뒤엎을 만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힘들지요. 그래서 철저한 통제 속에 아직도 북한은 생존을 해오고 있는 것 입니다.
학문 /
역사
23.05.09
0
0
고종이 선포한 대한제국은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 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재했던 제국으로 조선을 계승한 국가이자 한반도의 마지막 군주국이며 겨우 13년 남짓 존재 했던 역사 입니다. 더군다나 다른 왕조도 아니고 조선의 국왕 이였던 고종이 그대로 대한 제국의 1대 황제에 올랐고 근대화를 추진 하였지만 당시 상황으로 대한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게 강점을 당했고 그 이후에는 대한 제국은 완전히 없어 지게 됩니다. 즉, 나라가 없어지게 되는 치욕을 겪게 되는 것이지요. 당시 백성들에게는 그냥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으로 기억 되는 것이 편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5.09
0
0
옛날 군사들 이동 시 지휘관은 말을 타고, 병사들은 뛰어 다녔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전에 군사들은 뛰어 단기 보다는 보통 행군으로 걸어 다녔습니다. 뛰어 다니는 것은 긴박한 상황 에서만 가끔 그런 것이고 평상시 이동중에는 열과 오를 맞춰서 이동 중에는 도보를 하였습니다. 물론 말을 타는 장수들은 천천히 말로 이동을 했을 것이구요.
학문 /
역사
23.05.09
0
0
1729
1730
1731
1732
1733
1734
1735
1736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