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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나 전설?을 보면 12지신이나 12제자등 12라는 숫자가 많은데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서양을 막론하고 12라는 숫자는 정말 많이 쓰입니다. 우선 서양에서의 숫자12에 대해서 살펴보면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책인, 성경에는 187번에 걸쳐서 12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요한 계시록만 봐도 22번이나 나오지요. 구체적인 예시는 너무 많아서 별도로 예를 들지 않겠습니다. 이렇듯 12라는 숫자의 의미는 완벽함을 나타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를 나타내는 숫자이지요. 동양에서 예기하는 12지라 함은 12간지와 10간을 조합해 60가지의 간지가 나오는데 한 사람의 인생 사이클을 의미하는 ‘환갑’의 나이 60세가 바로 여기서 나오지요. 즉 동양에서의 12라는 숫자는 인생숫자입니다.우리의 실생활에서도 12라는 숫자는 굉장히 많이 보여집니다. 1년은 12달이고 하루는 24시간이며 오전 오후 각각 12시간으로 나누어 지지요. 또한, 피아노 건반은 한 옥타브가 12개의 반음으로 이루어지구요. 이렇 듯 숫자 12가 상징하는 바는 동서양을 막론 하고 아주 크다고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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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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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의 가장 큰 없적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순신 장군의 대표적인 업적은 정유재란때인 1597년 삼도수군통제사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진도 울돌목에서 13척의 배로 133여 척의 왜군에 압승을 거둔 명량해전이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 전투로 인해 정유재란의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습니다.이 전투가 대단한건 당시 임금인 선조는 수군의상황이 어렵다는 걸 알고 수군을 육군으로 편입해 육상전을 펼치도록 명령을 내렸으나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으므로 승전할수 있다라고 확신하며 끝까지 해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의 발생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전까지 기록이 남긴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2014년 한국 갤럽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또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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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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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도가 주들마다 사각형모양으로 딱딱 나뉘어있는 역사적인 이유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미국의 주의 모양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서 우선 미국의 역사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해야 할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미국의 주의 구분에 가장 영향을 미친것이 바로 미국의 독립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원래 13개의 영국 식민지 주로 이루어 져있던 식민지 사회였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전쟁에서 이겨 1783년 공식적으로 독립을 하게되었고 이 13개의 주들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의 1959년 50번째 주인 하와이 까지 50개의 주들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로 성장하지요. 초기의 각주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은 자연적인 지형물 이였습니다. 주로 큰 강들을 기준으로 해서 주들이 나뉘어졌지요. 물론 철도의 건설이나 뉴욕주를 가르는 이리(Erie Canal)운하의 건설등도 초기 주들을 나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주로 초기 미국인들이 거주했던 지역은 버지니아, 펜실베니아, 뉴욕주 등의 동부였지요. 초기 13개의 식민지주로 있을 때만해도 캘리포니아,네바다, 애리조나와 같은 미국 서부가 얼마나 큰지 또 어떻게 주 경계를 나눠야 하는지도 사람들은 별로 관심도 없었지요. 왜냐면 서부지역에 거주하게된 미국인들은 전부다 동부쪽에서 온 이주민 들이였고 록키산맥이 지나는 콜로라도와 같은 중부지역은 초기에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지역이였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미국 동부는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각주의 경계가 그래도 직선이 아닌 곡선의 형태로 되어있지만 미국 서부와 중부 지역은 너무 넓고 측량 조차 어려운 시기였고 또한 아무도 반대를 하는이가 없었기에 획일적으로 주경계를 마치 자를 대고 선을 그어 논것 처럼 미국 정부가 구분을 해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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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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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말고 손금을 보는 나라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손금을 우리나라에서는 본다 라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손금을 읽는다라는 표현을 하고 또 학문으로 인식되어 집니다. 손금을 보는 학문인(수상학)은 약 5000년 전 인도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주로 사람의 성격과 질병을 진단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하며 그것이 고대 페니키아를 거쳐 중국이나 유럽 전역으로 전파된것이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손금을 연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며 역사적으로는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도 당시 손금의 전문가 였으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당시 환자의 손금을 보고 병의 증세를 알았다고 하며, 유명한 시저도 손금을 자주 봤다고 합니다.영국의 핸리 8세는 중세 시대에 수상학을 한때 우상이나 혹은 미신,악마를 섬기는 것이라고 해서 금지시킨 적도 있지만 그 명맥은 계속해서 후대에 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됩니다. 이렇듯 손금을 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잘 알고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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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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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시간은 왜 영국에 비해 1시간이 느릴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시다시피 지구는 하루24시간 동안 360도 회전, 즉 자전을 하지요. 그러니까 1시간에 15도의 경도로 회전을 합니다.경도라도 하는것은 지구본이나 세계지도를 봤을때 세로로 그은 선이 있지요? 그게 바로 경도에 해당합니다. 가로로 그은 선은 위도이구요. 또한 세계의 표준시각을 정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기에 워싱턴에서 열린 1884년 국제자오선 회의를 통해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가 기준 자오선 (경도 0°선)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나라의 표준시와 표준시간대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인 본초자오선을 기준으로 24개의 지역으로 나누게되었구요.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하니까 영국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국가들이 더 시간이 빠르고 영국의 서쪽에 있는 국가들이 시간이 더 느린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영국의 동쪽으로 경도차이가 135도 차이가 나니까 9시간(서머타임 적용시 8시간) 더 빠르구요. 다만 예외적으로 경도가 비슷하더라도 그 경도선이 한 국가를 가로지르거나 할 경우에는 혼란을 막기위해서 경도를 직선으로 표기하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그어서 시차혼란을 방지하게 되지요. 그래서 일본과 우리나라도 경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간대를 사용하게 된것이고, 영국과 프랑스도 비슷한 경도에 있지만 프랑스는 다른 독일이나 다른 서유럽국가들과 같은 시간대로 분리되었고 그결과 영국과 1시간이 차이가 나는 다른 시간대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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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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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의사와 열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답변을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알려 드릴게여. 두 명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력을 동반하느냐 안하는냐의 차이입니다. 우선 의사는 말 그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력을 통해서 그 성패와 상관없이 적에게 대항하다 돌아가신 분을 뜻하며 여기에는 안중근,윤봉길,이봉창 등과 같은 분들 이구요. 열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비무력적인 방법을 통해 적에게 대항하거나 혹은 자결한 분들 입니다. 유관순, 이준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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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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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말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라는 우리말의 속담은 칼로 물을 베는 것처럼 금방 다시 붙는다는 말을 비유한 말이지요.물은 잘라지지 않는다라는 말이구요.즉,부부는 싸워도 금방 화해한다는 뜻이고,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의 속담입니다. 서로 다신 안볼듯이 싸우고 금방 다시 잘 지내는 부부들 에게 쓸수 있깄지요. 사실 부부의 싸움을 비유하는 속담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예를 들어 부부싸움은 개도 안 말린다 라는 속담도 있는데 이는 곧 제3자가 부부끼리의 싸움에는 관여하면 안된다는 의미이지요. 비록 이런 속담의 출처는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이러한 말이 생기게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말은 자주 듣고 말하다 보면그 안에 힘이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을 자주 듣다보면 그렇게 실제로 그렇게 믿게 되고 그럼 쉽게 화해할수 있을 것 이라는 논리인것 이죠. 서양에서도 비슷한 영어 속담이 있습니다..Lovers' quarrels are soon mended (연인끼리의 싸움은 금방해결된다) 정도로 해석이 되겠네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부끼리의 싸움은 이렇게 보는 시각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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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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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합니다 경제가 왜 안좋다고 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질문하시는 분의 말이 맞습니다. 제 기억으로도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경제가 좋다 잘 돌아간다고 했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가 좋다 안좋다고 하는 기준은 참 다양하고 범위가 넓습니다.하지만 그래도 경제를 그나마 객관적으로 판단할수 있는 것이 바로 경제지표 입니다. 이는 글자그대로 번역하면 ‘경제의 상태를 가리켜 주는 각종 수치’ 라고 할수 있는데여.가장 대표적인 경제지표로는 경제성장률이 있습니다. 경제성장률 높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건강하다는 이야기이고, 경제성장률이 낮다면 대한민국경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갈 때 건강에 문제가 있을수 있다라는 식이지요. 이러한 경제지표에는 경제성장률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건강상태를 나타내주는 지표에 체중, 혈당수치 등이 있듯이 경제의 건강상태를 나타내주는 경제지표에도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물가지수,금리, 환율, 코스피 지수 등등 여러가지가 있지요. 이들중에 머가 제일 중요하다고 잘라 예기할수는 없습니다. 수출입에 관심있는 사람은 환율과 관련된 경제지표를 중시할것이고 국내물가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물가지수가 중요하겠지요.인플레이션의 대표적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는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데요 가계가 많이 구입하는 460개 품목군을 선정하고,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해 산출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OECD 는 올해 한국경제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4.8%에서 5.2%로 0.4%p 올려 잡기도 했습니다. 물가가 상승하면 같은 금액의 화폐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양이 줄어든 것이며, 이는 화폐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결론적으로 현재 경제가 안좋다고 하는 이유는 장기적인 코로나 이후에 물가상승과 함께 환율 상승 등도 동반해서 전반적으로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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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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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시 불교에서 유교로 국교가 바뀐건 왜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숭유척불(崇儒斥佛,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함)은 조선왕조의 창업정신이였습니다.이것은 ‘조선왕조의 설계자’라는 삼봉은 [불씨잡변]를 통해 불교를아주 심하게 비판했습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에 공인된 불교는 고려에 이르기까지 일천 년이 넘게 한반도의 사회, 문화에 전반에걸쳐 실세를 장악하면서 황금기를 누렸으나 고려에 와서는 타락이 가중되고 결국 역성 혁명으로 왕권을 쥔 이성계와 그의 추종 세력들이 신봉한 유교에 천 년 이상을 독식해 오던 모든권력들을 유교에 넘겨주게 되지요.당시상황은 예를들어, 일부 승려들은 공양받은 재물을 부처와 승려의 공양에 쓰지 않고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데 쓰며, 풍속을 어지럽히기도하고 권세가에게 뇌물을 써서 큰절을 독식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의 건국이념이 바로 이러한 타락한 불교를 타파하고 성리학 중심의 새로운 나라를 새우고자 했던 것입니다.하지만 아이러니 한 것은 정작 조선 건국의 시조 이성계가 불교신자 였고 다수의 조선초의 기득권 세력 또한 불교적 정신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였습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조선시대에도 불교를 배척은 했지만 그 존재자체를 부정했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불교가 우리 생활에 남아있게 된 것이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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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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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처음 발견 제조 하여 마시기시작한때 는 언제부터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술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인류의 역사를 언급해야 할것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수만년이상 되었다고는 하지만 농경생활과 가축을 기르며 정착생활을 하게된 건 약 1만년전인 신석기 시대부터 였습니다. 이후 보리, 옥수수, 콩 등이 작물화가 되었고, 가장 늦게 우리의 주식인 쌀이 작물화가 이루어 지고 술도 이시기에 인위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 졌다는 것이 신빙성있는 가설입니다.물론 그 이전에도 원숭이가 바위틈속에 숨겨둔 과실이 발효되어 그 걸 먹어본 인간이 직접 과실을 담구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만 구체적인 시기는 술의 기원은 약 1만년 전이라고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신화나 혹은 성경에도 포도주와 같은 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중국은 약 8천년 전인 황화문명때 처음으로 곡물로 술을 빚었다는고 합니다. 이는 그당시의 발견된 유물중 약 20% 이상의 물건이 술을 만드는데 쓰였던 주기(酒器)였다는 점에서 술이 일상 생활에 이미 많이 퍼져있었음을 짐작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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