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기원과 왜 11명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축구의 정원은 1850년대까지만 해도 15명에서 20명이 한 팀을 이뤘다고 한다고 합니다. 정해진 인원이 없었기에 60명이 뛰었다는 기록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러던 중 영국 사립학교들이 축구 대항전을 치르기 시작하면서 한 팀 인원이 11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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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부통령이 있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국의 부통령 은 미국 헌법에 의해 만약 미국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 자리를 승계하게 되는 가장 첫 번째 순위 직책 입니다. 미국의 부통령은 또한 상원의장 을 겸임한다고 하비다. 상원의장으로서 만약 투표의결시 같은 수의 찬반표로 나뉠 때 결정표를 던질 권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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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님은 전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장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에 세계적으로도 이순신 장군님은 전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장으로 볼 수 있는데 일본의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1848~1934)과 영국의 넬슨 제독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3대 해군 제독으로도 손꼽히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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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라상에는 어떤 음식들이 올라갔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라상은 크게 3개의 상을 쓴다고 합니다. 주된 상인 대원반에는 흰수라(백미밥)와 국, 각종 장류와 김치, 반찬, 토구를 올렸고 곁반에는 팥수라( 팥밥과는 다르게 팥을 넣은 게 아니라 팥을 끓인 물로 밥을 지어 붉은 색을 입힌 것 입니다), 곰국, 기타 별식 등을 올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상반에는 찜과 조치(찌개), 전골류를 올렸다고 합니다. 물론 임금도 사람인지라 세부적인 반찬들의 종류는 임금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바뀌기도 하였다는데 가령 세종의 경우 고기 반찬이 항상 빠지지 않은 반면, 영조와 정조는 서너 가지의 채소 반찬으로 단촐하게 차린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연산군은 정력에 좋다고 한 민물 장어와 말고기 ㅇ육회를 즐겨먹었으며, 고종과 수종은 서양 요리를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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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로스의 그림은 미술품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밥 로스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는 방송을 포함하여 3만여 작품을 남겼는데 실제 시장에서 거래된 미술 작품은 딱 2개, 그것도 저가로 판매된것에 그쳤다고 합니다. 나머지 그림은 방송국과 PBS 지방에 기부되었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이고 판매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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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국가가 파산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이디오피아의 경제적인 하락이 일어난 이유는 국내 갈등, 가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원자재 가격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성장과 인플레이션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국방비 지출 증가와 수익 성과 부진으로 재정 적자는 2021년 2.8%에서 2022년 GDP의 4.2%로 확대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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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가마를 탈 수 있었던 신분이 제한적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금이 타던 연(輦)과 가교(駕轎)왕녀가 타던 덩(한자를 빌려 덕응(德應)이라고도 했다고 합니다)종1품 이상의 고위관리와 기로(예순 이상의 노인)가 타던 평교자(平轎子), 정2품 판서급 관리와 재상이 타던 사인교(四人轎), 종2품이상이 타고다니는 정3품 참의와 승지가 타는 남여(籃輿)(사극에 등장하는 의자 모양의 위가 트인 가마) , 종2품 이상 관리가 타던 보교(步轎)와 초헌(종 3품의 관리가 타는 외바퀴 달린 가마), 종2품 참판 이상 관리가 타던 사인남여(四人籃輿), 하급 관리가 타던 장보교(帳步轎), 물건을 나를 때 사용하는 채여, 갸자 등이 있다고 합니다. 혼인날에 신부가 타고 친정에서 결혼식장으로 갈 때 타는 가마 역시 평교자입니다. 가마는 처음 삼국시대이전부터 있었으리라 짐작되고 일바적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가마는 타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종류와 이름도 다르게 여러 가지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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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주류세는 몇프로정도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현재 주세는 제조장 출고 또는 수입통관시에 한번만 부과되는 간접세이며, 세율체계는 종량세인 주정 (㎘당 57천원), 맥주 (㎘당 855.2천원), 탁주 (㎘당 42.9천원)이고 나머지는 종가세이며 세율은 30% (약주·과실주·청주), 72% (소주·위스키·브랜디·일반증류주·리큐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보통 주류세가 올라가면 주류 가격을 올리지만 주류세가 내려 간다고 주류 가격을 내리지는 않는것이 일반적인 관행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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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결혼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라에서 어떤 지원을 해주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국대전에 보면 “사대부 집안의 딸이 30세가 되어도 가난해 시집을 못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예조에서 왕에게 아뢰어 혼수 물건과 돈을 지원한다”고 규정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다지 빈곤하지 않음에도 30살이 넘도록 시집보내지 않으면 그 가장은 중죄로 다스린다고 했다고 합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과년하도록 결혼하지 못한 자는 관에서 마땅히 성혼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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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징벌은 조선의 승리가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마도 정벌은 총 3차례에 걸쳐 진행 되었습니다. 1차는 고려말인데 당시 대마도에 당도한 박위는 왜구의 선박 300척과 그 근방 해안의 건물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원수 김종연, 최칠석, 박자안 등과 함께 공격을 감행해 고려 백성 남녀 100여 명을 구출한 뒤 고려에 무사히 귀환했다고 합니다. 이에 창왕은 박위를 칭송하는 교서를 내렸을 정도로 성공적 이였습니다. 2차가 태종이 상왕으로 있을 세종 1년 당시인데 이 원정은 180명의 조선군이 전사하는 등 많은 인명 희생이 따랐으며 분명한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원정대가 돌아온 후 다음 원정을 논의하였으나 사정상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정 이후 대마도주(對馬島主)가 항복을 청하여 옴으로써 사태가 일단락되게 되었는데 대마도주는 또한 신하의 예로서 섬길 것을 맹세하고 경상도의 일부로서 복속하기를 청하였고, 왜구를 스스로 다스릴 것과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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