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서 산업혁명이 각국의 사회 계층 구조와 도시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산업혁명을 통해서 노동력 수요가 발생하자 농촌 하층민들이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서 몰리게 되죠. 그러나 노동력의 공급이 너무 많아지자 노동자에 대한 급여가 낮아지고, 일하는 시간 또한 16시간에 이를 정도로 노동자의 삶은 피폐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참정권을 요구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등으로 변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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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을 가지 않았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인조도 빠르게 강화도로 가고 싶었으나 청나라 군이 빠르게 길목을 막으면서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른 왕실가족들은 강화도로 들어갔지만 인조는 그러하질 못 했던 것이죠. 그만큼 급하게 들어간 남한산성은 모든 물자가 부족하여 오랫동안 항전할 수단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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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에 갑신정변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갑신정변 당시 김옥균 박영효 등이 일으킨 정변을 갑신정변이라 하는데, 이때 발표한 것이 14개조 개혁안이 있었죠. 일본군의 힘을 빌어서 정변을 일으켰으나 결국 3일만에 실패한 3일 천하라는 우리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혁이었습니다. 신분제 폐지 같은 구시대적인 신분질서를 정리려는 노력도 있었으나 일본군을 믿고 개혁을 급하게 진행하면서 청나라와의 관계 청산이 껴 있기도 했었ㅂ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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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중요 문화재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제가 생각하기엔 콜로세움이 아닐까 합니다.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의 거대함과 화려함, 수많은 전투를 상징하는 검투경기 및 여러 볼거리들, 하지만 그 로마의 쇠퇴를 보여주듯이 일부 무너져 내림과 함께 지금도 로마를 기억하듯이 그 거대한 석축물은 지금도 보전되고 있는 것이 로마의 상징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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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기전체 방식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기전체 기록 방식은 사마천의 사기가 대표적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기전체 형식을 이용하여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본기 열전 지 표 세가 라는 형태로 구분하였는데, 황제, 왕은 본기, 그 아래 신하 등은 열전으로 구분하는 방식이죠. 이는 개인이나 문화, 사회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에 과거의 역사를 파악하기에 좋은 방법입니다. 다만, 중복되는 사실이나 사건이 반복되어 기록됨으로써 분량이 방대해지게 된다는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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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전염병은 사회 구조와 가치관을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대표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변화는 흑사병을 들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 신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에 의한 질서를 당연시했던 시대에서 흑사병이라는 원인도, 통제할 방법도 몰랐던 중세인들은 신에게 빌고 또 빌었지만 죽음은 공평하게 찾아왔기에 더이상 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라는 보다 인간 중심의 사고를 하게 되었으며, 급감하는 노동력은 이제 하층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흑사병과 같은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해서 기도가 아닌 의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마련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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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제국이 쇠퇴할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제나 사회적 징후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결국 멸망하는 국가의 공통점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상위계층의 무능함과 무능력, 탐욕, 수탈, 주변국가의 성장, 라이벌의 성장 등이 있겠습니다. 로마가 팍스로마나 시대가 있었지만 결국 평화에 물들었고, 중국의 한족 국가가 그러했으며, 통일신라 고려 조선 또한 종국에는 왕의 사치향락과 무능력함, 백성들에 대한 수탈이 이어지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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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의 발단이 된 사건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동학농민운동은 농민 등의 아래에서 이루어진 개혁에 가까웠습니다. 착취를 일삼았던 지방 벼슬아치(조병갑)의 수탈에 반기를 들어 봉기하였으며 정부군을 격파하며 위세를 떨쳤죠. 하지만 일본과 청나라군이 들어오게 되면서 외세의 개입을 막기 위해 1차 봉기를 끝냅니다. 하지만 일본군이 들어온 이후 돌아가지 않고 경복궁을 점유하자 이를 바로 잡고자 2차 봉기가 일어났지만 일본군의 화력에 처참히 패배합니다. 동학농민군은 폐정개혁안 12개조를 통해서 반외세, 반수탈, 반신분제 등을 요구하였으며, 이는 갑오개혁에서 신분제 철폐 등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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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의 평균수명은 몇 세였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는 일반 백성들의 경우 양반들 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살았으나, 양반들 또한 현대의 사람들만큼은 살지 못했죠. 이는 양반이라는 성리학적인 명분, 외부에 보여지는 것들을 중시하며, 운동이나 사냥 같은 활동 보다는 책을 읽고, 유교경전을 공부하는 등의 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게다가 식사는 육류 섭취가 많았으며, 사회적인 변동 등에 의한 스트레스 등 오래 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으니, 현재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남자는 80세, 여성 85세 정도로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있으나 조선의 양반은 50세 정도로 지금에서 보면 상당히 짧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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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참전국과 참전 군인을 기리는 감사의 정원 사업은 뭔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서울시의 오세훈 시장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것들은 현재 서울에 살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정책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뭔가 "해놨다.", "세워놨다" 등을 남기려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명박이 청계천을 만들면서 온갖 욕을 먹었지만 지금 시민들과 해외 관광객들에게 호응을 받는 상징성을 만들었으니 오세훈 또한 뭔가를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상당히 무리수만 두고 있죠. 한강택시를 만들었지만 선정과정에서도 문제였으며, 들어간 비용도 수백억원이지만 정작 대중교통 파업 때 마저도 시민들이 한강택시를 이용하지 않았죠. 여기에 조선의 상징과 같은 광화문에 감사의정원 이라는 이상한 짓을 또 하고 있습니다. 해외 파병을 했던 국가들과 연결해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기념동상 등을 세운다는 것인데, 지금 극우의 문제가 대두 되고, 윤석열이 뉴라이트 등의 지원을 받아서 반일 감정이 아닌 반공산화를 강조하기 위해 우리 독립군을 테러리스트로 치부하고, 홍범도 장군상 등을 육사에서 치우려고 별짓을 다했죠. 그러한 흐름에서 오세훈 또한 국군, 반공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이용하기 위해 국군을 내세워서 광화문에 감사의 정원을 만들려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해외 각 국가에서도 전혀 모르는 일이며, 지원하지도 않는 상황이라 서울시의 오세훈 혼자서 떠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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