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왜 모든 사람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고대 그리스를 떠올려 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당시 그리스는 수많은 작은 도시국가들이 존재 하였고, 그 도시국가 끼리 경쟁하며 전쟁도 하고, 투쟁을 하던 시대였는데, 이때 전쟁에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남성이 시민이었고 그 시민이 국가를 위한 민주주의의 참정권을 가졌던 것이죠. 초기에는 말을 소유하고, 스스로 무장할 수 있는 소수의 귀족들이 기사로서 권력을 독점하였지만 이후 나타난 집단보병(팔랑크스) 방어 공격형태가 나타나며 말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무장이 가능한 시민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며 조금은 더 넓어진 민주주의가 시행됩니다. 하지만 말씀하셨던 것 처럼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 말하는 소유물 노예, 그리고 이방인의 경우는 참정권이 제한 되었습니다.즉, 나라를 위해 스스로 무장해서 국가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남성이 민주주의의 참여자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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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나 천주교와 다르게 불교에서는 머리를 짧게 자르는 이유가 멀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불교가 태동하던 시기 인도에는 브라만교가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브라만 계급은 머리를 기르고 상투를 올리는 등의 권위를 내세웠지만 이를 부정하던 불교는 브라만교와 다르게 모두가 머리를 삭발함으로써 그 어떤 사람도 권위를 내세워서 지배하는 것을 반대하였죠. 이와 유사한 종교가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자이나교가 있는데, 자이나교 또한 머리를 삭발하지만 불교는 단순히 머리를 미는 것이라면, 자이나교는 모근 까지 뽑아버리는 행위를 합니다. 불교의 경우 자신이 쌓은 업을 당시 유행하던 수련 방식인 고행이 아니라 깨달음을 내세웠지만, 자이나교는 자신의 업은 고통으로 하나하나 제거할 수 있기에 머리를 뽑으면서 일종의 고행이며 업을 지워나가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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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국가들의 민족성을 이야기 할때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이라고 하는데 무엇때문에 백의민족이라고 하는지 명확한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흰옷을 뜻하는 백의가 우리 민족을 보여주는 상징성이 있기에 오랫동안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염료 기술이 없어서 백의를 입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표백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염색을 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기에 염료 이슈는 무시해도 좋은 이야기이죠.우리 선조들이 백의 흰옷을 선호한 것은 삼국시대 부터 즐겨 입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즐겨 입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를 살 때 선호하는 색상이 화이트이니 예전부터 흰옷이 끌렸던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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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파라오는 왜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이집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명은 커다란 무덤 뿐만 아니라 재단을 만들어서 왕의 권위든, 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거대한 건축물을 쌓아 올릴 수 있는 인원을 동원할 권력을 뜻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은 일반 백성들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그 어떤 상징물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랜 과거부터 강력한 파라오의 권력을 갖고 있던 이집트는 지금도 믿기 어려운 사이즈의 피라미드를 쌓았고, 그 외 여러 국가에서 거대한 석축물들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북한 같은 독재국가 등에서는 거대한 동상을 만들어 세움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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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우리는 어떤 나라의 도움을 받았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한국전쟁이 발생했을 당시를 보면 한반도는 북에는 소련이, 남에는 미국(UN)이 군정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북한 지역은 일본이 조성한 중화학 공장들이 있고 이를 위한 발전소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은 일본의 식량창고 역할을 위해서 농업 중심으로 경제가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분단 이후 북한은 경제적으로 남한 보다 앞서 있었으며, 공산주의/사회주의 라는 이념으로 하나가 되어 자신감이 있었고 이를 표출한 것이 남한을 적화통일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한은 서로 다른 이념들이 대립하고 싸우면서 북한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는 상황이 벌어지죠. 이러한 전쟁 상황에서 남한을 도운 것이 UN군이었습니다. 사실 UN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력으로 전쟁을 벌인 전쟁이 한국전쟁이었습니다. 지금 UN은 어떤 분쟁이 생기면 평화유지 등에만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욕을 많이 먹지만 적어도 한국전쟁에서는 수많은 UN국가들이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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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신(하나님이나 하느님)은 있었을 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신이라는 존재는 사실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도 그 어떤 존재가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사냥을 나가면 풍요를 기원하며 벽화를 남기고, 어떤 자연 현상이 있으면 이 또한 그 어떤 존재가 있어서 노여움이나 기쁨을 나타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신이 꼭 있다라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 어떤 존재가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차 인간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라고 믿었고, 그 신을 섬기고 살면 내가 잘 살거나 우리가 잘 살고, 사후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곧 종교이며, 신의 존재를 믿게 되는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이성이 강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서 지금도 종교를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기에 종교,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으니 오히려 미래에 더 삶이 각박해지고,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다시금 종교, 신을 찾아 나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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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남성성이 강한 직업일수록 실제로 일이 더 힘든 경우가 많았나요? 아니면 기분 탓에 가까운 걸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람이라고 하지만 사람도 동물이며, 동물들을 보면 수컷이 암컷에 비해서 크기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에 사냥을 하거나 번식을 주도하고, 집단을 지키는 역할을 수컷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인간의 단순한 관념이 아닌 생물학적인 특징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이 사람들의 관념을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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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왜 위화도 회군을 결정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이성계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 함께 했던 동지들이 바로 성리학을 기반으로한 신진사대부였기에 명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성계는 명나라 공격을 반대하였으나 최영의 의지를 꺾지 못해서 결국 출병은 하였습니다. 하지만 위화도에 도착해서는 비가 많이 내리고, 병사들이 힘든 상태 같은 근거를 들어서 4불가론을 내세워 회군을 하게 됩니다. 이때 최영 장군이 처형되고, 결국 이성계가 권력을 쥐고 조선을 창건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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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전법이 왜 그렇게 효과적이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학익진이 유효했던 것은 조선군의 뛰어난 화포가 한 몫을 했다라고 생각 되네요. 먼 거리에서 줄지어 서서 화포를 쏘아대니 일본의 수군 입장에서 빠르게 조선 수군의 배에 올라타야 하지만 먼 거리에서 화포로 가까이 가지를 못하게 하니 속절 없이 패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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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는 무슨 혐의 때문에 이 단으로 판결 받아 처형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잔다르크는 영국과 조국인 프랑스의 전쟁에서 뛰어들어 엄청난 전쟁 성과를 만들어낸 인문이며, 여성이었죠. 전쟁에서 밀리던 불리했던 프랑스를 승리자로 만들었지만 마녀사냥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잔다르크는 어릴 때부터 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했으며 전쟁에서도 신의 계시를 받았다라고 했으니 당시의 종교관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는데 말이죠. 게다가 여성이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했으니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시기에 아주 딱 맞는 희생양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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