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고대 이집트나 페르시아 유럽의 중세 제국등을 보면 왜 근친혼이 많았을까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류가 문명사회가 되면서 많은 왕족들과 귀족들 사이에서는 순혈 혈통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근친혼이 성행했지만[2] 이들 후손 중 많은 수가 유전병 같은 장애에 시달려야만 했다. 꼭 유전병이 아니더라도 신체 특징이 유전적으로 남는 경우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주걱턱으로 대표되는 합스부르크 가문이다. 결국 순혈 혈통은 오래지 않아 혈통이 끊기고, 적어도 왕족과 귀족이 결합해서 그나마 좀 유전자 다양성을 갖춘 사람이 왕위를 잇거나 이마저도 없으면 시골이나 해외에 사는 남남 수준의 먼 친척을 간신히 찾아 왕으로 세우는 일도 있었다.생물학적으로 근친혼으로 자손을 생산하는 행위는 유전자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유전병의 발현 확률을 극적으로 높이기 때문에 종의 번식과 생존이라는 의미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예를 들면 50명당 1명 꼴로 보인자이고 열성 유전되는 유전병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해당 유전병의 발병 확률은 대략 1만 명당 1명꼴이 된다.[3] 하지만 자신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매와 근친혼을 하여 자손을 만들 경우, 한쪽이 해당 유전병의 보인자일 경우 다른 한 쪽도 해당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1/2이기 때문에, 유전병이 발현할 확률이 400분의 1로 올라간다.[4] 유전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입양간 근친혼이 대체로 관용적인 반면 혈연간 근친혼이 엄격히 금지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때문이다
Q. 조선시대 음악가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박연을 예로즐어볼때조선시대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우던 '세종' 과 함께 시대의 음악과 기준을 세우며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기 위해 도왔으며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추앙되는 인물입니다.태종 5(140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과 문학을 역임하다 세종 즉위 후 악학별좌에 임명되어 악사를 도맡았습니다.당시 불완전한 악기 조율의 정리와 악보 편찬의 필요성을 적극 상소하여 1427년(세종 9)에 편경 12장을 만들고 직접 자작한 12율관에 의거하여 음률의 정확을 기하였습니다.또한, 조정의 조회에 사용되던 향악을 폐하고 아악으로 대체하여 전반적인 궁중음악의 개혁을 이루었습니다.1433년 유언비어 유포라는 혐의를 받고 파직되었으나, 용서를 받고 다시 복직하여 아악에 종사하며 중추원 동지사를 지냅니다.1453년(단종 1) 계유정난(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 시기 아들 계우가 연루되어 처형되었으나, 그는 삼조에 걸친 원로로 대우받아 파직으로 그치고 낙향하게 됩니다.이처럼 궁중음악을 도맡아 하던 계층은 좋은 대우를 받았으나 정치와 연관되어 안타까운 결말이 있습니다.대중이나 민중과 함께한 남사당패나 소리꾼들은 그 인기와 능력에 따라 연주를 하고 다니며 수익을 올렸던것으로 알고ㅠ있습니다ㅡ 그러나 그 삶은 팍팍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