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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강경원 전문가
부산진구남성합창단
Q.  조선의 과거제 자격과 문과, 무과, 잡과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科擧: 시험 종류인 과목(科目)에 따라 거용(擧用)한다는 뜻- 중국 수나라 시대 때부터 시작- 신라시대에 전래되어 958년(고려 광종 9년)에 본격적으로 시행-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1. 문과(1) 소과(小科): 15세 이상인 자가 응시, 합격하면 성균관 입학자격을 주고 하급관리로 채용. 초시와 복시 두 단계로 실시- 생원시(경학시험): 사서의(四書疑) 1편과 오경의(五經義) 1편. 유교 경전에 대해 묻는 시험- 진사시(사장시험): 부(賦) 1편, 고시(古詩) · 명(銘) · 잠(箴) 중 1편. 시와 산문 등 문장력, 당시의 정책에 대해 논술하는 시험※관리 임용과 직결되는 제도가 아니었다. 합격한 후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르는 것이 정상적인 길이었다.※생원과 진사만 되더라도 면역(免役) 특권이 주어져 사회적으로 일정한 예우를 받을 수 있었다.(2) 대과(大科): 성균관 출신과 소과 합격생이 응시, 고급 관리로 채용- 1단계 초시: 한성시(서울에서 실시), 관시(성균관에서 실시), 향시(각 도별로 지방에서 실시)- 2단계 복시: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이듬해 봄에 서울에서 실시- 3단계 전시(어전시): 복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궁정에서 실시※2단계만 합격하면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었고, 3단계는 단지 등수를 정하는 것이었다. 보통 복시를 통과하면 급제했다고 하며, 전시 최고점자를 장원이라 불렀다. 초시에 합격한 후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는 한 차례만 주어졌다.※시험 시기는 일반적으로 식년시(式年試)라 하여 3년에 한 번(자, 묘, 오, 유 - 복시를 기준으로 하고, 초시는 그 전년도에 실시)씩 실시했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특별 시험(별시)이 늘어 과거 급제자가 증가했다.2. 무과- 문과와 함께 실시- 초시, 복시, 전시를 거치는 삼장제(三場制)로 운영- 시험과목은 강서(講書)와 무예(武藝)3. 잡과: 역과 · 의과 · 음양과 · 율과-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실시- 대 · 소과의 구별이 없는 단일과- 초시 · 복시 2단계만 있고 전시는 없음※조선은 문반과 무반의 양반(兩班) 관료 체제
Q.  연암 박지원 한문 소설의 특징과 작품 및 내용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연암 박지원의 소설. 조선 후기에 연암 박지원이 당시 조선의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한문으로 쓴 풍자 소설. 2020년 현재 고등학교,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허생전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수록되어 있다.원래는 열하일기 안에 있는 《옥갑야화(玉匣夜話)》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박지원과 비장[1]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박지원 자신이 윤영(尹映)에게서 들은 변승업[2]의 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와 허생에 있던 이야기를 펼친 것이, 바로 허생전의 내용이다.주인공인 허생은 가난한 형편에도 10년 글 읽기를 기약하며 매일 글을 읽고 있었는데 7년째 되는 어느 날 아내가 허생에게 내가 당신 다 먹여살리는 건 아시냐, 선비 일도 장인 일도 장사도 못 하면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 오라고 하소연 한다.그러자 허생은 아내의 절절한 말에 글 읽기를 멈추고 집 문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한양의 갑부인 변씨를 찾아가 당당하게 1만 냥[4]이라는 거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변씨는 허생의 행색은 거지지만 눈빛과 말투가 예사롭지 않은 것에 흥미를 느껴 이름도 안 묻고 1만 냥을 내준다. 허생은 그 돈으로 바로 안성시장에 가서 과일을 다 싹쓸이해서 10배의 폭리를 취하고 제주도로 가서 말총을 다 싹쓸이해서 망건 값을 10배로 올려 처음 꿨던 돈의 100배로 불린다. 이때 떼돈을 벌어 기쁘지 않냐는 시종에 말에 오히려 "1만 냥만 가지면 팔도를 뒤흔들 수 있으니 심히 한탄스럽도다!" 라면서 원시적이고 전혀 발전하지 못한 조선의 경제체계에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얼마 뒤, 때마침 변산에서 도적 떼들이 들끓자 그들의 사연을 듣고는 그들을 회유하여 살기 좋다는 무인도[5]로 데려가서 새 삶을 살게 하고 나가사키(장기)의 기근을 도와주면서 은 백만 냥을 벌게 되었다. 그러나 땅이 좁은 것에 한탄하면서 돌아가기로 마음먹으며 섬에 드나드는 배를 모조리 불태우고 바다에 50만 냥을 그냥 버린다. 그리고 섬에 있는 사람 중에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내어서 배에 태워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허생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나누어주고 10만 냥이 남게 되자 변씨에게 몽땅 다 갚는다.변씨는 깜짝 놀라며 원금과 이자 1할만 받겠다고 하지만 허생은 거절했고, 대신 변씨가 허생의 집에 양식과 옷이 떨어질 때쯤 몸소 찾아가 도와주는 정도로 만족한다. 얼마 뒤 변씨가 어영청 대장인 이완 대장에게 허생의 얘기를 하자 이완 대장이 놀라며 허생을 찾아간다. 이완이 허생에게 청나라에 대한 대책을 묻자 세 가지 해결책[6]을 던졌는데, 이완이 모두 어렵다는 답만 했다. 그러자 허생이 이완을 꾸짖으면서 칼로 찌르려고 위협했고 놀란 이완 대장은 뒷문으로 도망갔다. 그 다음 날 이완이 다시 찾아가 봤지만, 허생은 이미 사라져 그 행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Q.  안하무인이라는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안하무인'이라는 사자성어는 교만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중국 명나라 말기 작가 능몽초의 단편소설 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늦게 얻은 자식을 부모가 너무 귀하게 여기고 키워, 자식이 어려서부터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 굴게 되어 마치 왕이 된 것처럼 행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자식이 부모를 폭행할 정도로 인품이 망가지고, 부모가 후회하며 '안하무인'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Q.  중국의 3대 악녀라고 중 한명이라고 하는 여태후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태후는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의 첫째 부인 본명은 여치입니다한나라건국 BC206 년 유방이 건국 개인 무력 위 초나라 항우와 BC 202년마지막 해하전투서 유방의 한나라 군대 30만명 항우 초나라 군대 10만명이 결전 항우가 패하여 죽고 한나라 제국 400년 역사(전한 BC206년~ AD 8년 ) (후한 AD25년 - AD 220년)AD 8년- 25년 왕망이 잠시 한을 멸망 이후 한왕실에서 다시 한을 새워 후한으로표기 했습니다 한의 유방과 초의 항우가 천하를 통일하려는 전쟁중 유방의 부인 여치는 항우에포로로 끌려가 3년간 귀빈포로도 생활을 했으나, 그녀는 굉장히 담대한 기백을 가지고 있었으며 야망도 매우 큰 여인이며 여치가 항우의 포로로 생활 때 남편인 유방은 척부인(戚夫人)이라는 첩이 있었고 척부인과의 아들 유여의(如意)도 있고 유방은 황제가 되고 여치는 황후가 되었습니다. 유방이 한나라의 황제가 된 후에 한신중국억사 배수진의 명장), 팽월, 경포 등 개국공신 들 토시구팽 통치를하고 유방은 본처인 여치를 멀리 하고 척부인만 사랑하면서 유방이 정치를 우물쭈물 하자 화가난 여치(여태후)는 유방을 대신해 자신이 직접 모두를 숙청해버리고 여씨 일족을 조정 대신으로 등용 합니다. 여태후가 점점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싫었던 유방은 태자인 유영(劉盈)을 유약하며 자신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자신이 총애하던 척부인의 소생인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려고 했습니다.유방의 사랑을 받았던 척부인(戚夫人)도 자신의 아들 여의(如意)를 태자로 만들기위해 온갖 모략을 일삼으며 여태후에게 대들며 서로 맞붙게 됩니다.하지만 모든대신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유방은 결국 유여의를 태자로 삼는데 실패하게 됩니다. 여태후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에게 해를 가하려고 한 척부인에게 엄청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이에 유방은 자신이 죽고 나면 본인이 총애한 척부인과 아들 유여의가 여태후에 의해 엄청난 핍박을 받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유여의를 조왕으로 삼아 다른지방에 피해있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유방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아들인 혜제가 즉위하자 여태후는 한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 강한 권력의 칼끝은 유방의 첩들과 특히 척부인과 아들인 여의에게다복수심을 향하게 되었습니다.여태후의 만행은 척부인에 팔. 다리 . 눈. 귀. 코. 혀 까지 ??복수의 순서는척부인을 불러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 곤형을 가한 뒤 목과 발목에쇠고랑을 채워 궁녀를 가두었던 감옥에 감금을 하고 하루 종일 쌀을 찧는 형벌을내렸습니다.척부인의 아들인 유여의도 장안으로 불러들여 죽여버릴 계획을 세웠으나, 여태후의 아들 혜제가 여태후의 이런 계획을 눈치채고 장안으로 오던 이복동생 유여의를 데려와 보호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혜제가 아침에 활쏘기를 하러 나간 사이에 유여의를독살을시킵니다 .아들이 독살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척부인은 여태후에 대한 온갖 저주말을 퍼부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여태후는척부인의 눈을 뽑아버리고 혀를 잘라 벙어리로 만들고서유황을 귀에 부어 귀머거리가 되게 한 뒤 팔과 다리를 잘라버리고. 팔과 다리를 자를 땐 조금씩 잘라가며 치료를 하고 치료한 뒤 낳으면 또 자르면서 잔인하게 잘라버림.그러고 나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척부인을 측간의 돼지우리에 던져 넣어 평생 똥오줌을 받아먹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인간돼지(인체(人彘))입니다.
Q.  조선에서 왕권을 무력찬탈한 경우 반정과 난은 어떤 면에서 차이를 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 생각에는 반정은 성공한 경우 정권을 잡고 정권에 반하여 뜻을 이루었기에 반정이라하고, 난은 실패한 경우 정권에 의해 도룩되거나 참해졌기때문에 그냥 난 이라는 표현을 쓰게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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