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율곡 이이는 과거를 9번이나 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조선의 과거제도는 문과, 무과, 잡과의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이중에서 문관 등용 시험인 문과는 크게 대과(大科)와 소과(小科)로 나뉘어지며, 소과에는 생원과(生員科)와 진사과(進士科)가 있었고 이를 생진과(生進科)라고 통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험에는 초시(初試)와 복시(覆試)가 있었고 여기에 합격한 자를 초시 그리고 생원, 진사라 불렀습니다.대과에는 소과에 급제한 진사와 생원, 하급 관리, 성균관 유생들이 응시하였으며, 초시(初試)와 복시(覆試)를 실시하여 급제자를 선발한 후에 전시(殿試- 임금님이 친견하는 시험)에서 그 등급을 결정하였습니다.이에 율곡은생원진사과 초시→생원진사과 복시→대과초시→대과복시→대과전시 총 7번 시험에 합격하였고, 별도로 별시(특별시) 초시 복시에도 합격하여 당시에 '구장 장원(九場壯元), 구도 장원(九度壯元)'이라 일컬어진 것입니다.
Q.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 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기관을 설치하여 백제와 신라를 지배하고, 가야를 비롯한 한반도 남부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다는 주장입니다.이는 일본의 식민사관 중 하나로, 일본의 고대 역사와 한반도의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그러나 이 주장은 여러 가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이 일본의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고,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주장합니다.일본의 역사학계에서도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일본 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이 일본의 식민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인정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