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사도세자의 기록에 대한 중요한 자료인 한중록을 지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한중록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쓴 자서전입니다. 한중록은 18세기 후반의 조선 사회와 정치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회갑을 맞은 후부터 70세가 되던 해까지 10여 년 동안 4차례에 걸쳐 쓴 기록입니다. 여기에는 남편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 아들 정조의 즉위 과정, 친정인 홍씨 가문의 몰락, 혜경궁 홍씨 자신의 삶 등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한중록은 조선 후기의 정치, 사회, 문화, 여성의 삶 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특히,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혜경궁 홍씨의 증언을 담고 있어 사도세자 사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Q.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 본인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세운 기관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정조는 자신의 권력과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 기구를 원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즉위 초(1776년)에 창덕궁 안에 세운 규장각입니다. 이곳에는 수만 권의 한국 책과 중국 책을 모으고, 젊은 학자들은 학사(學士)로 임용하여 그들에게 문한(文翰)의 기능, 비서실의 기능, 그리고 과거 시험 주관 기능 등 여러 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특히 당하관 관료의 재교육을 위해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여 시험 성적에 의해 승진시킴으로써 정조의 학문과 정치 노선을 강하게 주입시켰는데, 규장각은 바로 정조 시대 문예 부흥과 개혁 정치의 산실이 되었습니다.또한,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서 반대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친위 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는데, 이러한 목적에서 창설된 부대가 장용영이입니다. 규장각이라는 친위적 엘리트 집단과 장용영이라는 친위 부대를 장악한 정조는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을 자처하면서 초월적 군주로 군림하였습니다.
Q. 조선시대는 왜 그렇게까지 쇄국정책을 고집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첫째, 프랑스 선교사의 활동으로 천주교 유포가 확산되어 탄압이 이루어졌는데, 사실 천주교 탄압은 신부에게 프랑스와 정치적 만남을 거절당하면서 노골화 되었습니다. 결국 위정척사파의 상소와 더불어 '사학'이라 지칭되 탄압받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1860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베이징이 점령이 되었는데, 조선에게 중국이란 큰 나라가 파란눈에 금발의 외국인의 점령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어서 결국 문을 걸어 잠궈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셋째, 제네럴 셔먼 호 사건으로 인해 미국이 신미양요를 일으키면서 서양 열강의 침략성을 깨닫게 됩니다.마지막으로 오페르트 도굴사건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조선들은 서양인들이 성역인 조상의 묘를 파헤치려 한 시도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꼈고, 서양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더욱 강력한 쇄국정책을 고수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