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다산 정약용선생은 우리나라 실학파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정약용은 과학과 기술이라는 실용적인 학문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수학, 천문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하였으며, 특히 다음과 같은 업적이 있습니다.수학: 정약용은 수학적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그의 저서 중 일부는 수학적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천문학: 그는 천문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선의 천문학적 지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정약용은 천문 관측을 통해 농업과 관련된 계절의 변화를 이해하고 이를 농업에 적용하려 했습니다.의학: 정약용은 의학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한의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통 의학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Q. 프로이센과 독일의 재상인 비스마르크에게 철혈재상이라는 별명이 붙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일단 답변부터 드리면, '철혈정책'이라는 거 애초에 있지도 않았습니다.비스마르크는 전쟁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군국주의자도 아니며, 사회주의 제도를 가장 먼저 정착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그가 우리에게 철혈재상으로 불리는 이유는 재상이 되어서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언론이나 다수결이 아닌, 철과 피로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대목이 유명해져서 그렇게 알려졌을 뿐, 정작 독일에서는 당대에도 후대에도 그렇게 불리지 않았습니다.Eiserner Kanzler (철의 재상)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철혈재상은 후대 일부 역사가들의 창작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입니다.
Q. 조선 시대 과거 시험중에 하나인 무과 시험은 어떤 과목을 보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조선의 무과시험은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 과정을 거쳤습니다.초시는 서울에서는 병조와 훈련원 관할로 70명을 선발하고 지방에서는 병마절도사 관할로 120명을 선발하는데 시험 과목은 '경국대전'을 기초로 목전(木箭) , 철전(鐵箭), 편전(片箭), 기사(騎射), 기창(騎槍), 격구(擊毬) 였는데 영조때 만들어진 '속대전'에서는 기사, 기창, 격구가 기추, 유엽전, 조총, 편추로 변경되었습니다.초시에 합격한 190명은 다음해 서울로 올라와 복시를 치게 됩니다. 복시의 경우 시험 과목은 초시와 동일하나 격구가 빠지고 그 자리에 병서를 외우고 알고 있는지 테스트 하는 강서로 과목이 변경되었습니다.이 시험은 병조와 훈련원에서 주관하며 여기서 최종 28명을 선발하게 됩니다.마지막으로 전시에서는 보격구와 기격구만으로 시험을 치는데 이 시험을 통해 28명의 순위를 정합니다. 이렇게 선발된 28명은 문과 보다는 진급에서 차별 대우가 있기야 했지만 나라를 지키는 장수로서 신분 상승을 노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험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