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구한말의 우리나라가 국권을 잃어가는 과정에 관여했던 관료들 중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누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을사오적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의 체결을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명의 매국노를 가르킵니다. 정미칠적은 1907년 7월, 정미년에 체결된 한일신협약 조인에 찬성한 7명의 친일파 내각 대신을 가리킨다.정미칠적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송병준(농상공부대신), 이병무(군부대신), 고영희(탁지부대신), 조중응(법부대신)응, 이재곤(학부대신), 임선준(내부대신)입니다. 경술국적은 1910년 8월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찬성하고 협력한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시종원경 윤덕영, 궁내부대신 민병석, 탁지부대신 고영희,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친위부장관 겸 시종무관장 이병무, 이완용의 처남인 승녕부총관 조민희등 8명입니다.이중 3적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완용인데 여러모로 일제시기 친일반역자로 GOAT를 달성하였다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2적에 해당하는 인물은 박제순, 이병무, 고영희가 있겠습니다.
Q. 조선 시대 쯤에 전국 8도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우리나라 도를 구분한 것은 언제 쯤 부터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북한을 포함한 전국의 팔도는 지금의 한반도 경계선을 확정지은 조선시대에 정해진 행정구역입니다. 근대인 1896년 13도로 개편되긴 했으나 개편된 게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를 제외한 각 도를 '남,북도'로 나뉘었을 뿐 팔도라는 큰 얼개는 바뀐게 없습니다.
Q. 국채보산운동은 어디에서 언제 시작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상훈 전문가입니다.imf시기 국민의 금모으기 운동의 앞선 사례라고 알려진 국채보상운동은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에 제공한 차관 1,300만원을 국민들이 상환을 주도한 운동입니다. 1907년 2월 21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윤필오 등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으며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당시 남자들은 담대를 끊고 여자들은 아껴모셔둔 패물을 가져와 내놓는등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국채 보상을 해야하는 국가인 일본은 궁극적으로 한국을 경제 무력화 시켜 합병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일본의 간섭으로 인해 일년만에 이 운동은 끝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