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으로 유명한데 어떤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정책 자문이며, 점성술사로 유명했습니다.그의 조상은 원래 유대인이었으나 할아버지 때 가톨릭으로 개종한 상인 집안에서 출생했으며 영민한 그는 상업 대신 학문의 길을 택해 15세 때 아비뇽 대학에 입학하나 2년 뒤인 1520년 흑사병이 돌아 대학이 휴교하자, 8년간 프랑스 전역을 방랑하며 견문을 넓히고 학문을 다듬었습니다. 이때 약재에 대한 지식을 배워 약종상으로 일하고 1529년 당대의 명문 몽펠리에 대학 의대에 입학하나 교수들과 반복하다 과거 약종상으로 일한 전적이 있음이 발각되어 퇴학당했습니다.그 뒤 당대의 명의 스칼리제 밑에서 수련을 하며 앙리에트 당코스라는 여인과 결혼해 1남 1녀를 얻으나 흑사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아오니 아내와 자식들이 흑사병에 걸려 사망해있던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 후로 약 10년간 행적이 묘연한데, 그의 삶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 기간동안 신비주의나 점성술과 같은 오컬트에 정진했다 묘사됩니다.1546년 남부 프랑스에 흑사병이 퍼졌을 때 새로운 치료법으로 흑사병을 치료하는데 공헌, 1547년 부터 살롱드프로방스라는 마을에 안주하며 여기서 안 퐁사르드라는 과부를 만나 재혼, 3남 3녀의 자녀들을 얻습니다.1550년 경 부터 다음해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는 달력을 발간하기 시작, 이것이 잘 맞는다 하여 예언가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1555년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집의 초본을 발간하게 되는데 인쇄술의 보급, 당시 지식인들 사이의 오컬트 열풍 등을 타고 프랑스 전체로 퍼져나가게 되며, 그러던 중 오컬트 신봉자인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의해 궁정으로 초청됩니다.이후 앙리 2세의 마상 창 시합 도중의 사고사, 앙리 2세와 카트린 사이에서 얻은 아들들이 모두 프랑스 왕이 되지만 모두 요절한다는 예언이 들어맞으며 더욱 유명해진 그의 이름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큰 사건이 터질때마다 그의 예언서를 뒤져보게 되었습니다.말년 통풍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나 왕비의 총애를 받아 그럭저럭 풍족한 노후를 보내며 62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Q. 조선시대 제도 중 ‘상피제’는 어떤 제도였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상피제도는 비리를 막기 위해 가까운 친인척끼리 같은 관청에 근무하지 못하게 했고, 자기 고향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였습니다.고려 선종에 제정되었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선시대에는 엄격히 적용되어 친족, 외족, 처족 등의 4촌 이내로 적용범위가 규정되어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확대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