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 병조판서였던 신숙주는 어떤 언어를 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숙주는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몽골어에 조예가 있었는데 신숙주가 중국어를 배운 것은 실록과 다른 기록에서 확인되어 확실하고 보한재집 행장에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몽골어 4개 국어가 가능했다는 설명이 있으나 일상 회화수준은 아니고 고급 어휘를 제대로 구사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는 예겸 같은 중국 사신접대나 황찬을 찾을 때 역관을 대동했고, 문종은 대놓고 신숙주가 한어에 능하지는 않다고 언급한 적이 있으며 행장에서조차 능통하게 대화했다는 기술 대신 가끔 역관 없을 때 직접 대화를 나눴다는 기술만 존재합니다.
Q. 이인수 박사는 어째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가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승만이 대통령에서 하야되고 하와이로 간 뒤 1961년 11월 13일 이승만의 측근들과 전주 이씨 종친회의 소개로 이인수가 만 30세의 나이에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되었습니다.앞서 이승만의 양자였던 이강석이 이승만의 눈에 들어 효령대군파임에도 양녕대군파인 이승만에게 입적되었다고 말이 많아 아예 양녕대군파에서 명망있는 청년으로 입적시켰는데, 항렬도 맞았고 우수한 교육을 받았으며 영어에 능통해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것이 한 몫했습니다.처음 이인수는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라는 책임이 너무 중해 보여, 나중에 좀 더 나은 사람을 택하라 했으나 주변에서 전주 이씨종중에 그동안 잘 모셨더라면 어른의 말년이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텐데, 마지막으로 같은 혈손들이 도와드릴 의무가 있다고 해 이승만의 양자가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Q. 세계경제포럼(WFF)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대인 스위스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바프가 1971년 민간 형태의 재단인 유럽경영포럼으로 설립했습니다. 1973년 주제를 전세계로 확대했고 1981년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포럼을 개최, 1987년 현재 이름으로 개명되었습니다.2000년대 들어 경제 뿐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현안 등을 함께 다루고 있어 비정부기구의 지도자 등 해당 의제와 관련 인물도 자주 초청되며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영향력이 높은 연예인들도 초청되며 2007년부터 매년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다보스 회의에 더해 하계 연차회의를 개최하기 시작했는데 중국 정부와의 협의하에 다롄과 톈진 두 도시에서 교차해서 개최되는 이 회의는 현안 위주의 논의가 이루어지는 다보스 회의와 달리 미래 의제를 주제로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