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의 출산율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는 양반 여성 1명이 평균 5.09명을 출산 , 이 중 제사를 지낼수 있는 남자아이는 1.25명 수준이었습니다.유아 사망률이 높아 아들이 더 있어도 아들을 더 원했으므로 출산율이 높아졌고, 종법 질서가 강화된 18세기 아들로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여성에게 지어지면서 독특한 문화적 행위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조선 후기 출산율은 17세기를 기점으로 하락, 이는 여성의 재가 금지가 대표적으로 성을 금기시하는 풍속은 집의 구조에도 영향을 주어 부인이 지내는 안채, 남편이 주로 거처하는 사랑채로 구분, 이때문에 임신을 위해 씨 내리는 날 을 정해 부인과 남편이 만나는 것이 조선 사회의 암묵적인 관행이었고, 양반 여인들의 재혼금지는 평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출산율 급감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Q.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김치를 먹기 시작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김치는 농경민족들에게 나타나던 채소를 소금에 절여 장기 보관한 형태의 음식으로 추적한다면 야채 염장음식은 삼국시대에 있었습니다.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고구려에서 발효식품을 만들어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김치의 원형은 무가 기본이었고 고려시대 물김치, 나박김치, 동치미의 초기 형태가 나타났고 고려양의 영향으로 원나라에도 알려집니다.지금 우리가 먹는 붉은 김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래한 고추가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동아시아로 전해진 이후부터로 고추는 임진왜란을 통해 전해졌다고 하나 전래 이후 바로 사용되지 않았고 10여 년 정도 고추를 독초로 인식해 식용으로 활용되지 않다가 기록상 1613년 지봉유설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재배되기 시작했고 1766년 증보산림경제에 보면 이때부터 고추가 김치 조리에 이용되고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다만 이 시대 고추는 지금처럼 고춧가루로 이용한 것이 아닌 말린 고추 몇 개를 넣어 맛이나 향을 더하는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