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국에 무역수출에 역사에 대해서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원전 3세기 이전 편찬된 중국의 관자에 의하면 기원전 7세기 고조선이 이미 제나라와 무역을 하고 있었고 그 뒤 삼한에 이르러 대외무역이 더 발전했습니다.삼한이 위치하고 있던 지역의 기후가 온화하고 토지가 비옥해 오곡을 비롯한 각종 농산물이 생산, 견직물, 마직물, 가죽, 철기 등의 수공업이 발달했으므로 이들 상품이 해외의 진귀산물과 교역되었고, 변진에서 철이 생산되어 진한, 마한, 낙랑군뿐 아니라 일본에까지 수출되었습니다.고구려에서는 472년 부터 위나라에 조공을 시작하면서 이전부터 내려오던 사무역과 더불어 공무역이 본격화 되는데 당시 중국에 대한 수출품은 말, 백은, 각궁 등 주로 토산물이었으며 일본에 대해서도 철순, 철적, 황금 등을 수출했습니다.
Q. 청나라 제5대 황제 옹정제는 어떤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희제 말기 황족과 조정의 신하 사이에 붕당싸움이 심해 즉위 후 동생인 윤사, 윤당 등을 물리쳐 서민으로 삼고 권신인 연갱요 , 융과다 등을 숙청해 독재권력을 확립, 중앙관제상 종래의 내각은 형식을 중히 여겨 정무가 막혀 잘 처리되지 못하였으므로 별도로 황제 측근의 군기처대신을 두고 군기처가 내각을 대신해 6부를 지배하게 했습니다.지방의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도 마음을 써 지방대관에게 주접이 라는 친전장에 의해 정치의 실정을 보고하도록 했고, 그것을 황제 스스로 뜯어보고 주필로 주비를 써 발신인에게 반송하여 지시, 훈계를 내렸습니다.지방관리의 봉급이 지나치게 적었으므로 그들에게 양렴전을 지급, 학교에 성유광훈이라는 교육칙어를 배포하여 시험 때에 베끼도록 하고 지방에 남은 천민의 호적을 제거하여 양민으로 만들었습니다.원난, 구이저우, 광시의 산간에 사는 토착민인 먀오족이 토사 밑에서 반독립의 상태에 있는 것을 철폐 즉, 정부에서 파견하는 관리인 유관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는 개토귀류의 정책을 펴서 내지화를 꾀하였습니다.대외적으로 청나라에 반대하던 칭하이를 귀속시키고 연갱요에게 23만 대군을 이끌고 티베트를 평정하게 한 뒤 주장대신을 파견해 보호령으로 삼았으며 1727년 러시아와 카흐타조약을 맺고 지금의 러시아와 몽골 간의 국경선을 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