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정조가 만든 규장각은 목적이 먼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규장각은 조선 후기 왕실 학문 연구기관이자 왕실 도서관으로 역대 임금의 시문과 저작, 고명, 유교, 선보 등을 보관하고 수집했습니다.조선 세조 때 양성지가 임금의 시문을 보관할 규장각을 두기를 청하나 실시하지 않았고 이후 숙종 때 작은 전각을 마련해 규장각이라 이름했으나 직제는 갖추지 않았습니다.정조가 즉위 후 1776년 11월 5일 창덕궁 금원의 북쪽에 규장각을 세우고 제학, 직제학, 직각, 대교, 검서관 등의 관리를 두었으며 규장은 임금의 시문이나 글을 가리키는 말 입니다. 이때 규장각은 그 이름대로 역대 왕의 글과 책을 수집 보관하기위한 왕실 도서관의 역할을 했는데 정조는 여기에 비서실의 기능과 문한 기능을 통합적으로 부여하고 과거 시험의 주관과 문신 교육의 임무를 부여했습니다.규장각은 조선 후기의 문운을 불러일으킨 중심기관으로 많은 책을 편찬했으며 여기에 실학자와 서얼 출신의 학자들도 채용되었습니다.정조는 규장각 제도를 정비해 자신을 지지하는 정예 문신들로 친위 세력을 형성시켜 우문지치와 작인지화를 규장각의 2대 명분으로 내세우고 문화정치를 표방했습니다.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당시 왕권을 위협하던 척리, 환관의 음모와 횡포를 누르고, 학문이 깊은 신하들을 모아 경사를 토론케 하여 정치의 득실과 백성의 질고 등을 살피게 하는 데 있었으며 문교를 진흥시키고 타락한 당시의 풍습을 순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Q.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외롭게 지내는 상태를 가리키는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긴 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낙동강 오리알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는데,-낙동강 갈대숲 둥지의 오리알이 장마로 갑자기 불어난 물에 떠내려 가는 모습에서 따온 관용구라는 일반적인 설로, 실제 낙동강 하구는 남한 지역에서 가장 삼각주 지형이 발달해 철새 도래지로 유명할 정도로 새가 많기 때문에 새알이 떠내려가는 장면도 가끔 있을법한 상황입니다.-낙동강은 철새인 오리가 많이 날아드는 곳이라 오리알이 많은데 오리알은 기름기가 많아 비린내만 나고 맛이 없어 사람이나 짐승들이 거들떠보지 않았고 이에 낙동강 주면에 여러 오리알들이 그냥 방치되었습니다. 혹 철이 바뀌어 산란지로 이동해 낳았어야 할 알을 제때 이동하지 못해 낙오한 오리가 낙동강에 낳고 떠나버렸기 때문에 제대로 부화되고 클 여력이 없이 버려졌기때문에 벼려져 소외되고 처량한 모습을 비유해 낙동강 오리알 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설- 6.25전쟁 당시의 격전지였던 낙동강 전선의 상황이 유래라는 설로, 낙동강 남측에 한국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를 쏴대면 인민군이 거기 맞고 하나하나 낙동강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이를 보며 병사들을 독려하던 12연대 11중대장 강영걸 대위가 '낙동강에 오리알이 떨어진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민군과 한국군이 낙동강에서 고착상태에 있던 도중 지원으로 미군의 폭격기가 폭격을 시작했고 이때 강영걸 대위가 폭격기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야! 낙동강에 오리알이 떨어진다! ' 라고 한게 낙동강 오리알의 유래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