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 국민이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배경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인들의 사할린 징용은 1938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일제가 국가 총동원령을 발령하면서 부터이며 당시 일제는 병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대거 관동군에 징집, 이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조선인들을 사할린섬으로 강제로 끌고가 탄광과 벌목장 등에서 강제 노력을 시켰습니다.이들은 현지에서는 주로 사탕수수 등 농장 일을 하거나 섬에 일본군이 주둔할 때 기지를 건설하고 비행장을 닦는 등의 일을 했으며 강제 동원된 한인들은 일본 기업에 의해 노동력을 수탈당하며 봉급도 예금, 저금 등의 형태로 바로 지급받지 못했습니다.또한 사할린에서 물자 운반이 힘들자 조선인 1만명을 다시 일본 본토로 끌고 가 혹사시키는 이중징용이 발생하면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기기도했습니다.광복 후 일본은 사할린 한인들을 학살하기로 했는데 대표적으로 미즈호사건, 가미시스카 경찰서 학살 사건으로 미즈호사건은 일본이 항복 선언 닷새후인 1945년 8월 20일~ 22일까지 사할린의 서부의 미즈호 마을에서 벌어진 일인들에 의한 집단학살 살해 사건 입니다.가미시스카 경찰서 학살사건은 1945년 8월 18일 북위 50도 소련과의 사할린 국경 바로 아래 가미시스카 경찰서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일본 경찰과 헌병은 소련군과 내통한다는 유언비어에 따라 한인 18명을 무차별 체포해 경찰서 유치장안에 두고 살해 후 증거인멸을 위해 시신을 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