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메콩강이 동남아에서 가장 크다는데 메콩강을 가장많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티베트 고원에서부터 시작해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뻗은 강으로 중국과 동남아를 합쳐 여섯 나라에 걸쳐있는데, 라오스, 태국,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미얀마 순으로 유역 면적을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Q. 십자군 전쟁의 원인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회가 크게 발전하면서 유럽의 인구가 증가, 식량 생산기술이 발달하며 상업과 도시가 성행하게 되는데 유럽인들은 유럽에 한정된것이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했고 그 목표가 아시아였습니다.그러나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길에 셀주크 튀르크가 있었고 예루살렘을 차지하던 이들은 크리스트교인들의 성지순례를 방해, 비잔티움제국 영토를 침범하게 됩니다.이에 비잔티움의 황제는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바누스 2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가 박해 받고 있어 예루살렘 성지를 되찾으러 가야 하며, 이는 신이 원한다고 주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십자군 전쟁 발생 원인이 됩니다.
Q. 일부다처제가 존속하는 나라 아직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주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 일부 지역이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알제리, 카메룬, 차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이집트, 감비아, 기니아, 리비아, 지부티, 세네갈, 소말리아, 케냐, 모로코, 나이지리아,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방글라데시, 브루나이 ,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레바논, 오만, 카타르, 솔로몬 섬 등이 있습니다.
Q.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금속활자의 혁신적 개량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와 조선의 금속활자는 기술적으로도 생산성이 목판 인쇄에 비해 심하게 낮을 정도로 미흡했던 부분이 많았습니다.금속활자가 최초 발명된 13세기까지 활자끼리 맞물리게 하는 기술적인 부분이 미흡해 밀랍으로 두 활자를 붙여서 찍어내는 불완전한 방식을 채택했으므로 한번에 통째로 찍어내는데 무리가 많았습니다. 금속 주조 능력의 부족으로 글자의 모양이 바르지 못하고 획의 굵기가 불안정했으며 인쇄 중 흔들림이 많아 글자가 번지거나 흐려지는 경우가 많았고, 많은 양을 찍지 못하고 중간중간마다 밀랍을 부어 재조립해야했습니다. 이때까지도 금속활자 한판을 가지고 하루에 찍어낼수 있는 양은 하루에 열장도 되지 못했습니다.조선시대 세종 시대 직전까지도 비슷한 방식이 유지, 민간이 아닌 국가 주도의 개발로 금속 주조 능력 자체는 발전하여 활자의 맞물림이 비교적 발전되나 하루에 20장 인쇄 정도였으며 세종 시대에 갑인자가 개발되어 활자를 조립식으로 바꾸고 활자의 틈새를 대나무로 메꾸는 등 더 발전했음에도 하루에 40장이 한계, 이는 조판 과정을 제외한 인쇄 속도를 말합니다.조선 시대 활자의 내구성이 개선되었음에도 생산성이 이상할 정도로 낮은 것은 인쇄방법의 문제로, 활자 위에 먹물을 바른 다음 종이에 그 위를 덮고 문지르는 방법인데 이 과정을 손으로 하다보니 종이가 흔들리거나 문지르는 강도가 잘못되거나 먹의 농도가 잘못되면 글자가 번지거나 흐려졌습니다.또, 주로 한자로 된 활자였으므로 아무리 글자당 한 개씩만 만들더라도 수천수만 가지 종류의 활자가 나오는데 이걸 일일이 맞춰 인쇄를 하기에는 불편했고 인쇄과정에서 중복되는 글자도 있으므로 대량인쇄는 어려웠습니다.한자를 실질적으로 사용할수 있는 계층은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충분한 지배층이나 거상, 부농같은 소수에 국한되었고, 서양에서 활자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보편된 시기는 문자교육이 확대되며 피지배층내에서도 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던 시기와 맞물리며 수요자체가 지배층에 국한되면 굳이 책을 대량생산할 필요가 없어 필사정도로 충분히 그 수요에 만족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