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중세 유럽에서 귀족들은 어떻게 사교 생활을 영위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세에는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 , 법률가들이 모여 사교 모임을 가지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문화가 유행했습니다.가벼운 다과를 놓고 그날의 화제를 교환하거나 만찬을 열기도 했으며, 공연, 미술, 음악, 문학 등 광범위한 예술 분야에 대한 지식을 교환하기도 했으며 정치, 외교 문제까지 토론하기 했습니다.
Q.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계유정난은 1453년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이자 원로대신인 황보인, 김종서 등 수십 인을 살해,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으로 13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은 수렴청정을 할 대왕대비도 없어 문종의 고명을 받은 황보인, 김종서 등 대신들이 권력을 행사하고있었습니다.단종 즉위 후 부터 거사를 계획한 수양대군은 이러한 상황이 굳어져 가기 전인 1453년 김종서 등에게 모반되를 씌워 제거, 정권과 병권을 장악, 자신을 포함해 정난에 협력한 43인을 정난공신으로 책봉하며 2년 뒤 강제로 단종의 선위를 받고 즉위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Q. 조선시대 명나라에서 보낸 고명칙사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명은 명이나 청의 황제가 조선의 왕이나 왕비, 세자를 책봉하면서 보내는 문서입니다.고명은 중국 황제가 제후국을 책봉한다는 상징적 문건이며 고명을 보내는 것은 즉위한 왕을 추후에 인정하는 절차였습니다. 조선은 태종이 처음 명의 고명을 받았고, 이후 왕의 즉위와 왕비, 세자의 책봉은 중국의 고명을 받는 관행이 이어졌습니다.황제가 보낸 칙사가 고명을 가지고 와 전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조선이 파견한 사신에게 고명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칙사는 조선시대 명나라 또는 청나라에서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오는 중국의 사신 입니다.
Q. 일제시대에 언제부터 한국어교육금지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38년 제 3차 교육령에서 한국어가 수의과목이 된 것을 시작으로 한국어 사용이 상벌의 대상이 되는 등 국어 상용 운동이 본격화되며 공교육에서 한국어가 추방되기 시작합니다.1938년 국어 상용화 정책으로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한국어 사용을 금지,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했으며 1938년 한해 전국에 3,660여개의 일본어 강습소를 만들어 한국농민들에게 일본어를 배우게 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요합니다.1944년 일본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남한의 1700만 인구 중 773만 3000명이 글을 읽고 쓰지 못했는데, 이는 일본 지배 하에 한국어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으며 한국인에 대한 교육적 차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